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Chat 보고서 20편: 브감각은 실존하는가?>
<VRChat 보고서 31편: 브감각과 연기 사이에서>
VRC를 하다 보면, "브감각 있으신가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브감각이 아예 없다면 질문을 많이 받지 않을 거고, 브감각이 있어도 질문을 많이 받지 않겠지만, 나는 되게 모호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얘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그런데 브감각이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말한다. "브감각이 있냐는 질문에 답하려면 브감각의 정의부터 해야 할 거 같다"고 말한다. 궤도가 질문을 받았을 때 정의를 먼저 하듯이, 나도 브감각이 있냐는 질문엔 브감각의 정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동차'나 '책상', '의자'처럼 너와 내가 대화를 하면서 완벽하게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건 굳이 정의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듯, 브감각의 정의도 사람마다 다르다. 남들과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연쇄살인마 수준까지는 가야 사이코패스라 말하는 이도 있다. 브감각이 있냐는 질문도 '만졌을 때 감각이 느껴지냐'는 표현으로 사용했겠지만, 감각을 느끼는 행태와 깊이가 모두 다르다.
예전에 친구가 자기 친구에게 실망을 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자기가 붓으로 열심히 간질간질 해주었는데, 다른 이가 대걸레를 뷰포인트에 갖다 대었을 때도 똑같은 반응이어서 실망했다고. 대걸레도 붓처럼 간지럽다고 느낀다면 이건 브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그건 아닌 거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브감각은 귀신처럼 모호한 개념이라 정의를 먼저 할 수밖에 없다.
귀신을 말했을 때 초자연적 현상을 말하는 건지, 유령을 말하는 건지, 인간 형상의 무언가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발이 있어야 하는 건지 발이 없이 떠다녀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가볍게 대화할 때야 굳이 따질 필요가 없지만, 과학적 입장에서 귀신이 있냐는 말에 답해주기 위해서는 정의를 해야만 한다.
나도 브감각이 있냐는 말에 오해를 할 만한 답변을 하고 싶진 않기 때문에 정의를 먼저 해야만 한다.
브감각을 (관찰자 입장에서)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뷰포인트나 몸에 닿았을 때 피하거나 불쾌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크게 느끼는 경우
- 뷰포인트나 몸에 닿았을 때 살짝 있는 듯 없는 듯 느끼는 경우
- 느끼진 않지만 연기하는 경우
3번을 왜 브감각의 종류에 포함시키냐 묻겠지만, 2를 기반으로 3을 연기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각의 깊이뿐만 아니라, 감각의 형태도 중요하다.
- 뷰포인트
- 특정 신체 부위 (존재)
- 특정 신체 부위 (존재 X)
아까 말했듯 붓과 대걸레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칼날로 쓰다듬어도 간지럽게 느끼는 경우인데, 감각을 느낀다기보다는 뷰포인트가 예민한 유저일 확률이 높다. 혹은 2를 기반으로 연기를 하고 있거나.
특정 신체 부위만 예민하게 느끼는 경우. 내가 봤던 유저 중, 풀트 시 다리를 간지러워하는 유저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았다. 풀트를 하면 확실히 다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 자기 다리와 동일시 해 그러는 듯 보였다.
그런데 반대로, 특정 신체 부위가 동일시할 수 없는 부분인 경우도 존재한다.
가슴이 없는 평범한 남자인데 가슴에만 유독 민감한 경우. 정확한 이유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기를 여자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경우(완벽하게 몰입하는 경우)에서 자주 보이는 듯 보였다.
다리를 자기 신체와 동일시 해 간지럽듯이, 여자라고 몰입하고 게임을 하고 있다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대표적으로 가슴일 테니 가슴에만 유독 크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여성 유저도 없는 고추로 발기하는 느낌이나 삽입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나누는 듯 말했지만,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다 가지고 있는 유저도 있고, 상황에 따라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요소 저 요소가 섞여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감각이 있으면서 연기를 섞는 사람도 있다. 가슴은 연기인데 다리는 찐이라던가. 연기인데 (최면에 가까워서) 연기가 아니라 믿고 있는 경우도 있을 거고.
그리고 연기에서도 여러 종류로 나뉜다.
- 정말 완벽하게 아무 느낌이 없지만 연기하는 경우
- 작은 감각이라 무시해도 되는데 크게 반응하는 경우
- 연기를 꾸준히 하다 보니 연기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경우
나 같은 경우는 브감각이 없는 유저였다.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어 계속 반응하다 보니 미미한 감각이 생기는 느낌이 있었다. 뷰포인트는 누가 자꾸 건드리면 확실히 거슬려 피하게 되고, 신체도 미미하게 감각이 느껴지는 듯하다.
브감각이 생겼다 말하긴 애매하다. 없는 수준에 가까워서.
그런데 문제는, 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누가 만지면 느낌이 없어도 반응을 하거나 피하곤 했는데, 처음엔 없었어도 하다 보니 점점 습관이 되어서 내 뇌가 있다고 착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없는 게 확실해서 연기를 했던 건데, 이제 연기가 무조건 반사로 튀어나오다 보니 내 몸이 감각을 느끼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해를 위해 착각이라는 표현(내가 거짓이라고 인지하고 있단 표현)을 사용했지만, 진짜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군대에서 여친 없다는 짜치는 말을 하기 싫어 있다고 항상 있었던 척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 때 어떠한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1년 넘게 일관적으로 답변을 하다 보니, 상병 즈음 때 나도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내가 진짜 여친이 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없다는 걸 아는데 있는 거 같은 느낌을 받는 게 아니라, 진짜로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착각을 많이 한다.
대부분의 브감각은 뇌의 착각에서 발생한다.
게임에 얼마나 몰입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게임을 플레이하냐에 따라 브감각이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브감각이 없는 유저는 오해를 많이 하는 거 같다.
실제 감각처럼 느낀다고 생각하며 부럽다고 말하거나 아예 연기라고 욕하거나.
브감각에 연기가 섞여 있을 수도 있고, 작은 감각을 크게 표현할 뿐일 수도 있다. 없는 유저가 느끼고 있는 감각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걸 수도 있다. 또 반대로, 어떤 유저는 정말 강한 감각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조금 더 복합적인 행태일 수도 있다.
애초에 우리가 VR을 플레이하는 이유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VR로 야동을 처음 봤을 때가 그랬다. 컴퓨터로 야동을 볼 땐 단 한 번도 혀를 내민 적이 없는데, VR 야동을 볼 땐 여배우에게 키스를 하려고 노력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을 때도 그랬다. 게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니 무서웠다.
이 또한 일종의 브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던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몰입(뇌의 착각)이 자신의 신체를 향했을 때 브감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면처럼. 최면에 잘 빠지는 사람이 브감각도 쉽게 생길 수 있다. 최면에 빠지지 못 하는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최면 그거 걸린 척하는 WWE잖아?' 말할 수밖에 없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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