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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브감각과 연기 사이에서 [VRChat 보고서 31편]

by 심해잠수부 2023. 9. 2.

예전에 <VRChat 보고서 20편: 브감각은 실존하는가> 글을 썼었다. '브감각은 실존한다'고 주장하는 글이었다. 하지만 브감각의 실존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건, '나를 터치하는 상대가 나를 브감각을 가진 유저라고 생각하는가?'다.

 


이센스가 <오늘의 숙취>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진짜/가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블랭: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게, 요새 세상이, 2017년 이후,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인스타나 SNS에서 어그로라던가 진짜 이게 어디까지가 엔터테인먼트, 이 사람이 래펀가? 광댄가? 싶을 정도로 이게 뒤바뀌는 세상이 이젠 됐으니까. 괴리가 존나 있죠.

이센스:
음악으로 들어갔을 때, 어디까지 내가 엔터테인먼트여야 되나. 어디까지 리얼이어야 되나. 리얼이라는 건 있나. 그런 데서 거의 시간을 쓰는 거 같애요. 왜냐면은, 우리가 들으면 알잖아요? 와 이 새끼 목소리 존나 진짜다. 이 새끼 감정 존나 진짜다. 그게 느껴지잖아요? 아 그게, 아 모르겠어요. 기술의 영역인지.

뱃사공:
졸라 공감하는 게, 저는 그게 다거든요. 저도 그게 다거든요. 그런 어떤 진심적인, 그런 감정적인 그건데. 그게 없으면은 저는 되게 신기하게 저는 눈에 안 보이는 건 절대 안 믿는 스타일이거든요. 하나님도 안 믿고, 어떤 가십거리도 안 믿고, 누가 그랬대도 안 믿어요. 제가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근데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게, 눈에 안 보이지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게 그게 진짜 전달이 돼요 확실히. 이게 진짜다 가짜다가. 만약에 그걸 속이면은 진짜 대단한 거지.

이센스:
이방인 만들 때 어떤 생각이 있었냐면, 예를 들어 아까 뭐가 어디까지가 엔터테인먼트고 어디까지가 진짠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진짜'라는 단어가 진짜 징그러워져요. 다 진짜지. 다 진짜지 아니면 다 가짜거나. 다 가짜인 건 이거죠. 제가 에넥도트 앨범에 에넥도트란 곡을 녹음할 때 저희 아버지 얘기하고 어머니 얘기랑. 그 때 얘기했어요. 이건 한 번 다시 가볼게요. 그럼 그 지점이 딱 생각나는 거예요. 나는 진심으로 우리 아버지 얘기랑 우리 어머니 얘기를 했는데, 그 와중에 더 잘하려고 "이건 다시 가볼게요 이 테이크는 지우자"라고 한 거를 보면 (농담처럼 보면) 그건 가짜예요.

근데 아까 말한 '어그로' 같은 거? 어떤 의도가 있고 그걸 소비하는 층에게 어떤 감정을 전해줌으로써 어떤 효과를 일어나게 한다? 그건 또 진짜예요. 그래서 이방인 앨범에는 거기에 대한 경계선에서 얘기하는 트랙들이 꽤 있는 거 같고, 실제로 저는 어릴 때 누블러드 믹스테입을 내고 할 때 그 모든 게 진짜라고 마음 깊이 100% 120% 받아들이고 생각했어요. 막말로 술 먹고 클럽에서 이 씨발 내가 짱이야 하면 진짜 짱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난 나만 하는 얘기를 해. 근데 이쯤 되니깐, 야 씨바 사람들이 다 자기가 자기 말 얘기 하지 니만 니 얘기를 하냐? 이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음악에서 느낀 인상이란 거는, 아까 그 백엔타임 그걸 얘기를 했을 때 저랑 더 막역해지면 정말 웃기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근데 어떤 사람들에게 잠시 1분간 그걸 줬다? 상상하는 순간을 줬다? 그럼 그건 진짠가? 그래서 이런 생각을 아무래도 음악을 제가 랩을 2001년 2002년부터 했는데 지겹도록 하다보니까 그런 생각에 꽂혀 있던 거 같애요. 뭐가 진짜야 뭐가 가짜야. 그걸 얘기해 버렸어요.

