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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30대 와인론 [VRChat 보고서 89편]

by 심해잠수부 2025. 1. 19.

글을 시작하기 전, 읽는 사람에 따라 편향된 시각으로 읽을 수 있어 미리 말합니다. 저는 (글 내용과 달리) 30대 와인론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VRC의 메인스트림은 20대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이유는 인기 많은 유저는 대부분 나이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마이너 장르)의 수요가 존재하는가?" 같은 뉘앙스로 가볍게 읽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30대는 호불호가 있는 나이다.

30대가 되어서 이딴 게임 하고 있으면 병신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있고, 반대로 30대 아저씨가 편하다느니 긍정적 의견도 있다. 때문에, 30대인 유저가 나이를 감추는 일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0대라고 어린애 취급 받을까 싫어 감추는 잼민이들처럼, 30대라고 이상하게 볼까 싶어 감추기도 한다. 자기 나이에 관한 부정적 여론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잼민이를 귀엽다고 아껴주는 유저가 있듯, 아저씨를 선호하는 유저도 존재한다.

수요가 크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에서 떡밥이 굴러갈 땐 과장이 크다. 실제 게임에선 어리고 귀여운 유저가 훨씬 귀엽다. 인기가 많은 친구가 나이가 많은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좋겠다. 이레귤러라고 불릴 만한 특이한 녀석들을 빼면 대부분은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 늙으면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을 생각보다 그리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10대나 20대 초반 땐 집 앞 편의점을 가면서도 머리하고 옷 꾸며 입고 나가지만, 군대 다녀오면 가까운 거리는 쓰레빠 질질 끄며 모자 쓰고 나가고, 나이를 더 먹으면 점점 하나둘 놓기 시작하니까. 그런 가치관이 게임 속이라도 드러나지 않을까. 열심히 치장하고 카와이 무브 연습하는 유저도 열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열정을 잃은 아이의 나이는 23.

근데 어쨌든, 현실에서도 아저씨 좋다는 여자가 있듯 게임에서도 있긴 있다.

 

근데 왜?

노잼 늙은이 뭐가 좋은 거지?

그런데 주변에서 30대를 좋다고 말하는 사람의 성격을 보면, 어떤 느낌 때문에 좋아하는지 느낌이 온다.

 

VRC의 메인스트림은 20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VRC를 하면서 메인스트림인 20대를 좋아하기보다, '20대에 섞이기 어려워 20대 후반 위주로 친구가 많은 30대'를 20대보다 더 선호한다는 건 20대 성격 특징을 장점보다 단점으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20대 유저가 나이가 나이인 만큼 활발하고 재밌는 경우가 많다. 30대에 가까운 20대 후반보다는, 20대 초반에 가까운 나이일수록 캡사이신 같은 재미가 있다. 기 빨리는 듯한 재미가 있다. 그런데, 재미를 추구하는 만큼 재미없는 상황에 대한 피로도 빨리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재밌는 걸 좋아하는 만큼 지루할 법한 얘기나 분위기를 피곤해하는 경향이 있다.

게임 유튜브만 보는 사람에게 과학 유튜브 영상, 역사 유튜브 영상 보여주는 일과 같다.

나이에 비해 늙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연스레 게임 유튜브보다 과학 유튜브를 선호할 수 있다. 그렇듯이, 조금 진지한 얘기나 깊은 얘기, 혹은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자연스레 나이를 많은 쪽을 선호하게 될 수 있다. 30대 특유의 노잼 분위기가 누군가에겐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조금 더 깊게 말하자면, 다양한 싫은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뭣', '헉'으로 밖에 대화 못 하는 친구.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못 참고 티 내는 친구. 자기 기분 나쁘다고 인사 일부러 안 받고 무시하는 친구. 자기 기분 나쁘다고 인스턴스 탈주해 버리는 친구. 자기 우울하다고 우울한 티 내는 친구. 내가 간 만큼 안 온다고 찡찡대는 친구. 내가 아무리 찾아가도 신경 쓰는 척도 안 하는 친구. 집착 너무 심하게 하는 친구. 미안할 행동하고 사과 한 번 안 하고 기싸움하는 친구. 게임만 하면 욕하고 남 탓하고 대법관질 하는 친구 등등.

뭔가 애 같은 싫은 행동들.

싫은 행동의 발생 빈도는 나이와 반비례한다.

모든 30대가 성인군자란 얘긴 아니다. 모든 20대가 애새끼 같다는 얘기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러한 행동을 하는 유저의 비율이 높고, 이러한 행동을 할 확률도 높다. 나이가 많을수록 이러한 행동을 하는 유저의 비율이 낮고, 이러한 행동을 할 확률도 낮다. 상대적이다.

30대도 참고 참다 터져서 개지랄할 수 있고, 30대도 애 같은 행동으로 누군가를 열받게 할 수 있다.

