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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누군가가 디스코드를 싫어하는 이유 [VRChat 보고서 76편]

by 심해잠수부 2024. 9. 10.

친구들 중엔 그 때의 나처럼 디스코드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다.

디스코드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번개나 SNS 등 어떤 무언가를 싫어하는 유저는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나도 싫어하는 게 있었다.

나는 브얄 초기엔 디스코드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룹 친구들끼리 실제로 만나 노는 일을 부정적으로 여기곤 했었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음 무언가에 편견을 가지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부정적으로 여기고 싫어한 무언가가 있다.

 

지금은 바뀐 게 많다.

자기들끼리 만나노는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고, 디스코드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내가 그 때 디스코드를 싫어했던 이유는 이미 몇 번 밝혔다.

나는 VRC에서 친구를 보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자꾸 디스코드에 박혀있으니까. 그리고 디스코드에서 같이 게임 한 친구끼리 더 돈독해지고, 어울리지 못 한 나는 점점 멀어지니까. 내 친구가 디스코드를 많이 할수록 나와 멀어지고, 내가 게임할 때 찾을 수 있는 친구가 줄어드니까.

'내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디스코드가 자꾸만 막는 거 같으니까.

 

나는 여전히 VRC에 진심이다.

하지만 디스코드를 이젠 미워하지 않는다.

뭐가 달라졌을까.

 

예전엔 어울려 놀던 그룹 하나가 다였다. 친구 많아 봐야 그룹 다 해도 20명이 안 됐다. 지금은 반대다. 그룹에 모여 놀지도 않는데 아는 친구가 너무 많다. VRC에서 애초에 한 명 한 명 따로 만나는 걸론 다 만날 수가 없다. 관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면 디스코드 같은 게임 외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같은 이유로 트위터 등의 SNS나 VRC 커뮤니티도 긍정적으로 여긴다.

VRC를 하지 않고도 VRC 외의 공간에서 연락하며 친하게 지낼 수 있고, VRC에서 만나지 않더라도 그 때 그 마음이 방부제라도 먹인 듯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과 VRC에서 만날 수 없는데도 VRC 외의 공간에서 관계를 이어가며 VRC를 할 때 재밌게 놀 수 있는 (나와 놀아줄 수 있는 친구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내가 디스코드를 싫어했을 땐 디스코드가 내게 방해가 됐기 때문이고, 지금은 디스코드가 내게 도움이 됐을 뿐이다.

그 차이가 전부다.


우리가 커뮤니티에서 정치 얘기를 금지하는 이유는,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갈릴 뿐인데 옳고 그름이 정해진 듯 서로 멍청하다고 물어뜯기 때문이다. 그저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갈렸을 뿐인데, 주장하는 사람들은 옳은 의견인 양 포장하고 주장한다. 내게 도움이 되니 주장하는 건데, 내가 옳은 걸 주장한다고 포장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이를 쓰레기 취급하곤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모 대기업에서 연봉 1억을 받던 분이었다. 고액연봉자였다. 그런데 이 분은 특정 당을 옳다고 믿는 분이었다. 왜냐면 연봉은 많이 받았지만 대기업에서 미친 듯이 굴려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제도 덕분에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공장에 다니는 분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했는데, 자신의 노동엔 경쟁력이 없어 기본급이 최저였다. 다만 공장 특성상 잔업이 많고 주말 특근, 야간 근무 등이 많았다. 그럴 때 월급을 엄청 뻥튀기 시켜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이 분에겐 주 52시간만 일하라는 제도가 그리 좋은 제도가 아니었다.

전자는 어차피 포괄임금제로 돈을 똑같이 많이 받으니 일을 덜 하면 좋았고, 후자는 하는 일의 시간에 따라 월급이 정해지니 많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후자의 입장을 전자의 입장인 사람에게 말하며 '이런 관점도 있다'고 말하면 멍청하다는 소릴 듣는다. 왜 '옳은 게 있는데 틀린 걸 지지하느냐'라는 이유로.

내게 도움이 되는 거라 좋아할 뿐이면서도, 다들 내가 옳은 걸 지지하고 있는 양 포장한 의견을 말한다. '내게 이득이 되니까 지지한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속물 같아 보일까 싫은 건지 본심을 감추고 옳다는 듯 포장을 하는 일이 많다.