-

뱃사공:
몰입이 잘 안 되는 거야. 근데 몰입을 하는 척을 해야 되고, 근데 난 내 성격이 노래가 끝나고 그걸 얘기해야 되는 성격이야. "아 진심으로 부르려고 했는데 진심으로 잘 안 돼요" 굳이 불편한 발언을 하는 스타일이야 막. 근데 그럼 상대방은 내 진심인 줄 알고 속았을 수 있는데 그걸 가만 냅둬야 되는지, '진심으로 불렀는데 두세 번 부르니까 진심으로 안 되네요'를 말해야 되는지의 충돌 있잖아요.

이센스: 
그래서 농담을 멈춰야 될 순간이 있는 거 같애.

뱃사공:
그지, 농담을 멈춰야 되는데 나는 그걸 좀.

블랭:
형은 버릇이잖아 결국엔.

이센스:
왜냐면, 그래야 본인 속이 편하니까.

뱃사공:
아 맞어. 내 속이 편할라고 해 나는. 내가 거짓말 치는 기분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

이센스:
누군가는 어떤 3분을 보러 왔어요. 근데, 뮤지션이란 건 결국 그건 거 같애. 만약에 네가 공연 한 시간 전에 존나 피곤했더라도, 이 노래 할 때 잘해라. 누군가는 내 노래 3분 때문에 자기 인생 반추하면서 "와 시발" 했을 텐데, 네가 구시렁구시렁대면. 아 근데 이게 나한테 해당되는 얘기라 잘 알아서 그래요.

이센스:
딱 투어할 때만 인정됐던 거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얘기를 관객들한테 했거든요. 난 이거 어쩔 때 사기라고 느낀다. 나는 한 번 지나간 감정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고, 나는 에넥도트에 들어가 있는 사람처럼 살고 싶은 적이 없는데, 여러분은 지금 그 앨범을 듣고 이 공연에 와주었는데, 내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기도 하고 한데, 개인적 기분으로는 그 다음 앨범 그 다음 행보는 에넥도트에 담겨진 감정을 안고 사는 사람이고 싶은 게 아니라, 없애거나 (쌩까는 게 아니라) 극복하거나 밸런스를 맞춘 사람이고 싶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거는 제 앨범을 듣고 온 팬들이라서 할 수 있는 얘기고,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지나가다 보니까 공연을 하네 라고 하는 사람한테는, 처음 보더라도 어떤 식의 에너지를 전해줄 수 있어야 내가 퍼포먼스 하는 사람인 거죠.


 

갑자기 왜 뮤지션 이야기를 하나 싶겠지만, 브감각이든 브야스든 '진짜/가짜'로 나누려는 시도가 존재한다.

브감각을 '가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브감각이 있다고 말하는 유저조차 선택적 브감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브감각을 가진 유저조차 이를 정확히 정의하지 못 한다. 때문에, 브감각은 '정신병'이라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유저도 있는 거고.

다들 '가볍게' 고민하고 끝내기 때문에 '진짜냐 가짜냐' 단순하게 말한다. 있는 거 같으니 있다고 말하고, 아무리 봐도 연기하면서 쌩쇼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없다고 말하고. 그런데 브감각의 실존 여부는 정말로 단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나누려는 시도와 같기 때문이다.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 같은 건 없다.

백종원이 했던 인터뷰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저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있는 척하려고 있는 말했을 뿐이고, 말하고 나서 했던 말 지키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백종원의 인터뷰처럼 세상 모든 것이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도 친구인 척하다 보면 어느 순간 친구가 되기도 하고,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어도 어느 한 순간에 가짜가 되기도 한다. 영화 신세계처럼 말이다. 이자성도 진짜 경찰이었고, 진짜 깡패였다.

브감각도 그렇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는 결국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브감각이 있어도 반응이 시큰둥하고 재미없으면 브감각이 있는 사람이어도 브감각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반대로 브감각이 없어도 그저 연기일 뿐이어도 반응이 맛있으면 (가짜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좋아한다.

