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RChat/VRC 보고서

내면의 내면과 외면 [VRChat 보고서 105편]

by 심해잠수부 2025. 3. 12.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누군가를 원하기도 하고, 원하지 않기도 한다.

분명히 원했었는데 이젠 원하지 않고, 분명히 원하지 않았었는데 이젠 원한다. 그의 취향이 변했을 수도 있고, 나의 행동이 변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항상 마음 아파하는 부분은 원했다가 이제는 원하지 않는 경우. 그의 취향이 바뀌었을 뿐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에겐 어떠한 변화도 없었는데 나란 존재가 필요 없어지기도 한다.

내가 변해서.

 

나는 '가면'이라는 표현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유저들은 아바타를 열심히 꾸미지 않는다 생각한다. 못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고, 적당한 기본이야 하겠지만 유니티에 집착할 만한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로 생각해 주면 좋을 거 같다. 그렇게까지 아바타에 힘을 많이 주려고 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도 적당적당히 라는 느낌.

왜냐면 그들은 내면을 더 중요시하니까.

'가면'은 '솔직하지 않음' '거짓말' 따위의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가면'을 좋게 해석하자면 '내면의 꾸밈'을 말한다. 일상에서 '가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면 평소 인간을 바라볼 때의 관점이 외면보다는 내면을 향해있다는 의미고, 그래서 그들도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 외면보다 '내면을 가꾼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외면을 가꾸는 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시선은 겉모습보다는 내면을 향해 있으니까.

 

가면이란 표현에 공감할 수 없는 누군가에겐 당혹스러운 얘기일 수도 있다.

내면이면 내면이고 외면이면 외면이지, 왜 진짜 자신을 감추고 연기를 하려고 하지? 왜 가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지? 내면은 '꾸밀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나의 내면이란 바뀔 수도 없고 꾸밀 수도 없다. 내가 다른 사람을 예의 바르게 대하거나 개차반처럼 대해도 내 성격의 코어가 되는 '나'는 바뀌지 않는데, 왜 '나'를 감추고 타인을 대하려고 하지?

그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니까.

근데, '가면'을 쓴다는 말도, '가면'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도 이상하지 않다.

'내면'이란 표현을 받아들이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내가 엄청 싫은 상사에게 착하게 대해준다고 해서 '가면을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장 동료를 대하는 나도, 가족이나 친구를 대하는 나도, VRC 친구를 대하는 나도,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가면을 썼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에 따라 행동할 뿐이지 딱히 그런 행동을 하는 나를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의 코어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대하는 내 모습은 전부 다르다. 누군가에겐 상냥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누군가에겐 개차반 같은 모습도 편하게 드러낸다. 누군가에겐 엄청 싫어하면서도 앞에서 미소를 잃지 않으며, 누군가에겐 엄청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으며, 어떨 때는 나의 진심을 단 하나도 말하지 않고 대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러한 행위를 '가면을 쓴다'고 말하고, 나는 '그거도 난데?' 생각할 뿐이다. 누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간에,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나는 가면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보기엔 너도 너란 존재를 감추고 사람마다 다르게 대하잖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가면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

가면을 썼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도 내면을 외면과 내면으로 구분하고 있고, 가면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 누군가도 내면을 외면과 내면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표현의 차이일 뿐 행위는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의 성격은 바뀐다'고 말하는 사람과 '사람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차이기도 하다.

예전에 디스코드 음성방에서 친구들과 사람 성격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와 바뀐다는 파로 나뉘어 이야기가 전개됐다. 내가 보았을 땐 사람의 성격이란 절대 바뀌지 않는 요소였다. 내향적인 결을 가진 사람이 아무리 외향적으로 노력해도 외향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외향적이 될 수도 있을 뿐이지. 하지만 누군가는 나는 어릴 때 말도 못 거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이러이러하게 바뀌었다고 말하며 바뀔 수 있다 말했다.

그는 내면의 외면이 바뀌었다는 얘길 하는 거였고, 나는 내면의 코어는 바뀔 수 없다는 얘길 하는 거였다.

 

나는 그 때 성격이 바뀔 수 없다 말했지만, 내면의 외면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군대를 가면, 훈련소에서 사회에서 먹은 물을 빼는 작업을 한다. 처음엔 '이걸 왜 해?' 말하겠지만, 그 때의 상황과 분위기는 우리를 변하게 만든다. 처음엔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를 행동에 의문을 품지만,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 믿고 있는 공간에서 나만 엇나가는 순간 같이 혼나고 그들에게 질타를 받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어진다.

우리가 사회에서 조폭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도 다르지 않다.

언행만 보아도 말 한 번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주변의 패거리가 주는 위압감과 내 친구조차 조심하라며 알려주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분위기에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힌다. 우리는 조폭의 말과 행동에 대쪽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어렵다. 그 때의 상황과 분위기에 휩쓸리고 만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가 같은 그룹에서 오래 놀면 발생한다.

나는 톡식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닌데, 친구들과 오래 놀다 보면 친구들의 말과 행동이 옮을 때가 있다. 내가 절대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닌데 치기도 하고, 내가 절대 이런 식으로 말할 사람이 아닌데 말하기도 한다. 내 코어의 성격은 걱정이 많고 조심스레 행동하는 사람인데, 친구들과 어울리는 공간에선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친구들처럼 행동하고 만다.

역겹기만 한 쓰레기 영상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깔깔대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점점 쓰레기 같은 영상만 주워 와서 틀어주고, 쓰레기 같은 글을 보면 디스코드에 링크를 하고, 정말 격 없는 사이가 아닌 이상 '그럼 뒤져ㅋ' 같은 얘길 할 리가 없는데 쉽게 내뱉고 마는. 친구들과 같이 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룹에서 언행이 옮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자연스레 변해가고 만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나를 변하게 한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 친구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걔는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다. 처음엔 꼴 받아도 얜 원래 이런 성격이구나 하고 인지를 했기 때문에 아무도 타박하지 않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친구들이 나에게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지 않는다. 상냥하게 말하던 친구가 갑자기 기분 나쁘게 말한다 생각할 뿐이다. 자기를 조심스럽게 대해주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그럼 뒤져ㅋㅋ" 같은 소릴 하니 싫어질 수밖에 없다. 내면의 내면은 진짜 정말로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내면의 외면이 바뀌는 순간 나는 그에게 비호감으로 찍혀 점점 멀어질 수 있다.

 

내면(성격)을 본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내면조차 외면과 내면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건 내면의 내면이라기보다는, 내면의 외면이다. 코어가 바뀌지 않았더라도 내면의 외면이 바뀌는 순간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내 내면의 외면이 우간다를 끼고 있다면, 그들은 나를 밀어내기도 한다. 나의 내면이 여전히 똑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어떠한 계기도 없었는데 갑자기 나를 싫어한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