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Chat 보고서 75편: 친구 브붕이가 맨날 우울한 이유>에서 내가 생각하던 호감고닉의 정의를 말한 적이 있다. '호감고닉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짝사랑을 감추고서 호감고닉이란 핑계를 대가며 친구를 일방적 연애 감정을 태울 사람으로 바라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짝사랑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 호감고닉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유형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전에 썼던 VRC 일기를 다시 보았다.
나는 그 때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는 떠나가야 할 사람이었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많이 보고 싶다고 느꼈다. 그래서 같이 있고자 했는데, 그는 그가 좋아하는 사람 옆에만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서 섭섭했다. 내 멋대로 기대하고 내 멋대로 실망하며 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그 때 나는 그를 꽤 좋아했던 거 같다.
하지만 어떠한 선을 넘는 감정은 아니었다.
과몰입을 하고 싶다거나, 너무 좋아서 미칠 거 같다거나 하는 종류의 감정은 아니었다. 오랜 친구였고, 내게 잘 해주는 친구였고, 사랑스럽기도 한 친구여서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미묘한 감정이었다. 짝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레벨의 감정이었다.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한 뒤, 친구들이 생각났다.
호감고닉을 옆에서 관찰하며 마음을 태우는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들과 대화할 땐 항상 질문을 하곤 했다.
"아니, 그럼 고백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연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고요?"
"야스를 하고 싶은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린 거 같은데."
내 주변엔 짝사랑을 호감고닉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유저가 많았다. 대부분은 이어지고 싶어 하는 유저를 호감고닉이라 부르는 듯 보였다. 그래서 과몰입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짝사랑하는 감정으로 관찰하며 울고 웃는 친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과몰입이라는 말을 쓰면 게이가 되는 거 같아 짱친으로 도망가는 녀석이나, 양성애자라고 하면 게이라이팅 당할까 봐 범성애자 타령하는 녀석처럼 비겁해 보일 뿐이었다. 걔네도 짝사랑을 호감고닉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비겁한 녀석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닌 유저도 있다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
관음증 환자처럼 그저 옆에서 관찰할 뿐인 변태처럼, 그저 호감고닉을 지켜보며 과몰입이 깨지길 바라는 유저도 있다는 걸 이해한다. 과몰입이랑 꽁냥대느라 프라이빗에서 나오지 않아 원망하며 과몰입 깨지고 다시 내가 관찰할 수 있는 프플방에 있길 바라는 유저도 있다는 걸 이해한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의 감정은 아님을 아는 유저가 존재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완벽한 형태의 애정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형태의 애정도 존재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누군가를 향해 진심의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정말로 그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연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 애정이 존재할 수 있다. 사랑과는 거리가 먼 감정으로 누군가를 흠모할 수 있다. 상대가 나를 바라봐주지 않더라도, 나만 상대를 지켜보며 집착하듯 마음을 애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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