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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대화 주도권 [VRChat 보고서 14편]

by 심해잠수부 2023. 4. 15.

프플방에서 몇 명이 대화하고 있을 때, 그들과 친한 그룹에서 우르르 방으로 몰려가는 일이 있다. (서로 친한 친구들이지만 다른 인스턴스로 나누어져 따로 놀고 있을 때) '쟤네랑 같이 놀자'며 방을 합치려는 경우다. '가자'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기 많은 친구 혹은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한 둘 모여 자연스레 옮겨질 때가 많다. 

관계에 작용하는 인력 때문에 일어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당장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내 주변에서도 하루에 여러 건 발생한다.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이 일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예전에 블루룸, 메룸에서 자주 지냈을 때가 있었다.

그 때의 우리는 차분하게 얘기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우리와 연결고리가 있는 다른 그룹의 친한 유저가 종종 조인했었다. 그런데 이 유저는 인기가 많은 편이라, 여기에서 놀다 보면 꼭 다른 친구들이 따라왔다. 그렇게 한 둘 늘기 시작하면, 그 지인과 지인의 친구들이 방 분위기를 장악하곤 했다.

지금이야 다들 친하게 지내지만, 그 때는 그렇게 가깝던 사이가 아니라서 방에서 대화 주도권을 뺏기기 시작하면 대화하기가 힘들어져 우리는 항상 인스턴스를 새로 파 방을 옮기곤 했다. 

 

최근에도 유사한 일은 많았다. 

자주 볼 수 있다. 몇 명이 모여 대화하고 있으면 우르르 몰려와 방 분위기를 장악하는 일. 방에 있던 몇 명과 대화하고 싶은 게 아니라, 친구가 저기 있고 저기 사람이 많아 재밌을 거 같으니 저기서 놀자는 식으로 찾아와 자기들끼리 대화하는 일.

그 과정에서 기존 방에 있던 유저는 우르르 찾아온 사람과 인사도 해야 하고, 인사하고 약간의 대화를 하다 보면 아까까지만 해도 쥐고 있었던 대화 주도권은 온데간데없다. 찾아온 걔네에게 섞여 놀든가, 아니면 나가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방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대화 주도권이 이전되는 (나쁘게 말하면 강탈당하는) 현상"이다. 방과 방이 합쳐질 때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조인할 때도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A, B, C가 얘기하고 있는데 D가 오면 A, B, C 사이의 대화 주도권이 유지되며 D만 추가되는 형태가 될 수도 있고, D와 B, C에게 대화 주도권이 형성되며 A가 대화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

'같이 대화하면 되지 않냐?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A와 D 사이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A가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된 이유가 (대화 주도권을 뺏긴 이유가) D가 의도적으로 A의 말엔 대답하지 않는 사람이라, 혹은 A가 D의 반응이 무서워 말을 걸기 힘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D가 등장한 뒤 B, C, D에게 대화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 

또는 A, B가 활발한 성격이 아닐 수도 있다. A, B, C가 조용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D, E, F, G, H가 와서 엄청나게 하이텐션으로 웃긴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조용한 A, B는 피로할 수 있다. D, E, F, G, H가 만드는 분위기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 하는 성격이라 걔네가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A, B는 방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각자의 성향이 있다. 

어떤 사람은 소규모로 조용히 대화하는 일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대규모로 대화하면 자기가 말할 기회가 적어 싫어할 수도 있다. 대규모로 떠드는 경우는 인기 많은 리더격이 분위기를 주도하기 때문에 그의 공연장이지 무언가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느낌이 없다고 싫어할 수도 있다.

그렇게 노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넘어갈 수는 없다.
끼려고 하는 노력하지 않은 네가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기존 대화하던 인원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찾아가는 방이 소규모 방일 때가 더욱 더. 

 

최근엔 2명이서 대화하고 있는 방에 우르르 찾아가서 외국인을 내보내 버린 일도 있었다.

2명이서 대화하고 있는 인스턴스에 찾아갔었다.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시도하며 재밌게 놀려고 했을 뿐이지만, 그저 말할 수 있는 상대와 재밌게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지만, 한국어로 한국인끼리 대화하고 있으니 외국인은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고 나가버렸다. 우리가 오기 전만 해도 둘이 잘 놀고 있었을 텐데. 

찾아온 무리와 잘 섞일 수 있는 사람이야 불만 없겠지만, 섞이지 못 하는 사람도 있다. 고민하지 않고 저지른 행동으로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듯한 행동을 저지르게 될 수 있다. 그들이 놀고 있던 소중한 공간의 분위기를 존중하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라고 잘 노력하고 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친구랑 노는 행동 자체가 기쁘고 즐거우니까, 자기가 즐거우면 그만이니까 그런 부분까지 존중하고 배려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야 나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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