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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그룹의 탄생과 소멸 [VRChat 보고서 32편]

by 심해잠수부 2023. 9. 5.

엄청 긴 내용이 될 테니 여유를 가지고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석 달 전, 다른 공간에서 "소속"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써서 발행한 적이 있다.

 

= =

싫어한다고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고 다닐 만큼 나를 싫어한다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하고 (친구 관계를) 끊어낸 건데. 싫어하지 않았으면, 싫어하는 마음만 몰랐어도 굳이 끊어낼 이유도 없었는데, 이유를 자기가 만들어 놓고서는 내가 (그 이유 때문에 친구 관계를) 끊은 게 잘못이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고 친구까진 아니어도 친한 지인은 될 수 있으니까 서로 같이 지내는 건데, 나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예전에 같은 소속이었다" 혹은 "지금 같은 소속이다"라는 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무슨 랩 레이블이나 랩 크루도 아니고. JMIM도 아니고.
너 우리 그룹 들어올래? 해서 동아리마냥 명단 올리는 행위도 아니고.

더 이상 끌어당기지 못 하거나 밀려나는 누군가는 그룹에 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가 더 재밌는 사람을 찾아 떠났든, 그룹 멤버 여럿에게 미움받아 점점 밀려나고 있든, 어떤 이유가 됐건 울타리 바깥으로 떠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서로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마음, 그러니까 '소속을 만들어 가는 본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겉보기에 실재하는 듯 보이는 '표면적인 소속'만 중요시한다.

"우리 즐겁게 같이 있었던 과거가 있고 이러한 '소속'으로 묶어놓은 듯 지냈는데, 너는 왜 같은 소속이었던 사람을 그렇게 쉽게 팽 내치냐."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이유겠지. 소속을 구성하는 서로의 마음이 아니라 표면적인 소속을 중요시하니까.

소속은 인간이 인간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만들어진 두루뭉술한 테두리를 정의하는 단어일 뿐이다. 소속을 만드는 건 '소속의 이름'이나 '우리 같은 그룹이다' 같은 그룹 의식이 아니라, "서로를 끌어당기는 마음"이다. 그런데, 마음은 중요하지 않고 표면적인 소속이 중요하다는 사람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표면적인 소속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서로 끌어당기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친구를 내 휴대전화 주소록에서 지웠다고 친구가 친구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반대로, 같은 공간에 오래 있어도 같은 서버를 향유해도 마음 떠난 사람을 같은 소속이라고 할 수 없고, 아무리 같은 소속이어도 내게 마음 떠난 사람을 친구라 할 수 없다.

그룹, 그러니까 소속은 실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저 우리가 두루뭉술하게 얽혀 놀고 있던 관계를 편하게 정의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름일 뿐이다. 마음 다 떠난 사람이 "같은 소속이지 않았느냐" 따지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 같은 서버를 사용했던 소속이지 않느냐", "같이 놀았던 그룹이지 않느냐" 따위의 까는 소리 안 했으면 좋겠다.

상대와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이 없으면 거기서 끝이다.

소속이든 친구든 뭐든 간에.

그러니까 디코 서버에서 어울린다고, 친구 그룹에서 같이 어울린다고(어울려 본 적 있다고) 같은 소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속이라는 건 서로의 마음에 애매모호한 형태로 자꾸만 변화하고 왔다 갔다 하며 갈대처럼 알게 모르게 서로를 끌어당기며 존재하는 거지, "마! 우리가 남이가!" 같은 그딴 허접한 말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에게 마음 다 떠난 사람이 내게 "같은 그룹이었지 않느냐" 말한다고 해서, 내가 "그래 우리 같은 그룹이었는데 내가 너무했지."라고 답을 할 리가 없다. 나를 다른 사람 앞에서 개쪽 주면서 '우리 친구잖아.' 말한다고 그게 친구인가? 보육원에 버려놓고 같은 피만 흐르면 다 가족인가? 서로 끌어당기지도 않으면서 같은 그룹이라고 생각만 하면 같은 그룹이 될 수 있는 건가?

내게 마음 다 떠난 사람과 내가 과거에 같은 그룹이었다는 사실은 내게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같은 그룹"이라는 표현 자체가 애초에 여러 사람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마음을 편하게 부르기 위해 사용했을 뿐인 표현인데, 지금 내게 마음도 없는 사람이 같은 그룹인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같은 그룹인 사람이니까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관계 유지했어야 했다고? 내 뒷담 까도 영원히 친구 목록에 남겨야 하고, 서로 연락도 안 하고 서로 관심 1도 안 가지며 사는데도 친구 목록에 남겨야 하고, 서로 무시하고 다른 사람 방해나 하는데 친구 목록에 남겨야 한다고?

