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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허공만 바라보는 이유 [VRChat 보고서 13편]

by 심해잠수부 2023. 4. 15.

"VRC 유저가 우울해지기 가장 쉬운 순간"은, 프플방에서 허공만 바라볼 때다. 

'자주 놀던' 프플방, 친한 친구가 많은 방에서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위험하다. 한 발만 더 나아가면 게임 접을 수도 있다.

퍼블릭에서 인스턴스 바꿔가며 놀 상대를 찾을 때야 '친구가 없으니까' 그렇다 쳐도, 친구를 생길 만큼 생겼고 좋아하는 사람도 친한 사람도 있는데 친구 많은 방에서 대화 상대가 없어 허공만 쳐다보는 일이 가능할까? 

 

자주 놀던 그룹의 프플방에 조인했다. 14명이 속한 인스턴스로, 친구는 8명이고 나머지 6명은 모르거나 알긴 아는데 친구는 아닌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A(4명) B(4명) C(3명) D(3명) 으로 파티가 나뉘어 대화하고 있다. 입장했을 때 친구들과 인사는 나눴지만, 인사가 끝난 뒤 친구는 각자 파티로 돌아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느 파티를 골라 대화에 끼어야만 한다. 

벌써 어렵다. 

"환영받는 유저"는 인사하고 대화하며 '자연스레' 어느 파티로 이끌려간다. 인사하고 인사 후 거울을 찾아 자리를 잡는 과정 속에서, 자기를 반겨주는 사람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되며 대화에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다.

친구가 무슨 얘길 하고 있었든 자신과 대화하려는 시도가 생긴다. 대화 주제가 새로운 친구를 끼워서 대화하는 식으로 바뀌고, 기존 대화를 이어간다고 해도 참여하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대화에 끼기 어렵지 않다. 대화 참여 난이도가 대폭 하락한다. 

"환영 못 받는 유저"는 다르다. 거울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지 못 했다. 배척은 당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환영받고 있지도 않은 유저의 모습. 그래서 어렵다.

이미 A, B, C, D가 나름의 장막을 쳐두고 대화하고 있다. 대화에 끼려면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공기 흐름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만약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렇군요'하는 식의 무미건조한 답변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

내가 쥐어짜 내서 하는 말을 들어봐야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나 안 들면 다행이다. 정말 재밌는 얘기를 하거나 상대가 반응하기 좋은 말을 해줘야만 하는데, 그걸 잘 하는 사람이었으면 브얄 안 하고 있었겠지. 애초에 말 걸기 어려워 보이는 장막이 생기지도 않았겠지. 

 

프플방에서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다는 건, '내게 관심있는 사람이 없다'는 시그널일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내가 대화할 때 즐거운 사람은 아니다'라는 시그널일 수 있다. 다가가기 어려운 장막이 생기는 이유가 '친구가 나에게 관심 없기 때문'이니까. 

관심 없는 이유야 다양하다. 

며칠 전 내 발언이나 행동으로 미움을 샀을 수도 있고, 과몰입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 친구와 둘만 얘기하고 싶어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는 걸 수도 있고, 그룹 내 정말 성격 좋은 몇 명에게만 매달리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걔에게 관심을 안 줬으니 똑같이 환영하지 않는 모습으로 되갚아주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어떤 친구랑 트러블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말만 듣고 나와 거리를 둔다거나, 이전 아바타가 취향이었는데 새로운 아바타로 바뀌어 관심이 식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아바타가 점점 족같아지더니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수준을 넘었을 수도 있고, 재미랍시고 이상한 기괴한 아바타를 만들어오거나, 과한 섹드립을 많이 쳐서 그럴 수도 있다.

PC로 접속한 유저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마이크에 자꾸 선풍기 바람을 넣는 유저라 그럴 수도 있고, 마이크 음질이 구려 대화할 때마다 "뭐라고요?"를 너무 자주 말해야 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아직 대화 놀 정도로 친해지지 못 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됐건, 허공 보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언행으로 미운털 박히고 있는 과정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룹에서 디스코드 등으로 '더 친한 그룹'이 형성됐는데 자기만 끼지 못 한 상황일 수도 있다. 자기가 쌓아온 업보를 청산하고 있는 과정일 수 있고. 정확한 이유야 모르지만 어떤 이유가 됐건 좋지 않다. 

 

"너무 과한 생각 아니야?"
"상대와 대화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한 거 아니야?"

그렇게 물을 수 있다.

내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울싸개마냥 과하게 '피해망상'하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도 누군가를 환영하지 않은 적이 있다.

내가 환영하지 않은 사람, 내 친구가 환영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한 명도 없었을까? 3-4명이서 대화하고 있을 때, 그 파티에서 이미지가 그닥 좋지 않은 유저가 들어오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인사만 한 번 하고 자기들끼리 계속 얘기해서 주변에서 계속 맴돌게 하다 결국 방에서 나가게 만드는 행동을 나라고 안 해봤을까? 

정말 성격 좋은 사람 아니고서야 호감도에 따라 환영 여부가 결정된다. 

 

퍼블릭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8일뉴비가 그려본 화본역 유저들 - VRChat 마이너 갤러리

1.일본어로 대화하길래 일본인인가했더니 한국인인사람들 정말많았음2.어디선가 존나게 큰소리+존나 불꽃+용+퓨슈유ㅜ유융  이 소리나면 대부분 가면라이더유저들임이펙트 존나 화려하고 존

gall.dcinside.com

"진짜??" "ㅋㅋ" "ㅋㅋㅋ"
"안녕!"
"..."
"진짜??" "ㅋㅋ" "ㅋㅋㅋ"

퍼블릭에서 일어나는 일이 프플에서 일어나지 않을 리 없다. 퍼블릭처럼 '대놓고' 일어나지만 않을 뿐이다.

은연 중에 묵언이나 데탑 유저를 밀어내는 모습, 자기랑 친한 사람만 끌어모아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 일절 안 주고 끼리끼리만 대화하는 행동,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 몇 명이랑만 놀려고 하는 모습 등.

모두가 친해서 하나로 어울려서 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복잡한 친구 관계, (모두 다른) 사람 성향, 대화의 주도권 문제 등여러 문제 때문에 그렇게 깔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결국, 허공을 바라보는 건 주변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 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과 자신의 환경 문제다. 다만, 주변에서 나를 그렇게 대하는 원인은, 퍼블릭 월드의 뉴비가 아닌 이상 자기 업보인 경우가 많다. 뭐가 됐든 간에.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해도 만족한다면 괜찮다. 걱정할 필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는 '누군가와 놀고 싶어서' 접속한다.

게임을 오래 한 유저일수록 '알고 지내던 친구와' 놀고 싶어서 접속한다. 그룹의 대화에 끼지 못 한 채 듣기만 하면서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듣는 걸로 만족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과 '친분'을 쌓고 방에 있으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친분이 없어 다른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진 않는다. 

같이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서 오는 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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