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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과몰입을 그만둘 때 생각해야 할 요소 [VRChat 보고서 60편]

by 심해잠수부 2024. 4. 16.

<VRChat 보고서 50편: 과몰입이 석 달을 못 가는 이유>에서 과몰입에 대한 견해를 지나가듯이 밝힌 적이 있다. 과몰입이 끝나면 새 과몰입이 시작되는 VRChat에서 흔히 있는 모습에 회의감을 가진 적이 있다고. 그 때는 '내 기분이 안 좋았던 건지 누군가가 싫었던 건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내 생각을 의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생각은 내 안에서 더욱 커져가고 있다.

나는 과몰입을 한 번 한 적이 있고, 그 뒤에 단 한 번도 과몰입을 하지 않았다.

과몰입을 '한 번만 한 유저는 없다'지만 나는 한 번만 하고 그 뒤로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이유는 많다. 쾌락보다 책임이 더 따르는 거 같아서 나와 맞지 않는 듯 했고, 내가 생각했던 과몰입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 오래 하지 않은 과몰입이었는데도 멘탈에 스크래치도 꽤 나서 다시 할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이걸 또 한다고?

그건 아닌 거 같아.

그런 가치관이 내게 있기 때문에, 나는 과몰입을 금세 갈아치우는 유저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의 가슴에 상실의 구멍이 생겼다고 그 구멍에 아무 막대기나 쑤셔 넣어보면서 상실의 구멍을 막으려고 하면 그건 교미에 미친 짐승 새끼지 사람 새끼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최근엔 좋지 않게 보고 있다. 나는 그렇게 자그마한 관계에서도 과할 정도로 스크래치가 나서 엄두가 안 나는데, 쟤넨 대체 뭔데?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인가?

 

오늘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친구의 과몰입에 대한 길고 긴 이야기였지만, 지금도 강렬하게 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내용 하나.

"나는 미래의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잘 모르겠다. 만약 지금의 과몰입과 헤어졌을 때, 지금의 나는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가 되어 상실감 때문에 다른 과몰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 과몰입을 그만두는 게 내게 좋을 수 있지만, 정말로 과몰입을 깔끔하게 끝낼 수 있을까? 미래의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확신할 수 없다."

솔직히 듣고 나서 진정성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게임하면서 들은 과몰입 고민이라고는 '이런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얘가 이러이러해서 힘들다' 등 대부분 1차원적인 고민이었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는데 상대가 충족시켜 주지 못 해 내가 힘들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사실 안 하느니만 못 한 고민이다.

내 욕심과 기대가 있는데 상대가 내 위주로 생각해 주지 않아 힘들다는 어리광.

정말 상대를 좋아하는 건지 나를 좋아하는 상대를 보는 게 좋은 건지 알 수 없는 고민들.

 

하지만 '그만두고 나서 상실감 때문에 주기적으로 갈아치우는 유저처럼 되어버리면 어떡하지?'란 고민은 완전히 달랐다.

나는 친구의 과몰입 고민을 들었을 때, '수명이 끝난 관계. 상대방에게도 좋지 않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만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친구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만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려웠다.

한 달짜리 과몰입이었던 나도 스크래치가 꽤 컸고 마음에 상실감이 꽤 컸다. 내가 그만하자고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던 거였는데도 큰 마상을 입었고, 그 뒤로 단 한 번도 과몰입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크게 긁혔으니까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1년이나 붙어 지낸 과몰입과 헤어진다면, 상실감이 정말로 크다면 나는 구멍을 다른 막대기로 채우지 않을 자신이 있나? 내가 들어온 데미지를 도저히 혼자서 버티지 못 해 다른 사람을 안식처로 사용하려는 나쁜 마음을 가진다면, 나는 내가 욕한 짐승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솔직히 나도 자신 없었다.

그런 이유라면 헤어지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할 때마다 진심인 양 얘기하는 주제에 정작 오래 가지도 못 하면서 주기적으로 갈아치우는 유저도 사실은 그저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라면 이해해 주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그저 내가 남들보다 멘탈이 조금 더 강한 사람일 뿐이라면? 그들이 진심이 아닌 게 아니라 그저 감정적으로 힘든 걸 견디지 못 하는 거라면?

잘 알지도 못 하는 내가 짐승 운운하며 너무 과하게 표현했던 건 아닐까.

가난한 사람이 가난하고 싶어 가난한 게 아니고,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삶을 사는 이들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닌데.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환경이 있어 그렇게 살아온 건데, 타인의 인생을 이해할 맘도 없이 그저 매도하기 바쁜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과 내가 다르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래서 글을 쓰기 망설여졌다.

그래도 여러분이 과몰입을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과몰입을 시작하든, 과몰입을 그만두든 단 하나만 명심했으면 좋겠다.

과몰입이 끝나고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표지처럼 가슴에 뻥 하고 구멍이 뚫렸을 때, 그 구멍에 아무 막대기나 쑤시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만 누군가를 선택하고 또 밀어내길.

그 사람이 좋아서 하고 싶고 그 사람과 이젠 예전 같지 않아 그만하고 싶어야지, 봄이라고 계절 탄다고 자기 마음이 외롭다고 누군가를 선택하고 헤어지고 쓸쓸하다고 새로운 사람을 또 선택하며 사람을 갈아치우는 일을 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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