서로 끌어당기는 마음 전혀 없으면서 의식만 가진 이상한 소속감 나는 싫다.

= =

 

위의 내용이 내가 생각하는 "소속"의 정의다.

내가 소속의 정의를 정리해서 말했던 이유는, 내 뒤에서 나를 싫어한다고 말했던 같은 그룹의 친구가 내가 자기를 친삭한 이유를 궁금해하길래 (내가 설명할 이유가 없는데도 굳이 내가 먼저 연락해서) 내가 설명해 주었더니 미안해하긴 개뿔 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해댔기 때문이다.

"같은 소속 멤버를 어떻게 그렇게 대할 수 있냐(어떻게 친삭할 수 있냐)"며, 내 뒤에서 나를 싫어한다고 말해서 친삭을 당한 건데 '내 뒤에서 나를 싫어한다고 말한 건 중요하지 않고' 같은 소속 멤버를 친삭한 게 나쁘다는 말만 해댔다. 자기가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내가 친삭을 한 건데, (자기가 나를 싫어했더라도) 내가 자기를 삭제한 게 중요하다고만 말해댔다. '같은 소속이었던 A, B, C(자신)을 그렇게 대한 게 말이 되냐며, 나의 행동은 광기에 가깝다며 내게 나쁜 말만 쏟아내며 "뒤에서 나쁘게 말해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말이야 존심 때문에 안 꺼내더라도 미안한 기색은 있어야 하는데 미안한 기색조차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소속'의 정의를 글로 썼다.

'소속'이 중요한 게 아니다. '끌어당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근데 너는 내게 '끌어당기는 마음'이 없지 않냐. 이미 나에게 마음 떠난 너에게 내가 왜 너를 같은 그룹 구성원이라 여겨야 하냐고 말하고 싶어서.

 

'소속'을 구성하는 요소.

친구 사이에서의 '그룹'은 "우린 XX 그룹이야"라고 말을 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처음엔 몇 명의 친구 관계에서 시작한다. 친한 친구가 세 명가량 모여 자주 논다. 자주 노는데 친구가 친구의 친구를 데려오고 재밌으니 또 친구의 친구가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데려오고 놀다가 마음 맞는 사람끼리 고정적으로 모이게 된다. 마음 안 맞는 사람은 알아서 찾아오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은 꾸준히 찾아오며 어느 순간 정기적인 모임처럼 변한다.

VRC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그렇다. 내 친구가 상가에 월세 따박따박 내는 아지트 만들어 친구끼리 모여 노는 커다란 그룹의 장인데, 얘도 처음엔 SNS에서 친했던 네 명 가량의 인원에서 시작됐다. 그렇듯이 VRC도 처음부터 그룹이 존재했던 게 아니라 서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사람끼리 자주 만나게 되어 점차 그룹화됐을 뿐이다.

그룹을 만드는 건 서로가 끌어당기는 마음이다.


서로 끌어당기는 마음은 어느 순간 실체화되어 '그룹'의 정체성을 가진다.

누군가가 '우리는 그룹'이라고 명시하지 않아도, 구성원은 서로 같이 놀기 위해 같은 시간 축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각자 취미가 있고 각자 시간을 즐길 줄 알고 만날 사람이 각자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우선순위로 두며 같이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룹의 초기엔 여전히 서로가 엄청 강하게 끌어당기기 때문에 즐겁다. 신혼생활처럼 뜨겁다.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이 생겨도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하며, 좋아하는 마음이 크니까 문제가 생겨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좋게 좋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서로를 영원히 좋아할 수는 없다.

처음엔 좋았어도 나중엔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함께 할수록 상대에게서 발견한 단점은 쌓여만 간다. 섭섭한 일도 늘어만 간다.

상처받은 짧은 대화는 흉터로 남고, 한 번 발생한 트러블은 만성 질환처럼 영원하게 남아 상대의 신뢰를 떨어뜨리며 의심만 부추긴다. 아름답게 그려진 명화는 관리받지 못 한 채 관람객의 손을 자꾸만 거쳐 가며 훼손되어 화가의 디테일을 찾아볼 수 없다. 친구를 보며 없는 장점조차 만들어 좋아하던 과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만 강해진다.