현실 섹스도 똑같다. 여친이 진짜 갔는지 안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남친이 보기에 여친이 진짜로 간 거 같다면, 그리고 여친이 기진맥진한 채로 누워있는데 남친이 지나가면서 손끝 살짝 스쳤을 뿐인데 여친이 "읏" 하는 '연기'를 성공적으로 했으면 그게 연기여도 남친은 '진짜'라고 믿으며 지금 당장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분이 된다.

결국 내 몸의 퍼포먼스로 상대를 진짜라고 믿게 할 수 있느냐가 브감각의 포인트다.

진짜로 있냐 없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연기였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진짜라고 믿고 있다면, 굳이 불편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자기가 실제로 싸지 않고 가는 척을 했는데 굳이 구라 치는 기분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안 갔는데 가는 척한 거'라고 말해서 상대에게 갈고리를 수집할 필요도 없다. 한창 떡 치고 있고 야한 소리 내는 주제에 술 마시고 할 법한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 이상한 질문 해봐야 '얘는 왜 야스 하면서 이딴 소릴 하지? 가는 모습은 다 연기였나?' 이런 생각을 할 테니까.

진짜/가짜 그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가는 척을 잘 했고 상대가 정말로 관심을 가졌고 옆에 누워서 행복하다며 말하고 있다면 그거면 완벽하다.

언에듀케이티드 키드가 노래에서 네 여자는 나를 빨구 형들은 눈을 깔구 나는 약을 판다며 나는 또 돈 벌러 가야 한다며 헛소리를 해도 청자가 듣고 느꼈다면 그 곡은 진짜다. 아무리 기믹 래퍼라고 욕을 해도 말이다. 누군가가 브감각 = 정신병 같은 소리를 해도 말이다.

브감각이 진짜면 본인도 즐거울 테니 좋고, 없다고 해도 꼭 진짜일 필요도 없고 가짜 연기면 어떤가?

손석구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짜 연기' 운운하다 논란이 됐다.

사랑을 속삭이라고 하면서 마이크도 붙여주지 않고 (연극이라) 소리를 크게 내야 하는 가짜 연기를 왜 시키는지 이해가 안 됐다는 발언을 이유로. 손석구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진짜' 속삭이려면 마이크를 붙이고 속삭여야 하는데, 연극은 크게 소리치며 속삭이는 연기를 하라고 하니까.

하지만 배우는 '진짜'를 연기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객들에게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존재다. 마동석이 범죄도시에서 구사하는 액션도 현실 격투와는 전혀 다르다. '보이기 위한' 액션 연기지, 실제 액션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범죄 도시의 액션을 좋아한다. 짝패처럼 비현실적으로 배우가 붕붕 날아다니는 액션해도 다들 좋아한다.

나는 재키와이가 정말로 잘 생긴 오빠 입에 지폐를 꽂았는지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재키와이가 쓴 가사를 보며 재키와이가 실제로 잘 생긴 오빠 입에 지폐를 꽂으며 호빠에서 놀았다 생각했고, 그래서 좋다고 느꼈다. 애옹애옹 싸이렌이 울리면 나를 숨겨주던 여자가 있지 위험위험 오토바일 깔으면 내 붕대를 감아준 여자가 있지 같은 소리를 염따가 해도 "담아" 곡에서 나는 느꼈다. 염따가 애옹애옹 사이렌이 울릴 때 도망갈 일이 없다는 걸 알아도 말이다. 나는 기리보이가 호구 잡혔는지 전혀 모르지만 기리보이 호구 들으면서 좋았다. 드렁큰 타이거가 자기 노래 같은 삶을 살았는지 전혀 몰라도 '내가 싫다'라는 곡이 좋았다. 배치기 멤버 뺨 때리고 공연당 15만 원 열정페이로 굴렸던 MC스나이퍼가 "씨발 나도 개새끼들 똥 닦아주긴 싫어" 외치는 'Where am I'도 좋았다.

그들이 정말로 가사처럼 살았는지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나서서 자기 가사가 구라라고 말하지만 않으면. 나를 불편하게만 하지 않으면. 내가 들었을 때 진짜처럼 느껴지면 충분하다. 진짜/가짜가 중요하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감동하겠어 영화는 전부 가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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