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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서로 다른 [VRChat 보고서 19편]

by 심해잠수부 2023. 5. 7.

VRChat 보고서 18편: 게임의 목적에서 말했듯, 게이머는 서로 다른 게임의 목적을 지닌다.

서로 달라 재밌지만, 서로 다르기 때문에 괴롭다. 언급했던 에이펙스 얘기처럼,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유저가 같은 공간에서 뒤엉켜 지내야 할 때 만큼 괴로운 시간이 또 없다.

우리가 롤에서 솔로 랭크를 할 때 괴로운 이유도 그렇다.

승리를 향한 목적이야 다들 똑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탑 위주로 전투하며 성장형 캐리 챔프로 게임을 이끌어가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성장현 정글 챔프로 최대한 파밍하듯이 게임을 이끌어가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미드 라인과 정글이 같이 휘어잡아가는 플레이를 원하고, 누군가는 원딜 캐리를 원한다. 누군가는 서포터가 든든한 국밥 탱커 챔프를 해주길 바라지만 누군가는 딜포터를 하고 싶어 한다.

승리를 향한 집념은 같지만,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방식을 말한다.

 

롤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똑같듯이, VRC에서도 '즐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누구나 똑같다.

누군가가 나보고 "게임에서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했던 친구가 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무리 게임이어도 인간관계인데 생각 없이 행동하는 네가 더 이상한데. 게임이니까 눈치 안 봐도 된다? 게임이니까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된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어떤 유저는 누군가의 섹스 어필이 괴롭고, 어떤 유저는 누군가가 섹스 어필을 자신에게 해주길 바란다. 누군가는 친구끼리 집착하듯 행동하는 게 괴롭고, 누군가는 친구가 자신(혹은 자신의 그룹)에 올인해 주길 바란다. 누군가는 하나의 월드에 박혀 잡담만 하고 싶지만, 누군가는 월드를 돌아다니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에게 '왜 게임을 즐기려고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건 잘못됐다. 롤에서 대놓고 트롤 하는 유저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유저는 나름대로 자기 방식대로 이기기 위해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방향성이 다를 뿐이다.

때문에, 내가 VRC를 하는 목적을 깨닫는 일 만큼, 타인이 VRC를 하는 목적을 깨닫는 일도 중요하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가 서로 목적을 모른 채 맹목적으로 서로를 원할 때 만큼 괴로운 일이 또 없으니까. 

 

나는 얼마 전까지 내가 게임을 시작했던 이유조차 잊고 있었다. 이렇게 지내려고 게임을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구나.

내가 내 이유와 목적도 잊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이유와 목적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의 이유와 목적은 내 이유와 목적보다 더 중요했다. 내 목적과 이유를 알아도 타인의 목적과 이유를 모르면 타인에게 내 목적과 이유를 강요하게 되니까. 

다행히도,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남의 목적과 이유 따위엔 그닥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목적과 이유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의 유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이끌려 들어와 친구라는 존재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길을 잃고 방황한다. 

 

그런 게임이다.

솔로 랭크와 다를 바 없는 게임. 

극단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조용하게 오고가는. 

 

오히려 솔로 랭크보다 마음 아프다.

에이펙스를 하면서, 롤을 하면서 이기기 위해서 혹은 승부욕이 과해서 화가 나면 친구에게 욕도 박을 수 있는 게이머는, 5판만 해도 알 수 있다.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유저도 '저 친구가 게임을 하는 이유나 목적'을 명확하게 금세 알 수 있다. 껄끄러운 상황을 조금만 노력해도 쉽게 피할 수 있다.

하지만 VRChat에선 극단적으로 내몰리지 않는 상황 덕분에 서로의 이유와 목적을 모른 채 게임을 접을 때까지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채 자신에게도 무관심한 채 아무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방황하게 된다.

VRC에서 가장 크게 구분되는 성향인, "게임이니까 스트레스 요소를 없는 듯 묻어버리고 넘어가고 즐거운 관계로만 지내며 나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고 싶지 않은 성향"과, "게임이라도 게임 이전에 인간관계니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싶은 성향"이라는 극단적인 두 가지의 성향조차 많은 유저는 '인지'조차 하지 못 하고 지나간다.

친구라는 개념으로 섞여 지내지만, 사실은 정파와 사파 같아서 섞이기 절대 어려운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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