반면 새로운 사람은 장점만 보인다. 자연스레 그룹 멤버를 향한 우선순위는 떨어진다. 마음 속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하지만 여전히 그룹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로를 원하는 마음이 예전보다 강하지 않아도 여전히 '그룹'이다. 그룹이 아닌 다른 친구와 노는 일이 즐겁고, 그룹에 있는 친구 중 짜증 나서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만나서 대화할 때 재미가 없어도, '그룹'의 정체성은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그룹 구성원에게 애정이 없어도 관계는 의무로 남는다.

입만 열면 뒤에서 남 험담을 해서 싫은 친구가 있어도, 내게 소중한 친구를 그룹 바깥으로 밀어내서 정떨어진 친구가 있어도, 자꾸만 친구에게 집착해서 분위기 흐리는 친구가 있어도, 자꾸만 바깥으로 싸돌아다니며 그룹을 신경 쓰지 않는 친구가 있어도, 자꾸만 가르치듯이 말해서 기분 나쁜 친구가 있어도, 어린 친구라는 이유로 어린 친구가 잘못을 저질러도 마냥 부둥부둥 감싸는 친구가 있어도, 팀 게임 할 때 말을 띠껍게 해서 정이 뚝 떨어진 친구가 있어도, 각자 그룹 구성원을 보며 불만이 이렇게 많은데도 그룹은 해체되지 않고, 그룹 구성원은 버릇처럼 습관처럼 매일 모이던 시간에 모여 서로에게 관심을 주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룹 관계는 '의무'로 유지된다.

결혼생활처럼.

하지만 한 번 박살 난 부부 관계는 웬만해선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쓰며 최대한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에, 대화를 단절한 채 서로를 찾지 않으며 점점 오해를 쌓아간다. 부부 관계조차 해결되지 않아 이혼에 이르는데 친구 관계가 쉽게 해결될 수 있을까?

많은 멤버의 마음이 이미 그룹에서 떠났다.

바깥의 다른 유저 더 재밌는 유저 찾아 놀기 시작한다.

그룹은 의무로 유지하지만, 그룹은 예전 같지 않다.

그룹이라는 이유로 내게 조인해 봐야, 질려버릴 대로 질려버린 그룹 멤버와 만나봐야 피곤하기만 하니까 주황 불로 다른 친구와 만난다. 리퀘를 보내도 받지 않고 인바를 보내도 받지 않는다. 물론, 의무적인 관계니까 어느 정도는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리퀘/인바를 무시하지 않겠지만, 예전에는 즐겁게 의심하지 않고 받았다면 이제는 그룹 멤버가 '내게 끼려고 하는 행동'이 피곤하기만 하다.

그룹 아닌 얘랑 노는 게 더 재밌는데. 너랑 놀면 또 지긋지긋한 얘기 꺼내서 피곤한데. 네 성격 맞춰주는 거 이젠 힘든데. 퇴근하고 내가 누릴 수 있는 4시간 중에 4시간을 재밌는 새 친구에게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너를 끼워서 놀면 3시간 내내 피곤한데. 게임이 즐겁지가 않은데.

'의무적인 관계'니까 누군가는 문제의식을 느낀다.
(보통은 관계에 목마른 쪽-놀 친구가 그룹밖에 없는 유저-이 문제의식을 가장 먼저 느낀다)

우리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 같은 그룹이잖아?

가부장적인 집안의 아빠가 종종 그런다. "우리 집은 왜 집은 왜 이렇게 대화가 없냐? 가족이 모여있으면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아야 하는데, 우리는 왜 서로 방 안에 틀어박혀서 자기 할 일만 하냐? 이게 가족이냐?" 문제를 제기하지만, 사실 가정이 그렇게 된 건 보통 아빠 지분이 가장 크다.

음식점에 가서 맛있게 먹어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이 황교익 빙의해서 여기 매운맛은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아니라 쓸데없이 많이 친 캡사이신의 맛이 어쩌고 이렇게 매운 건 맛이 없고 어쩌고저쩌고.