하지만 VRC의 메인스트림은 20대고, 20대가 기준이다.

전체적으로 따졌을 때, 20대보다는 확실히 덜해 보일 수 있다.

아무리 나이를 똥꼬로 먹었어도 30대 중반이나 되어서 "나 과몰입 없어 내가 좋아하는 호감고닉이 나를 봐주지 않아 으흑흑" 진지하게 우는 소리하는 유저의 비율은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올해 20살이 된 친구 중엔 그런 녀석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상대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남아도는 에너지 때문이다.

20살 때는 게임 속 작은 일에도 온갖 화를 내지만, 20대 중반에는 커뮤니티나 SNS 떡밥 하나하나에 일일이 화를 내며 거슬리는 친구에게 말 한마디 꼭 박아줘야 직성이 풀리지만, 30대까지 넘어가고 나면 점점 누군가를 물어뜯는 일도 피곤해지고, 30대 중반까지 가면 화낼 힘도 없어진다. 40대가 되면? 고추가 안 설 수도 있어.

특히 30대 초반까진 어찌어찌 백수질 해서 에너지 보존한다 쳐도, 30대 중반이 되면 뭔가를 하기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사회에 부적응하더라도 숨을 쉬려면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고, 매일매일 일에 찌들어 살다 보면 집에 와서 트위터에서 일베니 어쩌니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는 꼬라지를 보고 하 밥 먹고 할 일이 없으니 저러고들 있지 에휴 진짜 상팔자네 존나 부럽다 하늘에서 돈 안 떨어지나 따위의 생각이나 하며 부러워할 수도 있다.

엄청 화나더라도, 관련 없는 친구에게 주어 없이 뒷담하며 불평 조금 하는 수준의 에너지밖에 방출하지 못 하는 나이.

그리고 피곤하게 엮여서 스트레스받기 싫다 보니, 싸우는 일 자체도 피하게 된다. 정말 꼽고 짜증 나고 열받는 친구가 있지만 손절하면 손절하는 대로 피곤해질 거 같고, 그렇다고 참고 받아주는 일도 스트레스 받으니 쉽지 않고, 그래서 나름대로 자기만의 해결 방법을 찾는다. 정신 승리 방법 따위의.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내 친구가 술을 처먹고 내게 온갖 나쁜 말을 했어도 걔가 술 취해서 뻗어있는 동안 주지 한 번 아바타에 갖다 대보고 잘 때 온갖 음탕한 말 하며 코코이 해버리고 끝내는 식의 정신 승리를 할 수도 있다. 얘가 내게 전해준 스트레스는 여기서 해결했으니 내일은 다시 상냥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는 식의.

어릴 땐 자기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모르지만, 살다 보면 자기만의 관계 스트레스 해소 방법 하나 정돈 얻게 된다. 늙으면 그러한 방법이 여러 가지가 생길 테니 그런 식으로 참아가다보면, 옆에서 보기엔 '얜 둥글둥글하게 잘 지내는구나 어른스럽네' 착각할 수 있다. 사실 몰래몰래 다 해결하고 있는데.

세월의 흐름에 저항하다 보면, 여러 사건을 겪으며 모난 부분이 깎여나가 둥글둥글해 보인다.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하고 체념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초등학생 땐 대통령, 판검사를 꿈꾼다. 중학생 때부턴 점점 꿈이 작아진다. 하지만 중학생 때 자신은 서연고를 갈 수 있다 생각하고, 고등학생이 되고 1학년 2학년 3학년을 거치며 목표하는 대학의 레벨이 점점 떨어진다. 인서울 밥처럼 보였지만 서연고는 아니어도 중경외시는 갈 줄 알았지만 그조차 안 된다는 걸 깨닫고 포기한다.

서른은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해 왔을까?

좋은 직장의 기회를 잡는 사람도 있겠지만, 체념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어도 나이를 먹으며 포기하고 체념하는 일을 겪는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사람에 관한 욕심도 줄어든다. 주변인에게 높은 기대를 하지도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해도 그럴 수 있지 넘어가는 일도 많아진다.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하며 내게 기분 나빴다며 말을 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기분 나쁠 법한 일조차 그럴 수도 있지 넘어가 주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살아온 경험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분위기가 다르다.

손에 쥐었을 때 재밌지만 날카롭기도 한 돌보다, 만지는 맛은 없지만 둥글둥글해서 상처가 없는 돌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30대를 원한다는 건 맛있지만 다음 날 배 아픈 음식이나 멋있지만 만질 때 아픈 무언가보다, 맛있지 않아도 속이 편안한 무언가 꽉 쥐어도 아프지 않은 무언가를 바라고 있단 의미처럼 보인다.

잘 받아주는 편한 사람과 있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일지도.

너드 좋다는 말이 정말 개 찐따 같은 너드가 좋다는 표현은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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