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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Join의 형태 [VRChat 보고서 30편]

by 심해잠수부 2023. 8. 16.

(연애하기에) '너 정도면 괜찮다'와 '너라서 좋다'는 하늘과 땅 차이다. 연애의 시작에 '사랑'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너 정도면 괜찮은 거 같다'는 생각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 어차피 연애하면서 사랑의 감정이 쌓이는 경우도 많으니까.

이러한 감정의 형태에 일일이 의미 부여해 봐야 본인만 골치 아프다.

하지만 감정의 형태가 다른 건 사실이다.

'너 정도면 괜찮은' 사람도 있고, '너니까 좋은' 사람도 있고, 연애가 하고 싶은데 마땅히 할 사람이 없어서 상대방에 딱히 관심도 없으면서 아무나 찍어서 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방에게 전혀 마음 없지만 떡 한 번 치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아주 다양하다.

하물며 게임의 과몰입조차 지금까지 봐왔던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라 아무나랑 하는 사람도 지천으로 널렸다.

 

Join의 형태도 똑같다.

나를 보고 싶어서 오는 사람도 있고, 재밌는 공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심심하게 보내긴 싫어서) 내게 오는 사람도 있다. 그 외의 이유도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다. 그런데 아까 말했듯이 이런 생각 해봐야 본인만 피곤하다. 이렇게 일일이 의미 부여하면서 지내봐야 주변 사람 모두가 싫어한다.

내가 상대방을 원한다면 섭섭하다고 티 내며 나를 좋아해달라고 매달릴 게 아니라,

'원하지 않는 형태여도' 최선을 다 하면 된다. '재밌는 공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게 오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만약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면 나는 그 사람을 친한 친구로 만들 기회를 한 번 부여받은 거니까 조금 더 힘내서 재밌게 놀아 자빠뜨리면 된다.

그래서 형태를 일일이 해석하며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타인에게 집착하며 우울해하면 안 된다.

 

다만, 감정의 형태가 다른 건 사실이다.

근데, 중대 사항은 아니다. 친구와 '재밌게 놀기만 하면 끝'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심심해서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누군가와 어울리는 일은 목적보다 결과다. 연애도 '놀이'에 관심이 있으면 상대의 사랑이나 목적은 딱히 중요하지 않듯이, 친구와 그룹과 '재밌게 놀 수만 있다면' 내가 좋아서 왔든 갈 곳 없어 왔든 재밌기만 하면 충분하다(다만 같이 있을 때 재미가 없으면 문제가 있다).

혼자 Join의 형태를 해석하며 상대에게 섭섭한 티를 내면 피곤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뿐이다. Join뿐만 아니라, 자기감정을 감추지 않고 전부 드러내는 사람일수록 '피곤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그런데 그걸 모른 채로 Join의 형태를 엄청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유저도 볼 수 있다.

월드 입구부터 펜으로 "인사하러 온 사람 싫어요. 자기 친구랑만 대화하려고 들어온 사람 싫어요. 사람 빼가는 사람 차단할게요." 등 이런 식으로 자기가 싫어하는 조인의 형태를 펜으로 잔뜩 써두고 조인하는 유저를 월드 입구에서부터 불쾌하게 만드는 유저도 있고, 스테이터스에 "역시 내겐 아무도 안 온다." 따위의 말을 써두는 유저도 있는데 전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행위일 뿐이다.

 


 

근데,

타인에게 집착하지 않는 유저라도, 타인의 감정을 쓸데없이 분석하지 않는 유저라도, 어떤 Join은 여전히 불쾌하다. 타인에게 집착하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쓸데없이 분석하지도 않는데도 어떤 Join의 형태가 불쾌하다면 그건 내가 상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심심할 때 나를 찾아온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자체로 기분 좋다. 나랑 놀아주는구나. 드디어 나랑 놀아주는구나! 드디어 내가 들러붙을 수 있는 시간이 왔구나! 상대의 목적이 뭐가 됐든 그리 싫지 않다.

좋아하는 친구가 오늘 저녁 너무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은 다들 약속이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랑 술은 너무 먹고 싶어. 술 먹으면서 좀만 취하고 싶어. 좀만 헤롱헤롱하고 싶어. 근데 혼자는 외로워서 싫어. 근데 친구는 다 약속이 있대. 그래서 그 뒤에 한참 뒤에 있는 예비 순번인 내게 기회가 오면?

'얘는 나 보려고 하는 게 아니고 술 마시고 싶어서 나 부르는 거네' 하며 불쾌해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냥 너무 좋아 나에게 만나달라니 부모님이랑 밥 약속 있어도 취소하고 무조건 나가지. 너의 모든 순간이 최고였어! 너무너무 좋아. 네가 나를 그저 술 상대가 필요해서 부른 거여도, 옥 장판 팔려고 부른 거만 아니면 아니, 옥 장판 팔려고 부른 거여도 좋아! 옥 장판 사주는 척하면서 안 사주면서 최대한 버티면서 너와의 시간을 즐겨볼게!

 

하지만 어떤 친구는 아니다.

아 얘 다 까이고 나한테 보자고 하는 거네. 나 찾는 거도 아닌데 내가 뭐 하러 보냐? 너가 술 사줄 거냐? 너가 사주는 거면 갈게. 아 더치라고 응 안 갈게. 커피는 사라고? 응 커피도 안 사 싫어. 너가 내 동네로 오는 거지? 싫다고? 나 오늘 할 건 없지만 바빠 술 맛있게 먹어라. 수고람쥐.

내게 찾아와도 딱히 달갑지 않다.

감정 떨어질 대로 다 떨어져서 얘가 와봐야 얘가 하고 싶어 하는 재미없는 얘기나 들어야 하고, 얘랑 같이 있을 때 '재밌는 무언가'가 없는데 얘 재미없는 얘긴 다 들어주고 반응도 해야 하고 추임새도 넣어줘야 하고 피곤하기만 하니까. 내가 가만히 재미없게 있으면 얘는 재미없다는 듯이 티 내다가 다른 더 재밌는 곳 생기면 바로 나 버리고 갈 텐데 내가 얘한테 왜 신경 써야 하냐?

같이 있을 때 편하지 않고 피곤하니까 같이 있고 싶지 않으니까 갈 곳 없어 찾아온 Join의 형태가 달갑지 않은 거다.

차라리 걔가 나를 엄청 진짜로 좋아해서 오는 거라면, 다른 사람이랑 있는 시간보다 나랑 있는 시간이 즐거워서 다른 사람 다 뿌리치고 나에게 오는 거라면, 내가 신경 써야 할 게 많더라도 내 마음이 충족되니까 기쁘다. 내가 재밌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내 존재 자체로 얘가 좋다고 그러니까 오히려 찾아와 줘서 고맙다. (배려 없이 스토커처럼 쫓아다니거나, 자기랑 안 놀아준다고 자꾸만 섭섭하다 티 내며 사람 기분 이상하게 만드는 친구만 아니라면)

 

"친구를 보험 정도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이 잘못됐다"고 오독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건 아니다. 모두가 그런 행동을 한다 정말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나도 만날 사람 없을 때 심심하면 평소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에게도 찾아간다. 내 친구 모두가 그런 행동을 한다.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건, 문제는 항상 내 마음이란 얘기다.

갈 곳 없어 찾아오는 일, 다른 사람이랑 즐길 거 다 즐기고 인사나 하러 오는 일, 자기가 지금 노는 장소가 재미없어 찾아오는 일 등 여러 의도가 꼬운 이유는, 내가 지금은 상대를 예전만큼 좋아하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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