망태 할아버지

가족끼리 점심 약속이라도 가면 저녁 약속이라도 가면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가도 모자랄 판에 "빨리 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늑장 부리며 준비하냐"며 나가기 전부터 기분을 개판으로 만들고, 운전하면서 시발 시발 거리고, 평소에 다양하고 재밌는 음식점 가도 모자랄 판에 본전 뽑겠다며 1만 원 짜리 음식 뷔페 가고 평소엔 짜장면 배달밖에 안 먹으면서 그런 소릴 한다.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 자식 인생 훈수에, 가족에게 안물안궁한 이야기 늘어놓으며 아는 척, 듣기 불편한 주제 지만 아는 주제 말하는 씹덕 같은 행동. 쓸데없이 티비 앞에서 밥을 먹자며 자기는 중앙에 앉아서 티비 정면으로 보지만 가족은 둘러앉아 양반다리로 쥐 나는 채로 얼굴 돌려 티비를 봐야 하고. 주기적으로 저녁도 맛있는 곳으로 먹으러 가고 음식점도 찾아야 즐겁게 갈 수 있을 판에, 외식도 자주 하지 않으면서 한 번이라도 가면 갈 때부터 짜증 내는 사람이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그룹도 똑같다.

평소 말 띠껍게 하고, 다른 사람 끌어당기지도 못 하는 사람이 내쫓기만 하는 사람이 불만만 가득한 사람이 "우리 이래도 되냐 우리 이러면 안 되지 않냐" 말을 꺼낸다. 자기도 다른 사람처럼 다른 곳에서 재밌게 놀면 될 텐데, 그러지 못 하고 말을 꺼낸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그룹 망조의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문제 제기를 가장 먼저 하는 이가 그룹 내 가장 부정적인 사람인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사람이 그룹의 불화를 키우는 일등 공신이다. 일등 공신이래 봐야 도토리 키재기라 큰 의미는 없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때엔 다들 무언가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듯 말하지만.

마음은 이미 떠났다.

원래대로 돌아가려면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며 노력해야 하는데, 누군가는 문제의식을 느끼기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네 마음 알겠다 네가 제기한 문제를 이해한다 말하지만 자기 평소처럼 행동한다. 그게 재밌으니까. 모두가 다 같이 하나의 목표를 보며 움직여야 될랑말랑 한 일인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들 문제가 있다고 말만 한다.
고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그룹은 의무적인 관계라 다들 끝까지 발을 걸친다.

그룹이 망하고 있는 건 누군가의 탓이 아니다.
그룹이 망하고 있는 건 그룹의 방향성 문제가 아니다.

뉴비가 안 들어오고 고인물만 남아 썩어가고 있으니 그룹이 망한다? 성격 드러운 성골 멤버가 서버 내에서 위화감을 조장해서 그룹이 망한다? 새로운 유저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그룹이 망한다? 새로운 유저가 그룹에 많이 들어와 위화감 조성해서 그룹이 망한다?

다 틀렸다.

내부에 문제가 있는데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룹이 망하는 건 다들 '그룹'을 예전만큼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는 서로 좋을 수 있지만, 그룹의 분위기 그룹에 얽매여 지내는 일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예전과 달리 이젠 서로가 끈끈하지 않다. 같이 있을 때 예전만큼 재밌지가 않고 다른 친구를 개별적으로 만나는 일이 훨씬 더 재밌다.

처음엔 좋았고 지금도 친한 관계지만, 예전에 띠껍게 말한 기억은 지울 수 없다. 예전에 띠껍게 행동한 기억은 지울 수 없다. 보여준 모습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 때의 기억은 까먹어도 불쾌했던 감정은 상대 전두엽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끝까지 간다.

훼손된 명화처럼 이젠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더 아름답게 보이는 새로운 그림이 많다. 고개 한 번만 돌려봐도 잔뜩이다. 좋은 화가가 좋은 그림을 잔뜩 그려놨는데 과거에 그려진 트렌드에 뒤떨어지다 못 해 훼손까지 된 그림을 부여잡고 좋아할 사람은 없다.

닳을 대로 닳아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망가지는 그림이라 유리 안에서 조심히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그림보다, 방금 그려져서 새로이 느껴지고 대충 관리해도 몇 년은 싱싱하게 관리될, 새로운 기법으로 그려진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그림이 더 아름답다.

상대방 성격 생각해서 조심히 행동하고 배려하며 행동해서 얻는 리턴은 쥐꼬리만 하다. 반면, 새로운 사람과 만나면 조심하지 않아도 대충 지내도 서로 즐겁게 지낼 수 있다. 때문에, 이제 그룹 멤버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많은 그룹 멤버가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다.

