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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자존감을 빠르게 떨어뜨리는 방법 [VRChat 보고서 55편]

by 심해잠수부 2024. 3. 27.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자존감이 항상 높게 유지되는 건 아니다.

자존감은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누구든 변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인생이 잘 풀릴 때는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 아무런 도움 없이 유지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주변 환경에 따라 높게 또는 낮게 변할 수 있다.

건전한 사람은 자존감이 떨어졌다가도 아무 일 없으면 서서히 회복되고, 건전하지 못 한 사람은 자존감이 올랐다가도 별 일 아닌 일로 서서히 떨어지겠지만, 어쨌든 변화는 발생한다.

 

그리고 VRC는 자존감의 발목을 잡는 일이 많다.

 

나는 필요로 하는 사람, 혹은 나를 필요로 했으면 좋겠는 사람이 나를 원하지 않으면 섭섭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한 번 정도 일어난다고 정신에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별로 관심 없나 보네." 건전한 정신을 가진 이라면 크게 타격받지 않고 넘어간다.

하지만 내 성격이, 내 아바타가, 내 목소리가, 내 현생이, 내 접속 시간이, 내 플레이 타임이, 디코나 SNS 사용 유무가, 특정 게임을 같이 할 수 있는지 여부 등 여러 요소에 따라 '꾸준히' 거부될 수도 있다.

내게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몸 컨디션 문제로) '브수면을 같이 하고 싶다'는 상대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 해서, (현생이 바빠서) '같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상대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 해서, (좋아하는 친구가 많아) '나만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상대의 집착을 채워주지 못 해서, 상대의 과몰입 도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내가 거부당할 수도 있다.

내가 현생이 바빠 게임에 잘 들어가지 못 하고, 들어갔을 때 최대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어떠한 선택을 했을 때 선택받지 못 한 다른 유저가 (그간 찾아오지 않은) 나를 나쁘게 여겨 거부당할 수도 있다. 세 달 만에 왔다고 "오랜만이네요!" 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게 아니라, "이 새끼는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이제 와서 오네 개무시해야지"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유저도 분명히 있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니까.

 

상대의 취향과 내가 가진 결점,
그리고 결점이 아님에도 결점이 되는 문제들.

이러한 '거부'가 연속적으로 발생할 때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 일주일 이상 지속해서.

게임할 때 재수 없게 패배만 하는 시기가 있듯이 그래서 게임을 접어버리는 게이머가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재수 없게 일이 안 풀릴 때가 있다. 관계에서도 이상하게 패배만 하는 듯한 시기가 있다.

그 때 우리는 자존감이 위협받는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이상한가? 내가 문젠가? 내가 조금 바뀌어야 하나? 내가 못 생겨서 그런가? 내 목소리가 구려서 그런가 말투가 구려서 그런가 왜 그러지.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이 왜 나에게만 칭찬을 안 해주고, 왜 나에 대한 칭찬은 항상 '노력'을 열심히 한다 같은 아무 쓸모 없는 칭찬뿐이지? 나도 노력 없이 가만히 있어도 예뻐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도 저렇게 좋아해 주면 안 되나? 쟤는 맛도리인 친구들에게 그렇게 도킹하면서 나한텐 한 번도 안 하네 내가 진짜 그렇게 매력이 없나? 나 깊게 알지도 못 하면서 나는 거부부터 당하네.

근데 오랜만에 찾아갔더니 개무시하고, 기껏 찾아갔더니 졸리다고 가버리고 기분 안 좋다고 가버리고, 아 뭔가 기분이 그렇네. 내가 잘못한 걸까. 내가 뭔가 크게 잘못했나. 내가 그렇게 별론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계속 거부할 정도로 그리 별론가. 아바타라도 새로 꾸밀까 여목이라도 배워야 하나 하아 게임 재미없다 진짜.

난 진짜 별로인가?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주식 트레이딩을 해본 사람이 있을까? 코인을 했어도 상관없다.

주식 트레이딩에서 시드 전체를 포지션으로 잡았을 때, 돈을 한 방에 잃지 않아도 금방 잃을 수 있다. 크게 잃지 않아도 거래 횟수가 많으면 돈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거래엔 수수료가 들어가고, 매도를 하면 세금을 내니까.

확실히 돈을 얻을 만한 전략이 있다면 거래를 많이 해도 돈을 불릴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은 아무 근거 없이 어딘가의 뉴스 기사 어딘가의 소스 따위만 보고 공부하지도 않은 차트와 호가를 보며 베팅을 하고 가끔은 따고 가끔은 잃으며 결과적으로 돈을 조금씩 잃는다. 카지노에서 고객의 승률이 48%밖에 되지 않아도 그 작은 차이로 카지노가 돈을 버는 이유와 같다.

갑자기 웬 주식 얘기 카지노 얘기냐면.

 

자존감을 빠르게 떨어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감 가는 사람에게 꾸준히 도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도킹했을 때 좋은 결과가 꾸준히 나올 수는 없다.

