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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과몰입이 아닌 그들 [VRChat 보고서 106편]

by 심해잠수부 2025. 3. 25.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글이라 미리 말하고자 한다.

  •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경우를 말하는 게 아니다.
  • 서로 좋아하고 있는데 과몰입 선언(공표)만 안 한 경우를 말하는 게 아니다.
  • 서로 좋아하며 0티어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과몰입이 아닌 경우에, 과몰입처럼 붙어 다니는 경우만을 말한다.


아무리 보아도 과몰입인데, 진지하게 과몰입이 아니라고 말하는 친구를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옆에서 거의 모두가 과몰입 하냐고 물어보는, 그리고 둘이 같이 항상 붙어 다니는데도 과몰입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경우를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과몰입이라 부른다.

과몰입 하고 있으면서 말만 아니라 할 뿐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넘긴다.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과몰입이면서 자기들이 과몰입이 아니라 말하는 걸까?

나는 그들이 과몰입을 하고 있는데 과몰입이란 타이틀이 부담스러워 말만 아니라고 할 뿐이라 생각했다. 또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있는 마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과몰입이란 속박이 싫어 0티어 친구로 지내고 있을 뿐이라 생각했다. 과몰입을 하고 싶어 따라다니지만 '아직' 과몰입이 되지 못 한 상태거나.

하지만 정말로 과몰입이 아니라고 믿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0티어 친구라고도 여기고 있지도 않은 듯 보였다.

처음에는 그들이 자기 마음을 자기가 몰라 과몰입을 시작하고 있지 않다 생각했는데, 뭔가 달랐다. 친구고, 정말 좋아하고, 정말 붙어 다니고, 거의 과몰입 같은 행동만 골라 하면서도, 뭔가 사랑은 아니야. 은근히 일방적이고, 사랑이라고 하기엔 은근히 건조한 이상한 관계였다.

내가 보던 '말만 아니라고 할 뿐인 애들'과는 달라 보였다.

그렇다고 은근히 일방적인데 일방적으로만 흐르지도 않아.

뭐지, 얘네는 도대체?


누군가가 연애 감정으로 내게 잘해주기 시작하면, '감정을 받아주거나' '감정에 선을 긋거나'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잘해주는 건 누구나 좋아하지만, 과한 감정은 내가 돌려줄 수 없기에 부담스럽다. 이용하는 기분이 들고, 돌려주지도 못 할 감정에 찝찝해진다. 너무 미안해진다.

그래서 다들, 받아주지 못 할 상대가 자기 애정을 과하게 드러내기 시작하면 거리를 둔다. 나를 따라다니거나, 커뮤니티에 '걔' 언급하며 짝사랑 하는 감정을 태우거나, 뭔가 자꾸만 사주려고 하거나, 대놓고 행동하지 않았어도 행동에 감정을 숨기지 않아 발견할 수밖에 없거나.

나를 좋아한다는 친구의 감정을 '이용'하려고 하는 이는 많지 않다.

나중에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니까.

과몰입을 하거나, 과몰입을 할 수 없으니 거리를 두기 시작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보통은, 한 쪽에서 과몰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거절을 잘 하는 타입이면 먼저 물어보고 나는 네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어버리고, 거절을 못 하는 타입은 상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면서도 부담스러우니 자꾸만 피해 다닌다.

내게 무조건 잘해주려고 하는 그들의 행동을 멈추고 싶어 한다.

나는 받아줄 수 없으니 이런 행동을 안 했으면 좋겠다 말도 해보고, 말을 듣지 않으면 화를 내보기도 하고, 부담스러워 미칠 거 같으면 친삭하거나 블락을 해보기도 하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에 주황불을 켜고 도망가거나 음성 방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마이크를 끄거나 곧장 나가버리거나 등등.

보통은 그런 엔딩으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아닌 경우를 최근에 여럿 발견했다.

아무리 보아도 누군가의 일방적인 연애 감정이지만, 받아주는 입장에서 상대의 감정을 '거절'하고 '선을 긋기'보다 받아들이기를 선택하는 경우.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좋아하는 감정을 받아주고 자기도 자길 아껴주는 만큼 아껴주려고 하는 경우. 하지만, 과몰입은 아닌.

선을 넘을 정도로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모습에 화답하고 싶다면 과몰입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과몰입을 할 감정이 아님에도 상대의 감정을 받아주며 같이 어울린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려면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에게 고백을 하지 않는 일.
(혹은, 고백을 차거나 차였어도 서로 거리를 두지 않거나)

누가 봐도 사랑에 가까운 감정인데, 그 감정을 자기가 모를 수도 있고 무서워서 피할 수도 있는 상황에, 좋아하는 감정은 정작 다 드러내놓고 있으며, 그런데 상대방이 그 감정을 부담스럽다 여기며 선을 긋지 않고, 오히려 더 받아주는 상황이 발생하면, 거의 사실상 과몰입으로 지내면서도, 서로 진심으로 과몰입이 아니라 말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로 과몰입이 아니라 둘 중 하나가 일방적으로 좋아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한 명은 감정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외줄을 타고 있는 모습 같아 좋지 않다고 느낀다.

언제든 '전과몰입 호소인'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언제든 나중에 아쉬운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과몰입이었잖아!' 말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자기도 고백 안 했으면서. 과몰입에 관한 감정인 거 알면서도 상대 감정 다 받아줬으면서. 서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회피하는 모습과 누군가의 어리숙한 마음, 감정을 먹고 싶다는 실수 등 여러 문제가 섞여 만들어진 결과면서. 그러면서 나중에 과몰입이었다 슬퍼하거나, 상대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우린 과몰입이 아니었다 외면할 거면서.

서로 다 알면서 그랬으면서.

그런데도 과몰입이 아니라고 같이 외면한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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