마음은 더 이상 그룹을 향하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가족에게 엄청 섭섭한 일이 있어도 절연하지 않고 가족으로 끝까지 남아 지내듯이, 그룹 관계도 의무 때문에 유지한다. 가족은 피라도 이어져서 존나 싫어도 어떻게든 유지하고 사는 경우가 많지만, 안타깝게도 그룹은 가족이 아니다.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아무리 가족 같았어도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마음이 끝나면 더 이상 유지될 껀덕지가 없다.

아무리 가족 같은 관계여도 내가 들인 비용이 쌓았던 수익 다 까먹고 원금까지 까먹기 시작하는 순간 더 이상 투자하지 않는다. 초기에 엄청나게 많은 이익을 내며 수익률 1,000% 찍었던 종목이었어도, 점점 주가 박살 나며 수익률 떨어지기 시작하면 예전에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주었든 간에 투자금 회수 각을 본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남겨두려고 노력한다. 하물며 수익률 다 까먹고 이젠 마이너스한 감정만 전해주는 친구라면, 원금까지 잃은 친구라면 손절 각을 본다. 100만 원 다 잃기 전에 90만 원이라도 꺼내야지.

원래대로 돌리고 싶다면 서로가 서로를 처음처럼 좋아하면 된다.

닳고 닳은 그림이라 조심해서 관리해야 하고 그림이 예뻐 보이지도 않는데도 처음처럼 좋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림이 닳지 않게,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감정을 소모하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데, 어느 관계든 너무나 친하게 오래 지내다 보면 청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닌 스마트폰의 기스처럼 상처도 잔뜩 주게 되고 섭섭한 일도 늘어가고, 살 쪄서 꽉 끼거나 살 빠져서 헐렁한 바지처럼 서로 성격이 생각보다 안 맞다는 사실도 많이 발견하게 되면서 관계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친한 친구처럼 취미라도 엄청 잘 맞으면 서로 재밌는 얘기 즐거운 얘기만 하며 지낼 수 있지만, 취미가 잘 맞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VRC 게임 특성상 어떠한 교집합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토크 바에서 얘기하듯 외모(아바타)와 성격에 이끌려서 대화에 이끌려서 친해진 경우가 많으니까.


작년 가을, 내가 처음 들어갔던 그룹이 점점 고여갈 때 나 때문인가 많이 고민했다. 겨울이 되어 사실상 그룹장이었던 유저가 떠난 후 중심이 없어 무너져 갈 때도 내가 중심 역할을 못 해서 그런가 많이 고민했다.

내 탓이 아닐까 많이 생각했었다. 잘난 사람은 이렇게 조금씩 망가져 가는 그룹을 귀신처럼 재건해서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을까 내가 무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많이 생각했었다. 내가 중심에 어울리는 멤버였다면 이 정도로 급격하게 망하진 않았을 텐데 싶었다.

그런데 정말로, 많은 시간이 지났고 몇 번이나 고민해봤지만 그룹이 힘을 잃는 일은 누구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1987처럼 누군가가 대의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 그저 옳은 일을 서로가 서로의 자리에서 묵묵히 했기 때문에 무언가가 이루어졌듯이, 그룹이 망하는 일도 다들 자기 자리에서 자기 입장에서 자기 식대로 행동하며 지냈기 때문에 자연스레 멀어졌을 뿐이다.

명확한 원인을 말하고 싶은 사람, 남 탓을 하고 싶은 사람이야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고 싶겠지.

하지만 분위기 좋지 않은 그룹을 만들어 갔던 건 그룹 멤버 모두의 몫이다.

무리하게 많은 유저을 데려온 그룹장도, 여러 유저를 배척한 성골 참모들도, 새로운 유저에게 매력을 느껴 둘이서 나댕긴 유저도, 귀찮다며 맨날 데탑으로 접속한 유저도, 마이크 켤 때마다 바람 소리 잔뜩 넣은 유저도, 게임 들어와서 월드에 박아두고 잠수만 시키던 유저도, 쓸데없이 게임 친구를 자꾸만 현실에서 만나려고 하는 친구도, 개인적으로 할 얘기가 있다며 바깥으로 누군가를 데리고 다닌 친구도, 그룹 멤버와 과몰입을 한 유저도 브야스를 한 유저도. 월드에 누워있기만 한 유저도, 그 외 여러 멤버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자기 하고 싶은 걸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변했을 뿐이다.

