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모습과 니가 필요로 하는 나의 모습이 같지가 않다는 것, 잘못된 건 아니지 않나요? 미안할 일 아니지 않나요? 그런데 왜 또 그렇게 자꾸 날 몰아세우는 건데. 도대체 뭐를 더 어떻게 해. 난 몇 마디의 말과 몇 번의 손짓에 또 몇 개의 표정과 흐르는 마음에, 울고 웃는 그런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대체 내게서 뭐를 더 바라나요? 내가 줄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줄 수 없음에 미안해해야 하는 건 이제 그만둘래요.
과몰입 관련한 내용엔 자주 등장하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다. 과몰입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에 고찰하는 글에도 종종 나왔을 법한 공통점이 있다.
상대가 원하는 걸 만족시켜 줄 수 있어야만 한다는 내용.
시간이든, 감정이든 무엇이 됐든 간에 상대가 나와 관계를 맺으면서 얻고 싶어 하는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만 관계가 유지가 된다는 이야기. 그래서, 서로에게 요구를 많이 하지 않으면서 의리처럼 관계를 가져갈 수 있는 자만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길 때는 이런저런 말로 설명해 봐야 결국엔 하나다.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신뢰가 깨졌을 때.
그리고 신뢰가 깨지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바를 만족시켜 주지 못 하기 때문이다.
쓰다듬 받는 걸 좋아하는 유저는 상대가 나를 쓰다듬어주어야만 한다. 아무리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같이 어울려도, 이제는 더 이상 쓰다듬어주지 않는다면 자길 좋아하지 않는 걸까 의심한다.
같이 헬다이버즈 하는 게 좋은 유저는 같이 헬다이버즈를 해주어야만 한다.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겠지만 진짜다. 브수면을 같이 하는 게 좋은 유저는 브수면을, 브야스하는 게 좋은 유저는 브야스를 등등.
반대로 무언가를 해주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다.
다른 유저에게 도킹하지 않거나, 다른 유저와는 브수면을 하지 않거나,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주면 안 되거나 등등 그러한 종류의 무언가일 수도 있다.
무언가를 하든 무언가를 하지 않든, 상대가 내게 요구하는 무언가는 작은 행동부터 큰 행동까지 퀘스트처럼 빼곡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퀘스트 목록은 유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다른 유저와 질펀하게 놀아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면 상관없는 이도 있고, 아무리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해도 다른 유저와 자꾸 놀고 싶어 하면 의심을 하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디코 메시지만 꾸준히 보내면 OK지만 누군가는 브얄에서 얼굴을 꼭 봐야만 한다.
모두 서 있는 위치가 다르고 자기 자리에서 상대를 바라본다.
친구 관계는 퀘스트를 굳이 할 필요 없고 재밌기만 하면 유지되는 경우도 많지만, 과몰입은 3개월 법칙을 벗어난 과몰입이 아니고서야 매일매일 내게 내려지는 퀘스트를 하스스톤 일일 퀘스트 하듯이 전자 식물 게임에 물 주듯이 해야만 한다.
다는 아니어도 만족할 정도는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사소한 배려 하나도 하지 않아서 의심을 살 뻔했지만 자기 전에 사랑해 쪽쪽 한 마디에 다 채워질 수도 있고, 배려를 엄청 많이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이 악물고 사랑한다는 말은 부끄럽다며 안 한다면 의심을 살 수도 있다.
가장 흔한 퀘스트는, 처음 좋아할 때 보였던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는 일.
그리고, 일반적으로 나쁜 행동을 했어도 퀘스트 목록에 없다면 신뢰는 깨지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누군가는 오히려 자길 무시해 주길 바라고, 오히려 다른 누군가를 만나길 바라기도 한다. 어떤 누군가는 과몰입이 있는데도 다른 유저에게 도킹한다며 욕을 하겠지만, 그건 자기네들끼리의 얘기지 다른 친구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 익명 창구에 문제 있다는 듯 쓴 누군가가 과연 과몰입이 아니라 다른 친구겠냐만은.
많은 친구가 이런 이유로 고민하곤 한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옆에서 보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친구들이 과몰입을 하며 일반적인 기준에서 상대를 위한답시고 노력하느라 힘을 빼고 있기도 하다. 상대를 위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야 아름답지만, 정말 담배를 태우고 싶고 상대가 담배를 태워도 괜찮다 생각한다면 가끔씩 담배를 태워도 괜찮지 않을까.
중요한 건 상대에게 '일반적인 기준'에서 지킬 걸 지키는 게 아니라, 상대의 퀘스트 목록과 상대를 대하는 내 마음이다.
관련된 퀘스트가 목록에 없다면, 오히려 "내가 이런 걸 해도 괜찮냐" 물었을 때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해주어서 고맙다고, 네가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잘 느껴진다고 네가 이런 거 하나하나 내게 물어봐 주는 게 고맙다며 좋아할 수도 있다.
어차피 퀘스트에 없는 행동이라 안 불편하거든.
오늘도 많은 유저가 자기 과몰입의 감정을 의심한다.
상대가 내 퀘스트 목록을 무시하거든.
내 친구도 그랬고 내 또 다른 친구도 그랬으며 어제 커뮤니티에서도 어제 SNS에서도 디스코드에서도 브얄에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온갖 의심이 난무한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뭐가 저리 복잡한지 싶다가도 나 또한 경험을 쌓고 있을 때 같은 고민을 했었다.
모두가 퀘스트 목록을 보며 과몰입의 감정을 신뢰하지 않는다.
실제로 감정이 식었을 수도 있고, 오히려 내 욕심이 큰 걸 수도 있지만.
누구 잘못이 됐든 간에 실패하는 퀘스트가 늘어날수록 엔딩으로 가는 속도는 빨라진다.
내 퀘스트 목록을 자꾸만 어기는 친구와는 오래 갈 수 없다.
네 퀘스트 목록을 자꾸만 어긴다면 나는 친구와 오래갈 수 없다.
상대의 퀘스트 목록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이웨이로 사는 친구는 결국엔 차인다.
그리고 퀘스트 목록이 너무 많은 이는 좋은 인연 다 까다가 결국 혼자 남는다.
우린 과연 어디 즈음에 위치하고 있을까.
내 글을 읽는 모두가 내가 욕심이 많다기보다 상대가 내 퀘스트를 존중하지 않는다며 글을 읽고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누가 잘못했냐가 아니라, 신뢰가 중요하다면, 일반적인 기준에서 고민하지 말고 네 친구 혹은 과몰입의 기준을 알면 도움이 된다는 얘기지.
VRC 아이돌이 다른 유저와 엄청나게 해대고 다녔다는 걸로 공론화가 터지고, 그러한 일을 연인 사이에 하면 안 된다는 듯 말하는 유저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일을 연인 사이에 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러한 퀘스트 목록을 가진 이에게 하면 안 될 뿐이다. 내 과몰입이 평범한 녀석이 아닐 수도 있다.
브붕이 오프라인 만남에서 꼬추를 빨았다며 공론화가 터지기도 하고, 브붕괴담이라 불리며 그런 행동은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양 말하는 유저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일을 친구 사이에 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러한 퀘스트 목록을 가진 이에게 하면 안 될 뿐이다. 내 친구가 평범한 녀석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아 보여도 평범할 때도 많으니 꼭 상대를 파악하고 물어보고 존중해줘.
빤 사람은 괜찮은데 옆에서 본 친구나 이야길 들은 친구는 또 괜찮지 않을 수도 있으니.
주변인의 퀘스트 목록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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