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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게임을 접지 못 하는 이유 [VRChat 보고서 59편]

by 심해잠수부 2024. 4. 16.

이 게임을 하다 보면 회의감을 많이 느낀다. 나만이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게임하는 내내 좋았으면서도 꾸준히 따라다녔던 생각 '이제 그만할 때 됐지 않나'라는 생각. 완전 쌩뉴비였던 1개월 때를 제외하고 항상 나를 따라다녔던 생각.

초기의 VRChat 보고서를 읽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 현실엔 없을 정도로 상냥한 유저들. 아바타 때문에 과하게 친절한 유저들.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 하는 관계 욕구를 게임에서라도 풀고 싶으니까. 내게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거절하기 어려우니까. 현생에 결핍이 많으니까.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게임이라면 좋기만 해야 할 텐데.

VRC는 스트레스 수치가 정말 높다.

 

사람과 관계하는 게임인 만큼, 다른 게임 유저와 관계를 맺으며 얻는 스트레스 모두를 얻을 수 있다. 예전에 '군대'라고 표현했듯이, 군대에서 사람을 가두리 양식 쳐놓고 느낄 수 있는 모든 방식의 스트레스를 VRC에서 받을 수 있다.

과도할 정도의 스트레스.

 

마약 같다.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스트레스를 견디는 일.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순간의 쾌락 때문에 자기 정신과 몸을 망가뜨리는 일 같다.

 

무슨 쾌락?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상냥한 감정. 과도한 관심, 과도한 도킹, 예쁜 여자가 된 듯 날 띄워주고 예쁜 말만 해주는 주변 유저들. 내가 누군가에게 잘 보일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내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유저, 성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어 내게 과하게 잘 해주는 유저, 현실에선 친구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친구가 안 생기는데 게임에서 접속해서 친구와 얘기만 하고 있어도 생기는 새 친구와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시기 동안 짱친이라도 된 듯 나를 대해주는 모습.

 

하지만 안다.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감정이란 걸.

 

교류가 활발한 공간인 만큼 더 매력적인 다른 사람 찾으면 떠나는 현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질척거리는 섹스 어필하는 유저는 자꾸만 들러붙어서 사람을 화나게 하고, 친구는 좋지만 과하게 진지충인 친구의 친구 과하게 예의가 없는 친구의 친구 과하게 눈치 없는 친구의 친구는 짜증 나고, SNS에선 별 일도 아닌 일로 지들끼리 다투고, 커뮤니티에선 별 일도 아닌 일로 지들끼리 저격하고, 시덥잖은 일로 디코에서 싸우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나는 외로운데 나의 그녀는 나를 바라봐주지 않고.

내 친구들도 예전 같지 않고 친한 줄 알았던 녀석들은 나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거 같아.

 

스트레스 수치가 괜히 올라가기만 하는 거지 같은 상황.

그만해도 될 텐데.

 

용기를 내어 풀트를 팔고 뚝배기도 남 줘버리는 결단력 있는 유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많은 유저가 게임에 코 꿰여 게임에 질질 끌려다닌다. 희망 고문처럼, 가끔 외로워서 의지하고 싶을 때 누군가가 잠시라도 어깨를 내어주면 조금이라도 쓰다듬어주면 내 얘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준다면 내 마음은 또 괜찮아지고 행복한 느낌을 받고.

그 짧은 시간의 쾌락에.

그 짧은 시간을 찾아 자꾸만 게임을 맴돈다.

이승에 미련이 남아 성불하지 못 하는 귀신처럼.

그렇게 몇 년을 보내는 유저들이 있다 나 또한 다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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