무언가 조치를 취했다면 달랐을까?

문장으로 발신(發身)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廟堂)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김훈, <남한산성>

그룹의 문제를 조치하려고 건드리면 문제는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춘다.

누군가가 그룹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모두가 문제를 같이 고민한다. 하지만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섭섭해하거나, 그 말에 반대하거나 싫어한다. 둘의 관계에 의심의 씨앗이 싹트고 둘의 관계에서 불화가 오랜 기간 동안 자라기 시작하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를 이슈화시켰는데 해결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대로 누군가가 섭섭해하고 행동이 바뀐다. 그렇게 행동이 바뀌면 또 다른 이가 영향을 받는다.

뱀처럼 자세를 잔뜩 바꿀 정도로 유기적인 '그룹의 문제'가 과거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왜 이제는 건드릴 때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조치를 취할 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까? 문제가 문제인 게 아니라, 이미 노화할 대로 노화한 관계가 문제기 때문이다.

어릴 땐 설탕을 한 통 다 처먹어도 오랫동안 아무 일 생기지 않지만, 늙고 노화하면 식습관이 조금만 나빠도 당뇨가 고개를 들이민다. 지금의 문제가 '설탕 한 통을 다 처먹은 일'이 원인처럼 보여도, 진짜 원인은 설탕을 한 통을 부어서 먹은 일이 아니라 설탕 한 통을 감당할 수 없는 늙고 노화한 몸이 문제다.

그룹의 문제도 똑같다.

몸과 달리 그룹은 언제든지 마음이 원하지 않으면 버리면 된다.

하지만 의무적인 관계기 때문에 다들 차마 깔끔하게 끝내지 못 한다. 지금이 끝내야 할 타이밍인데, 이미 죽어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다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붙잡고 해결하려고 든다. 그룹을 보내주고 거를 친구는 거르고 여전히 손에 쥐고 싶은 친구만 따로 만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다들 그러질 못 한다.

의무적인 관계니까.

버릴 수 없으니까.

이젠 예전만큼 좋아하지 못 하는데도 자꾸만 만나고, 자꾸 만나니 마음에 안 드는 면만 자꾸 보이고, 예전에는 웃어넘겼을 일도 상대에게 따지고 화내고 문제 삼고, 악순환의 반복이다.

가끔 멀쩡하게 만나도 예전만큼 좋아하질 않으니 그리 재미도 없고, 거기에 시간 쓰는 일보다 차라리 새로이 만난 더 재밌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시간을 쓰고 싶고, 그래서 조금씩 점점 서로를 찾지 않게 되고, 내가 노는 시간에 걔가 찾아와서 분위기 흐려지길 원하지 않으니 점점 더 숨어들고.

지금까지 묶여있던 관계와 지금 내 마음이 땡기는 관계가 전혀 다른데, 모순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의무적인 관계에 매달리고 있으니 문제가 자꾸만 발생할 뿐이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다 보면 오해는 점점 늘어나고, 나처럼 참을성 없는 누군가가 터질 계기를 만들어 주며 막타를 친다.

그게 막타가 되는 이유는 터트리는 이가 터질 계기를 만들어줬기 때문이 아니라, 터진 상태에서 서로가 다시 합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코 서버를 누군가 터트리고 갔으면 누군가가 다시 디코 서버를 만들면 되고, 그룹에 있는 감정의 골이나 문제가 겉으로 드러났으면 서로 대화하고 해결하고 다시 잘 지내면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왜냐면 지금까지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면서 지냈는데, 누가 나서겠는가?

서로 답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나 하며 시간만 축내는 사람처럼 아무 의미 없는 13인의 원로회의처럼 소극적인 대응만 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해봐야 뭘 하겠는가? 거기 그룹에 있던 모두가 공범인데. 이미 저물어 가던 거 눈으로 확인했으면서 누가 억지로 봉합하고 있을까. 다들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그런갑다 흘릴 뿐이다.

그룹이 소멸했어도 그룹은 잔상이 남는다. 그룹이 있는 듯 없는 듯 서로의 관계가 미약하게 남아 꾸준히 소속감이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난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터진 그룹이다. 하지만 그룹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믿고 싶어 한다. 그 때의 좋았던 그 추억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하겠지만, 다시 쓸 수 없다.

