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면 가족으로 만들지 마세요 [VRChat 보고서 54편]

근친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가족'이기 때문이 아니다. 가족이라서 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가족으로 지내다 보니 할 수 없게 됐을 뿐이다. 남매가 선남선녀라도 근친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편한' 모습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로 조심하며 지낸 관계라면 가족이어도 얼마든지 눈이 맞을 수 있다.

 

VRC를 하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이를 볼 수 있다.

친구와 어울리기 바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너무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내는 실수.

 

오래 본 그룹 사람을 '가족'이라고 칭하는 유저를 볼 수 있다.

내 친구들도 그랬다. 우린 가족이라며.

그래서인지, 나는 그들을 단 한 번도 친구 이상의 느낌으로 바라본 경험이 없다. 이 정신 나간 게임을 하다 보면 아바타가 이쁘다는 이유 따위로도 이상한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는데, 그들은 아무리 예쁜 아바타를 가져와도 단 한 번도 설렌 적이 없다. 그런 마음이 생겼던 친구는, 관계의 초기부터 그런 마음을 가진 친구들뿐.

걔네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겠지, 서로 도킹하지 않았으니까. 가끔 찐득한 손길로 얼굴 만지면 소름 끼치는데 도킹은 무슨 도킹. "평소였다면 신경도 안 썼을 퍼즈 무브인데도, 사네코가 하니까 그 중량이 다르다!" 따위의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후스케는 나와 뉴비 때부터 친구였던 녀석이니까, 이제는 너무 오래 알고 지내서 강아지 같을 뿐이다.

오키드군, 부탁이니 거기까지만 해주라 같은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아무리 아바타가 예뻐도 아무리 네가 나를 좋아해도 너는 가족이고 노꼴이야.

 

VRC에서 도킹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가족에 가까운 친구가 뽀뽀를 해달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면 어지럽다. 친구는 내 말이 섭섭하겠지만, 나는 상대를 그런 눈으로 쳐다볼 수가 없다. 관계의 초기엔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어도 '가족'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그 어떤 스킨십도 안 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많은 이가 실수를 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혹은 호감 받고 싶은 사람에게 자기 모습을 자꾸만 다 보여주는 행동을 한다.

 

디코를 쓰는 유저가 많다. 디코를 쓰는 거까진 좋다.

그런데 다른 유저에게 친구 이상의 호감을 받고 싶다면 디코에서 어울리는 일 자제해야만 한다.

디코 음성 채팅으로 매일 게임하고 쓸데없는 소리 하고 가끔은 추한 모습에 추한 생각까지 드러내면, 그 디코방에 같이 있던 너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의 모습을 전부 보게 되고 나는 그에게 가족과 다를 바 없는 노꼴 사람이 되어버린다.

VRC에서도 당연하고.

같은 인스턴스에 친구들끼리 모여있다고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 순간 가족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친구와 어울리는 건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껴있다면 어느 정도의 내숭은 계속 떨고 있어야만 한다. 재밌답시고 서로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이 하하호호깔깔 거리며 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그의 잠재적 가능성 리스트에서 제외된다.

좋아하는 사람과 둘이 있을 때도 친하다는 이유로 자꾸만 스스럼없이 자기 모든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브음주 맨날 하던 놈이 넌 왜 나 안 좋아해 주냐고 말하는 일이 정말 어이없다는 걸 깨달아야만 한다. 맨날 술 꽐라될 때까지 마시고 고꾸라지고 술주정 부리는 친구를 어떻게 가족으로 안 볼 수 있겠냐고.

이상한 섹드립치며 깔깔대는 모습도,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모습도, 너무 깔깔대며 웃는 모습도 너무 배 잡고 웃는 모습도 보여주면 안 된다. 특히 술 먹고 꼬장부리는 모습, 술 먹고 고꾸라져 자는 모습, 비속어 섞어가며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들.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설렘을 느꼈던 친구도, 내가 자꾸만 망가진 모습을 자꾸 보여주면 나를 '가족'으로 인식한다. 나는 상대의 그러한 모습을 보지 않았거나 혹은 봤어도 좋아하는데, 상대는 나의 망가진 모습을 보고 나를 가족으로 인식한다. 여기서 안타까운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아무리 애원하고 애원해도 절대 이어질 수 없을 테니까.

가족이라 노꼴이야.

넌 가족 같아.

오키드. 우린 가족이지? 부탁이니 거기까지만 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