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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암캐를 꼬셨다는 착각 [VRChat 보고서 88편]

by 심해잠수부 2025. 1. 19.

VRC엔 암캐가 많다.

'당하고 싶어 하는 발정 난 남성 유저'가 많다. 자기를 마구 휘둘러주길 원하고, 성적 대상으로 써주길 바라는 유저가 많다. 타인에게 '쓰인다'는 느낌으로 정신적 만족을 느끼는 유저. 자신의 성욕과 소비되고 싶다는 욕망의 결합으로 드러나는 존재, 암캐.

 

현실에선 쓰이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기 쉽지 않다.

여자는 애매하게 못 생긴 남자에게 자신의 성욕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약 외모가 나쁘지 않다 하더라도, 그래서 욕망을 드러내고 싶다고 하더라도 상대 남자가 어떤 사람일지 모르니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동성애자가 남자에게 욕정 하는 일도 똑같다.

모두가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매칭될 일이 없다. 머리 위에 따먹히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위의 생각이 보인다면 편리하겠지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모른 채 정상인 코스프레만 하고 있으니 매칭될 수가 없다.

 

VRC에선 다르다.

예쁜 아바타를 쓰고 있으니 타인에게 불쾌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남자가 카와이 무브를 치거나 터치할 때 과한 반응을 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귀여운 척하고 예쁜 척하며 돌아다니면, 욕망이 강한 친구들이 상대에게 자기 욕망을 어필하기 시작한다.

쓰이고 싶으니 도킹이 들어와도 싫지 않다.


암캐가 많기 때문에, 누군가를 꼬시는 난이도는 솔직히 매우 쉽다.

친구와 내가 종종 하는 표현이지만, VRC에서 누군가를 꼬신다는 건 '딸깍' 수준에 가깝다.

 

그런데, 종종 그런 의문이 들곤 한다.

암캐를 꼬시는 입장에서, 암캐를 '꼬셨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의 여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암캐를 꼬셨다면 암캐가 나를 따라와야 하는데, 반대의 경우가 정말 많다.

암캐를 꼬셨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인스턴스에서 마주치면 걔가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고 내가 걔 주위에서 맴도는 경우.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주려고 했더니 걔 주위엔 사람이 항상 있어 굳이 내가 쓰다듬어줄 필요가 없는 상황.

꽃의 주위를 맴도는 꿀벌이든, 똥의 주위를 맴도는 똥파리든, 걔가 꽃이든 똥이든 내가 벌이든 파리든 뭐가 됐든 간에 주인공은 내가 꼬셨다고 생각한 그 암캐다. 그 주위를 맴도는 나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일 뿐이다.

정말 내가 꼬신 건가?

그저 내가 암캐에게 간택 받았을 뿐 아닐까?

그럼에도 많은 유저가 걔를 꼬셨다 착각한다.

그저 몸 한 번 섞고 걔에게 넘어간 팔로워일 뿐이면서, 그럼에도 자기가 걔를 함락시켰다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그저 걔가 심심할 때 골라 먹을 사람 중 하나일 뿐인데, 자기가 꼬셨다 착각한다. 몇 번 하고 걔의 흥미가 떨어져 자기만 쫓아다니고 있는 상황은 정말로 완벽한 예다.

그저 걔가 심심할 때마다 간택 받는 입장 주제에 꼬셨다는 표현을 쓰는 게 옳을까.

꼬셨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걔가 날 바라보고는 있어야지.

 

나도 많은 유저와 섞여 논다. 하지만 서로의 욕망과 시간, 성향이 잠시 운 좋게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그들 중 내가 꼬셨다고 할 만한 이는 거의 없다. 잠시 마주친 NPC 수준을 벗어나지 못 한다. 내가 걔를 함락시킨 듯 보여도 서로 우연히 이해가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보고 싶다며 나만 리퀘를 보낼 뿐이라면, 누가 누굴 꼬셨다 말할 수 있는 걸까? 리퀘를 자꾸만 보내는 쪽일까? 리퀘에 관심도 없는 쪽일까? 걔에게 간택 받지 못 하면 같은 인스턴스조차 들어가지 못 하는 이가 걔를 꼬셨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만나더라도 걔가 허락하지 않으면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걔가 불쾌하다고 로그아웃 하면 그만일 뿐.

걔를 괴롭히고 무언가를 요구해서 받았다 하더라도, 주인님이라도 된 양 행세하더라도, 정작 걔가 널 따라다니지 않고 너만 걔를 따라다니고 있다면, 누가 진짜 주인일까? 주인님 소리 듣는 사람을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주인님인 척 행동하는 사이버 생체 딜도가 아닐까?


어떤 이들은 암캐에게 너무 많은 선택권을 쥐여준다.

개차반 같은 성격을 가지고, 놈팽이 같은 행동을 하며 암캐를 꼬셨다 착각하며 살아간다.

암캐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게 만들어야 진짜 주인님인데, 매력을 갈고닦을 생각도 없이 게임에서조차 도태남의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며 딸깍 버튼과 다를 바 없는 암캐를 꼬셨다 착각한다. 걔가 나를 흥밋거리 삼아 잠시 가지고 놀아주었다고 자기가 걔를 꼬셨다 착각한다.

그지 같은 성격으로 잠시 딸깍 했다 착각해봐야 걔는 내 뒤를 따라오지 않을 터인데.

걔가 나를 졸졸 따라다녀야 진짜인데.

자긴 절대 암캐 같은 녀석에게 먼저 리퀘를 보내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걔가 싫으면 꺼지라 해 나도 그런 앤 관심없어 지 발로 기어들어 오는 애가 진짜야 라며.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듯 말하던 그 말의 의미를.


누군가가 을이라며 매도할 생각은 없다.

진짜를 얻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 꼬셨다고 착각하며 걔가 내게 구라를 친다느니 내 리퀘를 거절한다느니 화를 내어선 안 된다 생각할 뿐이다. 내가 꼬신 게 아니라 간택 받았을 뿐이니까. 애초부터 내가 가졌던 게 아니니 화를 낼 이유도 없다.

이 말을 이해한다면, 그들과 돈독한 관계로 지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 상대를 꼬셨다며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놈팽이 같은 행동을 멈추고, 상대가 원하는 걸 필요할 때마다 내어준다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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