[MV] 한동근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MV

'그룹의 탄생과 소멸'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메인 멤버가 느끼는 그룹의 탄생과 소멸'이다. 그룹 메인 멤버, 그러니까 <VRChat보고서 27편: 그룹 권력과 생태>에서 언급한 '그룹장'과 '참모진'만 엄청 중대한 일로 느낀다. 메인 멤버만 그룹이 망하니 사니 신경 쓰고 있을 뿐이다. 다른 멤버는 그닥 신경 쓰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소속이 없어져도 지금까지의 관계는 어제와 똑같이 이어진다.

성인이 되고 내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부모가 이혼한다고 걱정하는 일과 같은 수준의 고민일 뿐이다. 해결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다. 아빠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엄마 만나고 싶을 때 만나면 된다. 이혼해도 아빠 엄마 자식인 건 바뀌지 않는다. 성인으로 집 나와 혼자 살고 있으니 새 아빠 새 엄마에게 생판 남인 사람에게 아빠니 엄마니 부를 필요도 없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그룹이 사라져도 어제와 오늘은 달라지지 않는다.

소멸하는 그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어차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그룹은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이 누구에게 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마음은 새로운 더 좋은 사람을 향해 먼저 가 있다. 그들과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든, 개인 플레이하며 다양하게 놀든 자기 선택이다. 지금까지 그룹끼리 모여서 노는 일을 너무 많이 해왔으니까 그들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해 걱정스럽겠지만, 그래도 앵콜 요청은 금지다.

브로콜리 너마저 - 앵콜요청금지

안 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며는 여기까지만. 제발 내 마음 설레이게 자꾸만 바라보게 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갈 미련인 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때 그 마음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 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아무래도 네가 아님 안되겠어" 이런 말 하는 자신이 비참한가요?

그럼 나는 어땠을까요?

더 붙잡는 건 그룹에 대한 미련이다.

붙잡으려면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데, 그룹 멤버 10명이 있으면 10명 모두 노력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룹 멤버와 다시 잘 지내고 싶겠지만, 다들 지금 좋아하는 친구와 시간도 보내야 하고 정떨어진 친구는 피하고 싶고 다른 게임도 하고 싶고 누군가가 들어왔을 때 맞춰서 들어오고 싶지도 않고, 나는 가만히 있는 채로 그 그룹 그 감정만 돌아오길 바라는 미련이다.

그룹 터져도 그룹장은 유저 또 어디선가 끌어모으며 우리가 보내었던 시간을 다시 새로이 즐겁게 보낼 거고, 메인 멤버는 또 어디선가 자기를 받아줄 만한 새로운 그룹을 찾아 즐겁게 놀고 있겠지. 구성원만 바뀐 채 똑같은 삶을 다시 보내고 있는 일을 금세 목격하게 될 거다.

UMC/UW - 사랑은 재방송

뉴비 적 생각으로는 매번 새로운 경험에. 놀랍고 멋진 것들이 가득할 거라 기대했는데. 유저만 달라지고 플탐만 좀 더 늘고 같은 싸움 비슷한 만남 같은 눈물 비슷한 불만. 소체만 바뀐 압타 리모델링한 월드 옷차림 약간 바뀐 셰더만 짙어져 가는. 더 편리해졌다고 내가 행복해진 게 아니야 결국 보던 걸 또 봐 브챗은 재방송.


나는 내 성격이 모나서 그런지 이런저런 일도 많았고, 자의 반 타의 반 여러 그룹 거쳤다. VRC 1년 하면서 한 그룹에서 오래 지내진 못 했다(내 성격이 모나서 내가 여기에 쓰는 글 보고 나를 욕할 사람도 잔뜩 널려있다). 덕분에 내가 보고 느꼈던 걸 종합해서 분석해서 글을 쓸 수 있는 거겠지만.

 

나는 그룹에 '종속'되다시피 한 그룹 구성원이 그룹의 존재를 너무 성역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속에 너무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 사라져도 정말 아무런 변화가 없다.

트러블 메이커라 존나 싸우고 나온 게 아닌 이상 어제 보던 친구 내일도 본다. 존나 싸우고 나오거나 안 좋게 나왔어도 좋아하는 친구는 계속 볼 수 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걸 상대도 아니까 내가 밀려 나왔어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그룹이 흐지부지 사라진다고 친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아직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면 그룹이 터져도 자주 조인해서 같이 놀면 된다. 그렇게 같이 놀면 어느 순간 그룹이 되고 다시 무언가 재밌는 친구가 생기고 새로운 그룹이 되어 재밌게 놀 수 있다.

