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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게임의 목적 [VRChat 보고서 18편]

by 심해잠수부 2023. 5. 7.

게임을 하다 보면 내가 이 게임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를 잊게 된다.

나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유저가 잊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게임을 했던 이유. 내가 처음 게임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잊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젠 재미가 없는 이유가 뭘까.
이젠 짜증 나는 이유가 뭘까. 

 

우리는 서로 다르다.

우리의 삶이 달라서, 우리의 성격도, 우리의 배경도 다르다.

때문에, VRC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다르다.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무언가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요소가 있다고 한들 우리가 게임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단순히 이러한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사람과 보이스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게임을 했지만, 누군가는 승철이 만화를 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라며 판타지를 가지며 게임을 했을 수 있고, 누군가는 단순히 너무 예뻐서 꾸미고 싶어서 시작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트위터 등에서 보이는 야스하는 짤을 보고 자기도 하고 싶다고 생각해 시작했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춤을 추고 싶어서, 누군가는 여러 사람과 재밌게 놀고 싶어서, 누군가는 해외에서 만날 친구가 없어서, 누군가는 외국인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등등.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내가 처음 게임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를 잊는다.

마치 내가 좋아했던 친구를, 내가 왜 얘랑 친해졌지 내가 왜 얘한테 관심을 가졌더라 하고 까먹게 되듯이, 게임에 관심 가졌던 이유조차 잊어버리고 나중엔 게임을 '내가 하는 게임이니까' 게임을 하는 이유를 가지게 된다.

방금 설명한 사실이, 게임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게이머인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다. 

 

나는 에이펙스를 할 때 거를 친구는 거른다. '같이 할 때 재밌는' 친구랑만 하려고 한다.

스트레스 받으니까. 누군가는 개지랄염병을 떨면서 게임을 해도 '친구와 같이 한다'라고 생각하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재밌게 게임을 하고 싶을 뿐인데 같이 하는 사람에게 훈수나 지랄까지 들으면 기분이 상하고 재미가 없다.

내가 디코 음성을 하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방송을 안 켜는 이유도, 방송을 켜고 게임을 하면 게임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게임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무슨 내가 자신의 아바타라도 된 듯이 플레이해야만 하니까.

그런 게 싫어서 방송을 절대 안 켠다.

걍 보기만 해. 여기로 가라 저기로 가라 원이 저기네 이렇게 해야 하네 그렇게는 플레이하면 안 되네 말이 많아.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친구가 뭐라고 하든 말든 내가 하고 싶은 방법대로 해야 한다.

그게 섭섭하면, 네가 잘 하던가. 

당연히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내 친구는 승부욕이 강해서 어떻게든 이기고 싶고 이기지 못 하면 개지랄을 하는데, 내가 걔랑 게임하고 싶으면 내가 잘 해야지. 근데 나는 그렇게까지 노력하면서 게임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런 타입의 친구랑은 안 하는 거고. 나는 내 게임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고 걔 게임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근데, 내가 옳은 선택을 해도 친구는 그렇지 않다. 게임의 목적을 모르니까. 

친구는 내가 존나 못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와 하고 싶어 한다. 이건 친구의 잘못된 선택이다. 왜냐면 '그 친구가 게임을 재밌게 하려면 게임이 깔끔하고 즐겁게 되어야 하는데' 나랑 하면 그게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친구라서' '친구니까' 같이 하려고 하는 거니까. 자신의 게임 목적을 완전히 잊어버린 거다. 

걔가 게임을 재밌게 하고 싶으면 나랑 하면 안 된다.

걔의 게임 목적은 친구끼리 재밌게 하는 게 아니고, 친구끼리 개지랄염병을 하면서도 향상심을 가지고 위를 바라보며 달리는 거니까. 나는 걔랑 같이 할 인재가 아니다. 같이 하면 안 되는 인재다. 그러니까 자기가 게임하는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나랑 게임을 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적을 몰라서 나와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아 한다.

 

VRC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승철이 만화에 나왔던 미코처럼 암캐가 되고 싶었다면, 암캐처럼 행동하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게임을 하면서 사귄 친구 때문에, 친구 앞에서 그런 행동을 차마 할 수 없어서, 친해진 친구가 그런 행동은 싫대서 멀쩡한 척 행동하며 친구끼리 하하호호 즐겁게 놀다 어느 순간 미코처럼 행동하는 사람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진다.

트위터 등에서 공유되는 브야스 짤처럼 되고 싶었다면, JHP 에이스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게임을 하면서 사귄 게임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조심하며 다니고, 실제 친구와 친추를 했는데 걔한테 혹여나 걸릴까 봐 조심하며 다니고, 친한 친구가 '주황불로 다니는 애들 기분 나쁘다'고 그러니까 차마 주황불에서 그러고 다니지 못 하겠어서, 그저 야스 한 번 했을 뿐인데 상대가 과몰입하자고 박아버려서 차마 거절을 못 하고 받은 뒤 야스를 못 하고 다니고 그러다 JHP 에이스 같은 사람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진다. 

여자랑 대화하려고 게임을 시작했던 건데 커뮤니티에서 여미새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나빠서, 주변 친구랑 놀다 보니까 꼭 여자랑 지낼 필요도 없는 거 같아서, 그러다 보니 여미새와 거리가 매우 멀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외국인과 놀고 싶었던 건데 한국 친구가 자꾸만 왜 같이 안 놀아주냐고 그래서 신경 쓰다보니 멀어지기도 하고.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어 시작했을 텐데, 주변 친구와 상황에 맞춰가다 보니 자기가 게임을 했던 이유를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은', 마치 돈을 많이 벌고 싶었지만 공무원에 합격해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처럼, 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지만 안정적인 애인에게 맞춰가며 살게 된 사람처럼, 자기 꿈을 잊고 '안정적인 삶'에 몰두하는 사람처럼 변해 게임을 즐기게 된다.

'안정적인' 모습은 갖추었지만, 정말로 자신이 원했던 모습일까 하면 잘 모르겠다.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정말로 재밌어? 그 정도로 충분히 만족해? 

안정적으로 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게임에서조차 안정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원하는 건 버려둔 채로.

이게 게임을 하면서 점점 재미없어지는 이유, 점점 스트레스 받는 이유, 점점 짜증 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다 마음에 안 드는 요소가 터진다면 '그래도 재밌긴 했으니까'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건 단 하나도 하지 않고 주변 상황에 이끌려만 다니고 있는데도 마음에 안 드는 요소가 터지니까 "이 게임을 할 이유가 있나?" 생각하게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VRC의 많은 유저가 게임을 처음 시작했던 이유를 잊고 있다.

여러 친구를 사귀면서, 주변 친구에게 맞춰가면서. '항상 만나서 놀 수 있는 친구'라는 안정적인 선택 때문에. 자신이 원하고 원했던 요소에서 한 걸음씩 멀어지고 있다. 게임에서조차 현실처럼. 고작 게임에서조차. 친삭 당하면 어때서. 쪽팔리면 어때서. 정말로 원했던 무언가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 번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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