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RChat/VRC 보고서

높아지는 눈 [VRChat 보고서 41편]

by 심해잠수부 2023. 11. 14.

이 글의 제목을 '짱법을 싫어하는 이유', '묵언을 싫어하는 이유', '데탑을 싫어하는 이유', '반트를 싫어하는 이유'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짱법, 묵언, 데탑을 싫어한다는 1차원적 개념보다, 그러한 유저가 차별받는 이유 혹은 그러한 유저를 차별하는 이유를 말하고 싶어 애매한 제목을 붙였다.

참고로 나는 (짱법을 쓰든 말든 관심도 없지만) 짱법을 안 좋아하고, 묵언도 안 좋아하고, 데탑도 안 좋아한다.

친구가 묵언이면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뭘 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고 대화 일일이 확인하는 거도 피곤하고 기다리는 거도 지쳐서 도망가려고 하고 인바/리퀘도 잘 안 받아준다. (친구인데도) 데탑으로 들어오면 길게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고, 굳이 말을 걸어주는 등 에너지 소모하는 피곤한 행위도 잘 하지 않는다. 내가 유니티 하는 데탑이랑 얘기할 거면 나도 디스코드 켜두고 유니티 했지. 다른 겜하면서 디스코드 켜두듯이 VRC 켜두고 겜하는 데탑 유저랑 내가 VR까지 껴가면서 시간 낭비를 왜 해?

다행히 내가 원하는 상호작용은 옆에 '움직이는 사람'이 같이 있단 느낌이면 충분해서 반트를 차별하진 않지만.


 

짱법 이야기 나올 때 반골 기질 다분한 친구가 항상 꺼내는 말이 있다.

"너네 어차피 친구들끼리 돌려쓰는 일 존나 많으면서 왜 깨끗한 척이야?" (너네도 똥 묻었으면서 왜 자꾸 똥 묻은 개 밀어내냐 너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어 너네 존나 더러운데 자꾸 깨끗한 척하는 꼬라지를 보니 역겹다는 의미)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취향 유사한 친구끼리 '같이' 사는(하나의 계정으로 금액 반반 부담해서 같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많이 산 친구가 (이렇게 비싼 걸) 나만 쓰기 아깝다며 주는 경우도 있고, 그냥 별 생각없이 공유하는 사람도 있고, 준다고 하면 받아서 나쁠 거 없으니 거절하는 사람도 잘 없고, 생각이 어린 사람 중에는 아예 지가 받고 싶다느니 달라느니 대놓고 말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반골 기질 다분한 친구는 옳은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옳은 말을 뱉고 있을 뿐, 진짜 정답은 모르고 있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고, 깊게 관찰하지도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까.

그저 짱법이라 짱법을 싫어하는 유저도 없지는 않지만, 별 생각없이 말하는 유저도 있겠지만, 짱법을 딱히 욕 하지 않는 유저도 짱법을 멀리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짱법을 차별하는 '진짜 이유'는 옳고 그름 때문이 아니다.

고작 보이지도 않은 정의감 광고하려고, 고작 옳은 척하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다.

짱법을 쓰는 사람과 내가 원하는 교류를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짱법이 진짜로 문제가 되는 행동이라 차별하는 게 아니다.

진짜로 짱법이 싫었으면 부스 파일 공유하는 사람도 싫어했겠지. 친구 중에 자기 아바타 퍼블릭으로 풀어서 친구들끼리 가지고 노는 행동하는 사람도 싫어했겠지. 그런데 짱법을 차별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도 부스 파일 공유받는 일엔 거리낌이 없고, 친구가 아바타 퍼블릭으로 풀면 자기들끼리 재밌게 가지고 논다.

물론, 그들은 커뮤니티에 짱법 극혐이라면서 굳이 그런 글을 쓰진 않는 사람들이긴 하다. 커뮤니티도 잘 안 하고, 한다고 해도 짱법 이야기 별 관심도 없는 사람들. 누가 짱법을 쓰든 말든 쓸 수도 있지 뉴비도 다들 짱법쓰잖아 넘어갈 수 있는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이면 짱법 친구들도 잘 대해줘야 하는데 걔네는 짱법을 은근히 차별한다.

방금의 얘기엔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1. 짱법 싫다는 유저도 짱법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한다.
2. 짱법을 싫어하지 않는 유저도 짱법 싫다는 유저와 똑같이 짱법을 차별한다.

두 가지를 따져보면, '불법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라 싫은 건 아니다'는 결론만 나온다.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나는 유니티 하며 꾸밈노동도 하고 나름대로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시간이든 돈이든 열심히 투자하는데(유니티를 못 하면 커미션이라도 맡기던가), 남이 만들고 남이 공유한 남의 아바타로 VR 세계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아바타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마음 자체가 내가 원하는 부류의 유저와 거리가 멀다.

나는 타인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진심으로 게임하는데 얘네는 내가 원하는 부류의 상호작용을 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VR 유저가 바라보는 데탑 유저도
마이크 쓰는 유저가 바라보는 묵언 유저도

그래서 반트 유저가 풀트 유저에게 차별받을 수 있다.

반트가 문제는 아니지만, 풀트로 온몸을 표현하고 정말로 사람이랑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데 반트로 다리 이상하게 쭈구리고 있으면 보기 불편할 수 있다. 페이셜 유저는 상대가 풀트를 끼고 있어도 페이셜이 아니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얘는 눈도 안 깜빡이고 눈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니 풀트여도 사람이랑 대화하는 거 같지가 않아.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시간이든 돈이든) 투자한 유저'은 '비용을 투자할 정도로 상호작용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고, 자기가 가진 '욕구'는 당연히 상대방에게도 향한다. 나는 선톡하는 행동을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라 생각하고 선톡 따위 안 하지만 선톡에 의미 부여하는 친구들은 상대가 자기에게 선톡을 해주길 바라듯이 말이다.

내가 손이 움직이면 상대방도 손이 움직이길 바라고, 내가 발이 움직이면 상대방도 발이 움직이길 바란다. 나는 그러한 상호작용을 타인과 하고 싶어 나에게 투자한 거니까,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상호작용의 기준도 욕심부린 내 기준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무언가 잘못해서 차별받는 게 아니다.

더 디테일한 상호작용을 위해 노력한 유저는, 자기가 가진 욕심만큼 타인에게도 욕심을 부릴 뿐이다.

나는 내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어 풀트를 했으니까 상대도 풀트로 내게 자기 움직임을 보여주길 바라고(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고 싶고), 내 표정을 보여주고 싶어 페이셜 했으니까 상대도 페이셜로 내게 자기 표정을 보여주길 바란다(표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고 싶다). 나도 '나만의' 아바타로 세상에 나라는 존재나 취향을 어필하려고 했듯이 상대도 자기의 아바타로 자기 존재나 취향을 어필해 주길 바란다.

내 장비가 업그레이드 됐다는 뜻은 내 욕심이 커졌고 내 기준도 높아졌다는 의미.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