친구가 여럿 모이면 언제든 그룹이 된다.

고정적으로 특정 월드에서 자주 만나는 멤버뿐만 아니라, 화본이나 한튜토에서도 자주 보는 유저끼린 서로 그룹처럼 지내기도 한다. 표면적인 그룹이 전혀 아닌데도. 어차피 고정적으로 만나는 '서로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관계'가 중요한 거지 표면적인 소속이 중요한 건 아니다.

 

내 처음 그룹은 사실상 사라졌고, 두 번째 그룹에선 튕겨 나왔고, 지금은 여러 그룹에서 발 걸치며 자유롭게 놀고 있지만, 딱히 소속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는 없다.

그런데 정작 우울하긴커녕 몇 달째 매우 즐겁게 지내고 있다.

그룹이 사라지거나 그룹에서 튕겨 나와도 그 때 볼 만한 친구는 여전히 잘 보고 지내고 있고, 피곤하다 생각한 유저는 그룹에서 마주치지 않으니 오히려 편하고, 소속이라고 할 만한 그룹이 없으니 보고 싶은 친구 마음대로 쏘다니면서 봐도 내게 눈치 주는 주변인도 없다. 놀 친구는 그 때보다 세 배는 많아졌고.

물론 내가 이 블로그에 썼던 내용을 깨닫지 못 했던 반년 전엔 억울했던 적도 많고 우울했던 적도 있다.

그룹 망해가는 게 내 탓인가 싶어 죄책감을 느끼며 찝찝하게 보낸 시기도 있고, 내가 노력을 하는데도 왜 잘 안 풀리지 싶어 짜증 났던 시기도 있고, 좋게 지내고 싶어 선택한 일에 주변에서 오해하고 반감을 가질 때도 억울했고. 그룹에서 튕겨 나올 때는 저 새끼가 개새끼인데 왜 나를 탓하나 싶었고 어떻게 사람이 이간질을 할 수가 있지 어이가 없었던 적도 있지만,

내가 아는 게 없어 너무 크게 다가왔을 뿐인 의미 없는 일이었다.

소속이 있다고 즐거운 게 아니며, 소속이 없다고 즐겁지 않은 거도 아니다.

게임을 재밌게 하려면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느냐 내가 어울릴 만한 공간이 있느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느냐지, 같은 시간대에 모일 수 있는 그룹이나 고정적인 멤버가 필요한 건 아니다. 거기에 모여도 그룹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멤버가 없으면 그룹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서로 끌어당기고 있는 친구가 없다면 그룹도 무의미하다.

 

그룹을 지키려고 너무 과하게 매달릴 필요 없다.

누군가는 "우린 그룹인데 너는 왜 그룹 눈치를 보지 않느냐" 눈치를 보라는 듯, 네 행동이 잘못됐다며 내 행동을 교정하려고 할 거다. 그래서 자꾸만 '그룹을 신경써야 하나' 과하게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자기 자신이 이상한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불만을 내뱉는 유저도 그룹에서 눈치 봐주길 바라는 부분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자기 할 말 다 하고 지내는 유저라 네게도 불만을 꺼내는 거니까. 자기 불만이 있고 자기 불만을 해결하고 싶어 그룹 멤버를 가스라이팅 하는 거니까 정말로 그룹을 유지하려고 억지로 노력할 필요까지는 없다.

가족과 똑같다.

가족도 가족이란 이유로 가족이니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만 사실 그 말을 하는 부모도 자식도 말 절대 안 듣는다.

다들 노력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 사단이 난 거지 누군가가 바깥으로 나돌아다녀서,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에 트러블이 있어서 그딴 이유로 망해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억지로 매달리면서 지켜봐야 그룹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즐기고 살던 가부장으로 군림하던 아빠만 '하하하 우리 가족이 역시 붙어있어서 좋구먼' 혼자 뿌듯해할 뿐이다.

누굴 위한 행복인가.

우리 마음은 이미 그룹 바깥을 향해 있는데.

망했던 그룹을 다시 어셈블 할 기회가 있어도 그 때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때 그 마음은 이제 없으니까. 그들은 내가 사는 '지금'의 환경이 오늘도 내일도 안정적으로 지속되길 바랐던 거지, 그룹 멤버에 대한 끈끈한 애정에서 비롯된 마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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