비싼 집을 가지지 못 한 사람은 비싼 집을 가진 사람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며, 고액연봉자는 자산가에게 세금을, 자산가는 고액연봉자에게 세금을, 상위 10%는 자긴 부자가 아니라며 이재용 같은 부자에게 증세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벌이가 없는 이는 어차피 내는 세금이 없으니 서민도 증세를 해야한다고 쉽게 말한다.

온갖 이유로 합당한 근거를 들지만 '나는 안 내고 싶다'로 요약되는 주장들.

당연히 내가 안 내고 싶을 뿐이라 자기 위치가 바뀌면 자기 입장도 우디르가 호떡 뒤집듯 바뀐다.

 

웹툰, <송곳>

 

내가 봤던 많은 친구들은, 무언가를 문제가 있다는 듯 말해놓고 자기 위치가 조금 바뀌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행동하는 일이 정말 많았다. 나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일관적일 수는 없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게 달라지면 가치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사람이 안 바뀔 수는 없다. 사람은 계속 바뀐다. 그들을 이해한다. 실망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 실망할 때가 있다.

바뀌어서 실망한 게 아니라, 자기 감정 문제를 논리적인 듯 포장했을 뿐이었구나 알게 됐을 때.

커뮤니티는 좆목이 망친다. 그런데 좆목이 망친다고 말하는 이들 중 자기가 좆목의 중심에 서게 되면 아무래도 상관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커뮤니티가 좆목을 망친다고 생각해서 싫었던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끼지 못 하는 좆목이 싫어 질투해서 커뮤니티의 좆목을 규탄하는 구성원도 있다.

과몰입 똥게이 같아서 극혐이라고 하던 이가, 정말 똥게이 같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못 하는 게 심통 나서' 과몰입 똥게이 같아서 극혐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가 고백받는 순간 언제 욕했냐는 듯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변절하는 경우도 있다.

 

디스코드를 싫어했다가 좋아할 수도 있다.

나도 쓰는 걸 부정적으로 여기다 잘만 쓰고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싫어하는 관점에서 좋아하는 관점으로 넘어갈 때 찜찜한 기분은 느꼈을까. 고민은 했을까. 내가 이걸 쓰는 게 맞나 한 번이라도 고민한 적은 있나. 잘 쓰면서도 그만 써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 적은 있나 물어보고 싶다 그들에게.

그저 어울릴 디스코드 친구들이 없어 겉도는 기분을 느끼는 게 싫었던 건 아니냐고 묻고 싶다.

네가 주황불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런 거 아니냐고 묻고 싶다.

그저 게임에서 누군가랑 만나서 놀고 싶은데 못 놀아서 심통이 나서 싫어하는 건지, 정말로 주황불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건지 묻고 싶다. 그저 자기 기분을 자극해서 싫어하고 있을 뿐은 아닌 건지 묻고 싶다. 자기 감정이 상했을 뿐이면서 옳은 주장인 듯 포장하고 있을 뿐은 아닌 건지 묻고 싶다.

만약 기분 나빠 싫을 뿐이라면, 내가 못 만나니까 싫은 거라고 있는 그대로 말했으면 좋겠다.

그저 내가 못 하니까, 내가 못 끼니까, 내가 못 노니까 싫은 거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내가 연봉 많이 받는데 일도 너무 많이 하는 게 거지 같아서 일을 덜 하고 싶다고 말하면 뭐 어떤가? 네카라쿠배에서 연봉 1억씩 받으면서 일하는데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법적으로 40시간만 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되지.

그저 내가 과몰입 못 해서 과몰입 하는 애들 싫다고 말해도 되고, 내가 놀 곳이 없어 디스코드 싫다고 말해도 된다. 그래서 주황불이 싫다고 말해도 된다. 자기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쪽팔린 일이 아니다.

나는 묻고 싶다 그들에게.

정말로 그 이유 때문에 싫어하는 건지.

솔직하게 말하기가 쪽팔려 포장한 이유는 아닌지 묻고 싶다.

자신이 말한 그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진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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