우리의 삶에서, 사람 10명이 있으면 5명에게도 호감 받기 어렵다. 유명한 말이 있지 않나. 사람 10명 있으면 2명은 날 좋아하고 2명은 날 싫어하고 6명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렇듯이 내가 도킹했을 때 기껏해야 야구선수의 타율처럼 3할 넘으면 정말 좋은 타율일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이든 게임이든, '과한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

(내가 속한 티어보다 조금 잘하는 수준이면서) 롤을 했을 때 내가 잘 하면 10게임 중 10게임 다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이머나, 마작을 하는데 10게임 해서 10게임 다 1위를 하고 싶어 하는 게이머나, 하스스톤 같은 운빨 게임을 하면서 항상 이겨야 한다고 믿는 게이머처럼 '과한 욕심'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물론 있고.

VRC에서도 그렇다.

내가 친구 목적이든, 과몰입 목적이든, 성적인 목적이든 뭐가 됐든 간에 우리는 친해지고 싶은 누군가에게 접근을 하고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내가 좋아했을 때 좋게 반응해 주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가끔씩 정말 내가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내가 싫어하는데도 나를 좋아해 주는 경우도 있고, 정말 좋아하는데 얘는 별 생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타인에게 도킹을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친해지고 싶어서'인데,

친해지지 못 하는 일도 존재한다는 게 자연의 섭리처럼 바꿀 수 없는 이치여도, 포커에서 아무리 잘 해도 가끔씩 돈을 잃는 상황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호구 같은 경우가 정말 많다. 나도 그렇다. 나도 최근에 자존감이 떨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를 자꾸 받다 보니 기분이 좋지 못 했다.

하지만 그게 내 잘못인가?

우리가 거부 받는 게 진짜 우리 잘못인가?
당신이 거부 받는 게 진짜 당신 잘못인가?

내 잘못도 있겠지만, 억까 같은 거부 중 반절 이상은 내 잘못이 아니다.

 

거부당한 이유 많은 이유 중 대부분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태어났고 그런 사람인 걸 어쩌라고.

그건 확실히 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명확한 내 잘못이 있다.

주식 할 줄도 모르면서 주식에 손대는 주식 투자자가 잘못한 건 '주식을 한 죄'와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자꾸만 매매를 한 죄'다. 차라리 하나 사고 눈 감고 한 달 쉬다 왔으면 차라리 덜 잃었을 텐데, 쥐뿔도 모르면서 수수료와 세금 내는 매매를 하루에 몇십 번 한 달에도 수백 번을 하니 돈을 잃는다.

똑같다.

상대가 내게 호감을 주는 일이 당연하지 않은데 내가 상대에게 호감을 기대한 일. 그리고 상대가 나를 좋아할 만한 사람인지 좋아하지 않을 사람인지도 판단하지 않고 조금 귀엽다 조금 맛도리인 거 같다 관심이 생긴다 꼴린다 등의 이유로 상대방에게 도킹을 한 일. 그게 내 잘못이다.

몇 달 안 봤으면 내게 호감을 가질 수 없는 게 당연한 건데 굳이 가서 친절하게 대해줄 거라 믿고 예전처럼 대해줄 거라 믿고 당연히 잘 대해줄 거라 믿고 조인을 탄 놈이 잘못이지. 그렇게 안 봤으면 잘 대해주지 못 하는 게 당연한 건데 거기서 잘 대해줄 거라 믿는 게 욕심이지.

그리고 상대방을 그리 잘 아는 거도 아닌데 자꾸만 친해지고 싶어 억지로 들러붙는 일이나, 호감작을 천천히 하면서 다가가도 모자랄 판에 무작정 들이대며 해달라는 일이나 뭐 기타 등등 여러 일들. 고백이라는 건 도킹이라는 건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하는 건데 자신의 흥분한 마음 때문에 급작스럽게 일을 키우다 망해버린다.

게임이 안 되어 연패만 할 때에는 대충 안 되는 날인갑다 게임을 끄고 생각도 환기 시키고 맛있는 거도 먹고 게임 유튜브도 보면서 간접 공부도 하고 조금 거리를 두다 다음에 진짜 하고 싶은 날 다시 해야 하는데, 혼자 분해서 억지로 잘 되지도 않는 게임 붙잡고 있으니 연패를 할 뿐이다.

도킹 잘 되지도 않고, 혼자 이런저런 사람한테 죄다 도킹 박고 다니면서, 예전에는 예쁘게 말했는데 어느 순간 천박하게 말하거나 기분 나쁘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게임이 잘 안 되면 조금 끄고 다른 게임 하다 오던지 해야 하는데 뭐 그리 좋다고 다른 사람에게 도킹 어떻게든 하겠다고 어떻게든 친해지고 잘 지내보겠답시고 굳이 억지로 들러붙어서 혼자만의 자존심 싸움을 하며 애정을 갈구하고 안 받아주니 우울해하고 상대를 미워하고.

 

도킹을 너무 많이 하는 시기가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거부를 받는 시기가 있다.

자존감이 떨어질 정도로 영향을 받고 있다면 내가 너무 많은 욕심을 가지고 많은 시도를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그 감정 거기 가만히 두어라.

아픈데도 운동 강박에 시달리며 헬스해 봐야 다치는 건 자신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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