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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이방인이 되는 이유 [VRChat 보고서 40편]

by 심해잠수부 2023. 11. 9.

몇 번 지나가듯이 얘기한 거 같지만, 나는 그룹이 없다.

디스코드 서버야 권유 받아 들어간 적도 많다. 하지만 디스코드 서버에 들어갔다고 같은 소속이 되진 않는다. <VRChat 보고서 32편: 그룹의 탄생과 소멸>에서 말했듯이 '소속'은 디스코드 서버 가입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로 끌어당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룹으로 얽힌 채 서로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룹'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어렵다.

뉴비 때 같이 놀던 그룹이 없어지면 이방인이 될 확률이 높다.

 

디스코드 서버는 편의 때문에 필요하다.

하지만 디스코드 서버를 만들면 소속을 표면화했다고 착각하며 짜증 나는 소릴 하는 유저가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소속감을 제거하고 서버를 운영하면 좋을 거 같다 생각해 서버를 하나 만들어 운영해 봤다. 소속감이 없으니 다른 멤버에겐 '서버를 사용할 이유'가 나와의 연결 고리 외에는 없어, 나와 관계가 멀어지면 굳이 쓸 이유가 없어지며 서버도 죽어갔다.

서버를 가장 열심히 사용했던 유저는 처음 만들 때 완성된 그룹처럼 데려왔던 친구들.

나는 소속감 운운하며 서로의 관계에서 '책임' 운운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그룹에 속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노는 환경이 안정적으로 재밌어지려면 그룹은 필요하다. 일반적인 관계보다 조금 더 신경 써주는 살짝 더 특별한 관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소속이 없는 이유가 내가 원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마음가짐에도 문제가 있다.

 

뉴비 때 친해진 그룹이 사라지면 이방인이 될 확률이 높다. '나는 다른 그룹에서도 잘 놀았는데?' 반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룹에서 어울려 놀지 못 한다는 의미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가 이방인이 된다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확률이 높을 뿐'이니까.

 

우리가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접하는 많은 커뮤니티가 관계적으로 완결난 커뮤니티기 때문이다.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초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관계를 완성한 상태다. 누가 누구랑 친하고, 누구와 누구가 어떤 관계고, 서로 어떤 플레이를 지향하며 어떤 식으로 게임을 대해야 하는지 메뉴얼처럼 정해놨다. 커뮤니티를 만들던 초기의 설립 멤버들의 기준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룰이다.

그 외의 다른 사람은 구축이 끝난 커뮤니티의 관점에서 이방인일 뿐이다.

구축이 끝난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존 구성원(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고, 자신도 많은 시간을 보내며 스며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만 한다. 하지만 친구는 커뮤니티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도움도 그리 많이 주지 않으며, 자신을 밀어내는 생태계에 굳이 과한 노력을 퍼붓는 유저도 없다.

그래서 이방인은 관계 속에 스며들기 어렵다.

 

뉴비는 이방인이어도 '뉴비니까' 잘 대해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뉴비도 경험이 없어 조금만 잘 대해주면 엄청 잘 대해준다 착각하며, 그룹에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가 있다 해도 뉴비는 달리 갈 만한 다른 공간도 없어 금세 동화되어 (상대적으로) 잘 스며든다.

하지만 썩을 만큼 썩은 유저는 완결난 커뮤니티가 불편하다. 친한 척 다가가도 깊은 속까지 열어주지는 않는다. 아무리 잘 보이려고 해도 무언가 벽을 치는 듯 행동한다. 아무리 친해져도 커뮤니티 초기부터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던 그들의 그물을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너희 말고도 볼 사람 많은데?' 다른 곳 찾아가며 끝.

 

그런데, 고인물처럼 쉽게 다른 곳 찾아가며 다양하게 어울리다 보면 그룹에 정착할 수 없다. 여기 떠돌며 저기 떠돌며 여러 사람과 잘 지내는 유저가 될 뿐이다. 그러한 플레이스타일이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가끔 '소속'을 원하고 있으면서 그런 플레이스타일을 지닌 유저는 존재한다.

'이미 진짜 잘 해주는 게 뭔지 알아서 조금 잘 해주는 걸로는 행복해하지 않고', '너네 말고도 볼 사람 많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와 그러한 마인드로 인해 나오는 행동. '안 그래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운데' 아예 소속될 수 없게 만드는 마인드와 행동을 지니고 있다. 나는 소속이 필요 없으니 그런 식으로 행동해도 괜찮지만, 어떤 유저는 어딘가에 머물기 바라면서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자꾸만 떠돈다.

 

"그렇다고 벽 치는 사람들에게 매달리듯 부대낄 순 없잖아요. 뉴비가 아닌 저는 소속감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나요?"

그건 아니다.

이미 새로운 소속을 만들고 있을 확률이 높다. 다만, 친구 창의 모든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초기의 커뮤니티'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거나, 아니면 소속의 개념을 몰라 소속의 형태가 잡히는 과정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룹은 한 명의 친구에게 한둘의 친구가 고정적으로 들러붙고, 그 친구들에게 또 다른 친구가 고정적으로 붙는 피라미드식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다. 그런데 '나에게' 몇 명의 친구가 고정적으로 들러붙을 때 이를 '친한 친구가 나를 보러 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룹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며, 친구의 친구가 조인해 자기와 같이 놀고 있는 상황을 '내 친구 보러 온 거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나와 '자주' '오래' 있으려고 하는 몇 명의 친구와, 그 친구들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상황이 반복되면 그게 커뮤니티가 발생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반복이 계속 유지된다면 자연스레 그룹이 되고, 그룹장이 될 만한 사람이 모이는 멤버가 마음에 안 들어 도망 다니거나 서로 불화가 생겨 멀어진다면 그룹으로 완성되지 못 하고 끝날 수도 있고.

내가 중심이 아니어도 똑같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자주 찾아가는데 이 친구에게 자주 오는 친구가 있고 그래서 고정적으로 세 명씩 자주 만나는 중이었는데, 그 때마다 다른 친구들도 자주 조인을 타서 그렇게 형성된 다수가 프플방에서 노는 일이 2주 이상 이어진다면 그게 커뮤니티고 그룹이다.

 

이방인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완성된 커뮤니티에 속해있는 친구들, 그러니까 예전부터 봐왔던 이미 볼 만큼 본 오래된 닫힌 커뮤니티에 속한 친구와 많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새로운 사람과 지내고 내가 그들에게 호감을 받는다면 자연스레 내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며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내가 중심이 되지 않아도 중심이 될 만한 매력적인 사람을 찾으면 그런 커뮤니티가 발생하는 걸 옆에서 보게 될 거고.

우리는 자꾸만 관성으로 예전 사람을 붙잡고 있으려고 한다. 지역적으로 묶여있지도 않는 사이버 세계에 자꾸만 완성된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의 옆에서 자꾸만 기웃거리니까. 거긴 머리가 클 만큼 큰 나는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깨닫고 아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해야만 하는데.

 

하지만 예전 사람에게 자꾸만 미련이 남지.

새로운 사람과는 재밌지만 뉴비 때 기억이 오래 가지.

새로운 사람도 좋지만 새로운 사람은 넘을 수 없는 시간의 벽이 내게도 있지.

 

최근에는 내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아서, 이젠 나도 내 주변으로 형성되는 관계를 외면하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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