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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친구 브붕이가 맨날 우울한 이유 [VRChat 보고서 75편]

by 심해잠수부 2024. 8. 18.

어떤 브붕이는 주기적으로 우울을 싼다.

친구도 많고, 플탐도 녹일 만큼 녹인 브붕이지만 주기적으로 우울을 싼다.

과몰입이 없어 과몰입 깨질 일도 없고, 친구도 많고, SNS나 커뮤니티에서 활동도 열심히 하고, 디스코드에서도 잘 놀고, 자기를 좋아해 주는 친구도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우울을 싼다.

 

VRC를 할 만큼 했으면 친구는 있을 만큼 있다. 많지는 않아도, 자기 플레이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인재풀(?)은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선 그룹 내 관계가 원만하고 놀 친구만 많다면 굳이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주기적으로 우울해하는가?

 

친구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친구를 생각하는 깊이와 친구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가 다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감정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대하는 감정의 깊이가 다를 수 있다.

 

VRC의 묘한 포인트는 '친구'와 '연인'의 경계가 옅다는 점이다.

게이 문화처럼 친구와 연인의 경계가 옅은 문화를 지니고 있다. 현실의 친구 관계에선 동성끼리 좋아하는 감정 자체가 없는데, 이 게임에선 브붕화 된 유저들 대부분 친구와 연인의 경계가 옅다.

여기서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친구'와 '잠재적 연애 상대'의 구분이 없다.

현실에서 동성 친구에게 매달리면 정신병자 소리 듣기 딱 좋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친구나 친구가 적은 친구끼린 서로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걔네가 어쨌든 간에 기본적으로 친구 관계는 '재밌게 놀 수 있는'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약간의 의리. 약간 신경 더 써주는 관계. 걔네가 나를 내가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솔직히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조까이 생긴 남자한테 좋아하는 감정 받아서 뭐 어따 쓸 건데? 걔가 나를 싫어하는 티만 안 내면 걔가 내게 열 받는 행동만 안 하면 그리고 재밌게 놀 수 있다면 OK일 뿐이다.

하지만 남잔데 남자를 좋아하는 친구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연애 감정을 기반으로 친구를 바라보니까.

걔가 날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VRC가 그렇다.

 

누군가는 친구끼리 어울리면서도 누군가가 날 내가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듯 보이면 혼자 상심하고 우울을 싼다.

현실에서 이 꼴값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을 때가 언제냐면, 친구가 여자랑 잘 해보고 싶어서 미친 듯이 애를 쓰는데 잘 안 될 때 그런다. 특히 여자 경험이 별로 없는 친구들이, 여자가 자길 좋아하는 감정을 많이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일수록 심하다.

세상 모든 여자가 자길 안 좋아하는 거 같거든.

자긴 주변에 꿀 떨어지는 애들이 너무 부러운데 나만 안 생기는 거 같거든.

VRC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겠지.

 

나도 그럴 때가 있다.

내가 그닥 관심 없어 하는 금사빠 같은 친구들은 날 좋아하지만 난 얘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누가 봐도 귀여운 사람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 도킹한다. 하지만 귀여운 사람 주변엔 더 나은 사람이 있고 걔넨 걔네와 붙어있길 더 좋아한다. 나랑은 안 놀아준다. 처음엔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도킹이 꾸준히 지속되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VRChat 보고서 55편: 자존감을 빠르게 떨어뜨리는 방법

거기다 내 호감고닉은 내가 이렇게 대놓고 좋아한다 그랬는데 나 유기했네?

자존감이 안 떨어지겠냐고.

그리고 사람의 감정을 오랜 시간 잡아두고 천천히 작업해서 도킹해도 먹힐까 말까 한데 어떤 애들은 금사빠 같은 감정으로 오만 곳에 들이대고 다닌다. 그렇게 들이대 봐야 아무도 자기 감정을 받아주지 않는데. 공들이지 않은 도킹은 실패만 불러올 뿐인데 미친 듯이 시도하고 미친 듯이 우울해하다가 혼자 설레고 혼자 안심했다가 혼자 멘탈 터지고 혼자 우울 싼다.

누군가는 나를 상대로 그러기도 한다.

난 걔를 진짜 친구로만 생각하는데, 걔는 날 좋아해. 걔가 아무리 좋아해도 난 걔를 친구로밖에 생각 안 하는데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걘 내가 좋아해 주길 바라고 있어. 어쩌겠어, 아쉬운 거지. 근데 난 걔네 행동을 보면 너무 답답한데, 왜 자꾸 친구에게 연인의 감정과 관심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는데, 정작 나는 또 내가 다른 애에게 그러고 있네?

친구와 잠재적 연애 상대를 혼동해 가며 누군가를 좋아하고, 좋아한 감정을 보상받지 못 해 우울한 일이 너무나 흔하다.

 

그런데 현실에선 '여자 때문이다' 따위의 이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반면, 이 게임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친구와 '연애'를 하고 싶은 건지 '친구'로 지내고 싶은 건지 정작 본인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분명히 친구랬는데 친구에게 연인의 감정과 관심을 요구하고, 분명히 친구랬는데 자꾸만 집착하고, 분명히 친구랬는데 혼자 아등바등하며 짝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호감고닉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짝사랑을 감추고서 호감고닉이란 핑계를 대가며 친구를 연애 대상은 아니지만 일방적 연애 감정을 태울 사람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호감고닉에게 자신이 준 만큼 호감을 받길 바라고.

그들을 아이돌과 유사 연애하는 팬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울해하고.

 

친구는 친구로 보자. 연애를 하고 싶다면 연애의 감정으로 제대로 다가가고. 호감고닉이란 허울 좋은 단어 써가며 친구를 상대로 유사 연애 태우지 말고. 네가 걔를 좋아한다면 짝사랑을 인정하고 걔에게 진지하게 다가가고. 그럴 자신이 없다면 친구로만 보자. 여기 찔러보고 저기 찔러보고 왜 내가 좋아하는 애들은 날 좋아해 주지 않냐며 우울싸지 말고. 걘 친구로 생각하고 있을 뿐인데 친구에게 연인의 감정과 관심을 달라고 조르면 안 되지. 그라믄 안돼 정말로.

정신 차려야만 해, 우리....

이거만 이해하고 조심할 수 있다면 게임 내에서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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