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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아이디를 분리하는 이유 [VRChat 보고서 61편]

by 심해잠수부 2024. 4. 16.

나는 디스코드 아이디가 2개다.

아이디를 분리했다.

많은 사람이 VRC를 평범한 스팀겜 하듯이 '자기 원래 쓰던 닉네임'으로 시작하는 일이 많다. 디스코드도 같은 아이디로 사용하고, 원래 알던 친구와 VRC에서 친추를 하는 등 나중에 후회할 일을 저지르고 만다.

나도 그랬다.

나중에 후회했다.

그리고 아이디를 분리했다.

 

나는 오프라인 관계에 내 사이버 세계의 자아를 보여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감추고 숨긴다. 현실의 내 모습과 사이버 세계의 내 모습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오타쿠 얘기하고 성적인 얘기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고 이상한 글도 쓰고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이상한 컨텐츠를 즐기는 내 모습을 오프라인 관계에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감춘다.

오프라인 사람에게 굳이 사이버 세계의 내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사이버 세계와 VRC 세계가 같은 세계라고 착각했다.

현실과 사이버 세계가 다르듯이, 사이버 세계와 VRC 세계도 다르다는 걸 그 땐 몰랐다.

어차피 사이버 세계에 있는 친구끼리 노는 건데, SNS나 게임 등 여러 곳에서 알던 온라인 친구랑 편하게 만나서 놀아도 괜찮지 않을까? 큰 문제 없지 않을까? 롤, 에펙, 마작 등 여러 게임할 때 얘네들이랑 같이 했듯이 VRC도 얘네랑 같이 하듯이 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같은 사이버 토모다찌인데.

나에 대해서 너희는 알 거 다 알잖아?

 

나는 VRC를 접하기 전의 나와 VRC를 접한 후의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 하겠다.

게임 3, 4개월 하고 접었으면 몰라도, 게임 1년 넘게 붙잡고 하고 있는 시점에서 엔드 컨텐츠까지는 다 즐겼을 텐데.

VRC를 하다 보면 소름 돋는 순간이 있다.

가끔씩 디코 등에서 대화할 때 너무 당연한 얘길 했는데, 당연하지 않다는 얘길 들었을 때 정말 소름 끼친다. 과몰입하고 있는 시점에서 게이 새끼라는 얘기는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무 뻔한 얘기인데, 과몰입 등의 주제가 나왔을 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 정말 소름 끼친다.

내 무언가가 크게 망가져 있구나.

실제로 만나서 떡을 쳐야만 게이가 아니라, 게임에서 동성끼리 애정 행각을 벌이는 그 자체로도 게임 안 하는 사람에겐 이미 게인데. 이거랑 그거랑 다르다느니 과몰입이 어쩌니 말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한테나 도킹질 하는 그런 행동도 정상이 아닌 건데.

 

내가 VRC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VRC를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은 최악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많은 유저가 그런 컨텐츠를 원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게임을 망쳤니 어쩌니 해도, 게임 오래 붙잡고 게임 내에서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숨 쉬고 있는 유저는 인식을 망친 유저들이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는 말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지금이 이미 이런데.

지금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많은 유저가 그런 컨텐츠를 원한다는 건, 결국엔 그게 재밌다는 거다.

누가 욕하고 인식이 나쁘니 뭐라고 해도, 그런 컨텐츠를 생각보다 많은 유저가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VRC를 할 때 재밌게 여기는 컨텐츠]가 [게임을 하지 않는 외부인이 혐오하는 컨텐츠]일 확률이 높다.

모두가 그런 걸 좋아한다곤 말하지 않겠다.

네 마음대로 네 친구들만 보며 그런 말 하냐고 그럴 수 있으니까.
너 같은 새끼가 이런 말을 하니 게임 인식 더 좆 박는 거라며 내 탓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유저가 그런 컨텐츠를 접하고 거기에 빠져든다. 딥하게는 하지 않더라도 대중이 보기엔 이거도 심한데? 싶은 요소에 대해 면역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요소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순간, 자기도 점점 빠져들게 되어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내 옆에 있는 브붕이와 다를 바 없게 되는 일이 많다.

 

VRC 하는 게 부끄럽냐고?
부끄럽지 그럼.

나는 친구들에게 VRC 얘기를 편하게 꺼내었던 과거를 후회한다. 디코에서 알던 친구와 친추를 하고 친구를 소개시켜준 일을 후회한다. 내 VRC에서의 모습이 친구의 입을 타고 그들(기존의 디코 친구들)에게 전해질까 봐. 누군가 쓰다듬으면 좋아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전해질까 봐.

나에 대해 알 거 다 안다 생각했던 친구들도 VRC의 나에 대해 전혀 모른다. 왜냐면 내가 10년 동안 사이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걔네가 내 모습을 보고 좋은 말을 할까? 절대 안 한다. 하겠냐고. 욕을 하면 했지, 약점으로 쓰면 썼지.

 

어느 선을 넘는 순간 고민을 한다.

슬슬 나눠야 하지 않을까.

특히 친구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유저일수록.

그 친구들이 게임 속 나를 발견할 수 없게.

너가 날 찾지 못 하게 입은 내 캐모플라주.
너가 날 알지 못 하게 디지털 캐모플라주.

 

그러니까 디코하는 야발들아 내가 밤에 다른 게임 하러 간다고 겜 끈다고 할 때 '또 브얄하러 가는 갑지' 이딴 앰 터진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지가 애미없는 소리해놓고 나보고 왜 화내냐 그럼 뭐 하러 가냐 이 야랄 하고 있네. 내가 브얄하는 걸 왜 자꾸 언급하는데? 니가 여자 속옷 입는 변태 새낀데 친구들 앞에서 또 여자 속옷 입었냐고 자꾸 친구들 앞에서 말하면 좋겠냐?

말하다 보니깐 1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화나네.

이거 정말 좋아하긴 하는데 난 그 때나 지금이나 부끄럽다.

 

 

추신.

아이디를 분리하려는 유저들에게 하나 알려주자면, 아이디를 분리하면 주 계정으로 쓰지 않는 계정의 친구들과는 확실히 멀어진다. 디코를 두 개 쓰는 일은 확실히 피곤하기 때문에 주로 쓰는 계정만 주로 보게 된다. 만약 계정을 나눌 거라면 이전의 관계는 어느 정도 포기한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둘 다 놓치기 싫다면 분리하지 않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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