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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인간 가면 플레이팅 [VRChat 보고서 97편]

by 심해잠수부 2025. 2. 6.

내 친구 중, 성별은 여자지만 남자 같은 녀석이 있다.

그 친구에게도 남자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녀석은 상처를 꽤 받았던 거 같은데, 내 말의 의미는 너가 남자로 보여(너가 남자처럼 매력이 없어)가 아니었다. 어떤 순간마다 진짜로 남자가 겹쳐 보여서 했던 말일 뿐이었다. 매력과 상관없이.

우리가 VRC에서 뇌가 절여진 채로 현실에서 지내다 보면 뜬금없이 VR 인격이 새어나가는 경우가 있다.

키리토가 현실에서 검이 없는데도 검을 등에서 뽑으려는 듯이, 우리가 현실에서 다리를 오므려 앉거나 귀여운 포즈로 사진을 찍거나 누가 머리라도 쓰다듬으면 강아지처럼 헤헤 거리면서 받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렇듯이, 어떤 순간마다 여자가 남자로 보일 수도 있다.

머리에 히토미 잔뜩 들어가 있는 나 같은 사람이나 날릴 법한 드립을 날린다던가, 분명히 수동적인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데 귀여운 녀석에게 능동적인 포지션을 취하며 같이 프빗 갈까요 으흐흐 하고 알탕의 고추나 날릴 법한 멘트를 날리는 모습을 보면 남자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순간순간.

나는 여성 유저를 경계하지만, 남자로 인식하면 확실히 경계가 옅어진다.

 

반대로, 남자지만 여자로 느껴지는 친구도 있다.

내가 저질 멘트라도 날리면 아- 하면서 싫은 듯한 탄식을 추임새처럼 넣는 친구.

진짜 싫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자가 싫어할 법한 멘트를 칠 때마다 탄식하며 한숨 쉬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여자처럼 느껴진다. 그런 상황뿐만 아니라 평소의 모습에서 그런 순간이 많기 때문에 여자 같다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남성 유저를 경계하지 않지만, 여자로 인식하면 확실히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친구를 따라다니는 친구도 있는데, 좋아하면 닮는지 이 친구도 아- 하고 탄식을 따라 한다.

이 친구는 100% 남자인데도, 남자가 불쾌할 요소가 없는데도 그녀를 따라 내게 탄식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친구가 탄식을 뱉을 때마다 엄청난 위화감을 느낀다. 여자 같은 친구는 탄식할 때 적재적소의 상황에 진짜 여자라면 존나 싫어했을 거 같은 상황에 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 친구는 여자가 아닌데 탄식을 하다 보니 '이건 할 상황이 아닌데?' 싶을 때도 탄식을 뱉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불쾌할 때도 없지 않아 있다.

왜 여자도 아니면서 자꾸 걔 따라 하며 나한테 눈치 주지?

친구(남자) 녀석 몸에서 여자가 주로 쓰는 향수나 샴푸 냄새가 나는 기분을 느낀다. (불쾌하다)


주변에 나를 어필하기 위해서는, 내 이미지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남자 성격 그대로 고칠 생각 전혀 없는 내가 뜬금없이 여자 코스프레를 하면 주변에서 다들 당황해하고 불편해한다. 암캐 같은 모습을 좋아하는 변태 같은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편해한다.

나는 내가 가진 이미지대로 한남처럼 말하고 한남처럼 행동하는 게 가장 어울린다. 인기 없는 요소만 갖춘 모습이라도 그게 그나마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다. 다른 모습이 내게 어울릴까? 내가 다른 매력을 찾고 발견하고 가꾼다면 달라질 수 있지만, 나는 그러한 노력을 할 정도의 열정이 없다.

나는 현실에서의 내 목소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조금 더 멍청한 오타쿠 같은 말투와 목소리였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목소리와 목소리를 비교한다면 더 구려지는 거지만, 내 외모에는 조금 더 멍청한 말투와 목소리가 어울리니까. 지금의 목소리가 얼굴과 매칭되면 나는 성범죄자 같은 사람으로밖에 안 보이지만, 내가 조금 더 멍청한 말투와 목소리를 지니면 왜인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거 같아 괴롭히고 싶은 느낌이 들 수도 있는 멍청한 장난감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

인기 있는 녀석의 말투와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따라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을 무작정 따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그릇에 이케맨 목소리를 구사해봐야 나는 훨씬 더 기분 나쁜 유저가 될 뿐이듯이, 내 주변인이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을 찾지 못 한 채 조금 더 귀여운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암캐 같은 무브를 치려고 하는 실패를 겪지 않았으면 한다.

이젠 홍대마저 따라하는 지디 혹은 탑 니 자신이 되어라 please be original 볼펜보다 칼을 얼굴에 댄 음악들은 그만 듣고파 뻑이 가기보단 빡 공연보다 공중파 음악보다는 개인기 역사를 쓰기보다 image in the making 랩이 옥의 티인 wack mc 대신 내 소개를 합니다 / 연예인이 되게 해준단 달콤한 말을 해도 구미가 안 땡기면 숟가락을 내려
- Mr.Independent 2 중에서

나란 사람을 플레이팅 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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