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친구의 친구분에게 들었던 말이 있다.
"친해진 지 얼마 안 됐을 때 만나면 안 된다. 그 유저와 만나고 싶다면 정말 오래 본 다음에 만나야 한다. 정말 오래 알게 된 후 만나면, 상대가 존나 못 생겼어도 그저 우간다 아바타를 끼고 있는 거 같아서 못 생겨도 별 생각 없이 만날 수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처음에 듣고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래 봤으면 오히려 기대치도 높고, 상대가 실망한 티를 내면 상처도 크게 받을 텐데, 이왕이면 기대가 생기기 전에 빨리 만나서 아픔을 최소화하는 게 좋지 않나?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다음에 그제야 만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알 거 같기도 하다.
오프라인에서 브붕이를 만나다 보면 아바타가 겹쳐 보일 때가 있다. 하는 행동이 존나 똑같으니까, 그의 외모가 아바타와 거리가 멀어도 그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아바타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겹쳐 보일 때가 있다. 현실의 외모가 미소녀가 아닌데도 아바타와 겹쳐 보이면서 내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예전에 어떤 친구의 친구가 모임에 나갔더니 술도 못 마시면서 술을 시키더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VRC에서 술 마실 때는 서로 다 귀여운 미소녀라 행복하고 좋았는데, 그 때와 구성은 똑같은데 시커먼 남정네 모습만 테이블에 가득하니 담배 피지도 않아도 담배 피고 싶고, 술 좋아하지도 않아도 술 먹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고.
눈 감으면 여전히 프플방이지만, 눈 뜨면 충격적인 현실 비주얼.
근데 그 분도 3년 4년 꾸준히 빌드업 쌓고 누군가를 만났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많은 이가 외모가 중요하다 말하지만, 외모가 중요하긴 한데 안 중요하기도 하다.
잘 생긴 사람은 확실히 볼 때마다 좋긴 한데, 못 생긴 사람 계속 본다고 해서 항상 기분 나쁘지는 않다. 충주맨의 얼굴이 내가 군대에서 봤던 종합적으로 별로였던 사람과 매우 닮아서 처음 봤을 때 엄청 부담스러웠는데, 충주맨 유튜브를 자주 보다보면 충주맨도 평범하게 생기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내가 외모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빡빡이 얼굴 보면 기분 나쁠 거 같지만, 보다 보면 아무래도 상관없어지듯이.
못 생긴 남자든 못 생긴 여자든 보다 보면 정말로 별 생각 없어진다.
내 친구가 VRC에서 자기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곤 한다. 예전에도 자기 트위터에 자기 얼굴 올린 친구도 있었다. 그들이 얼굴 공개를 내게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예전엔 생각했다. 나는 친구를 미소녀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자꾸만 강제로 빨간약을 주입하니 VRC에서 미소녀 아바타를 보고 있는데도 실제 얼굴이 겹쳐 보여 기분이 이상할 때가 많았으니까.
근데 인간에게 브감각을 만들어주는 뇌의 멍청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는 건 정말 무서운 포인트다. 미소녀 아바타의 얼굴에 실제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실제 남자 얼굴에 미소녀 아바타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하니까.
<시크릿 가든>처럼 몸이 바뀌는 설정의 스토리는 허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의 행동이 바뀌면 엄청난 위화감이 발생할 텐데 아무 문제를 못 느낀다니. 외모가 전혀 다른 사람이어도 같은 행동의 포인트를 발견하는 순간 내가 알던 그 사람이 겹쳐 보일 텐데 눈치를 못 챌 수 있다니.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저 남자가 미소녀로 순간순간 보일 때가 있다니까?
외모라는 틀 속에 갇혀있는 내 사고관에서 외모라는 단어를 지우는 거 같아 무서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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