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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필요 없는 친구 [VRChat 보고서 102편]

by 심해잠수부 2025. 3. 10.

내가 혼자 있던 방에, 친구가 오곤 한다. 두 명의 친구는 나를 보기 위해 왔다. 하지만 그 때부터는 다르다. 내가 혼자 있을 땐 아무도 오지 않을 방이었지만, 친구와 내가 있는 모습을 보고 다른 친구가 몰려들어 오기 시작한다. 나와 1년 넘게 본 적 없는 친구도, 나와 평소 잘 놀지 않는 친구도 다들 들어온다.

노란색 아이디와 인사를 빠짐없이 나누지만, 질문과 시간이 내게 머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언제 일어났냐는 질문은 그의 진짜 친구에게만 돌아갈 뿐 내겐 돌아오지 않는다. 마음을 쓰는 듯한 질문은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나도 분명 그의 친구인데 그의 질문은 다른 친구만을 향한다. 내게 무얼 했냐는 질문도, 지금 일어났냐는 질문도, 어떠한 질문도 내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럴 테니까.

다른 친구가 없을 때에 내게 왔던 친구만 내게 질문을 한다.

 

우리에겐 필요 없는 친구가 있다.

아이디는 노란색으로 뜨지만, 이제는 친구가 아닌 친구가 존재한다.

내 친구 목록에서 마음을 온전히 다 사용할 수 있는 친구는 20% 미만이다.

자기 얘기 하기 바쁜 친구를 찾아가지 않고, 내가 다른 공간에 갈 때마다 꼽을 주는 친구를 찾아가지 않고, 성적인 도킹만 해대는 친구를 찾아가지 않고, 내가 아무리 따듯하게 대해주어도 냉랭한 반응만 돌려주는 친구를 찾아가지 않고, 그 외에도 여러 이유로 찾아가지 않는 친구가 많다.

친추를 가벼운 마음으로 했기에 친해질 기회조차 없었던 친구도 한 트럭.

나는 나의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친구만을 원한다.

같은 방에 친구가 10명 있어도, 8명에겐 인사만 할 뿐 대화를 지속하지 않는다. 예의상 하는 인사와 예의상 하는 가벼운 질문 정도가 끝. 그들도 내가 대화의 포문을 열길 원치 않는다. 우리 관계의 유통기한은 이미 끝났고, 서로 친삭을 하지 못 해 남아있는 친구 목록의 관계가 대부분이니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서로 친구라고 부르기엔 너무 민망하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한 명만 알고 있는 경우는 안타깝다.

나는 여전히 그와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내 방에 들어온 그의 질문이 더 이상 나를 향하지 않을 때 깨닫고 만다. 그가 아무리 내 앞에서 착한 척을 하고, 나에게 웃어주고, 내 기분 상하지 않게 예의를 지켜 대화를 한다고 해도, 이제 나를 더 이상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소규모의 방일수록 쉽게 드러나고 만다.

셋이서 대화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가자마자 가겠다고 하는 나의 친구.

분명히 둘 다 노란색으로 표시되는 아이디인데, 그 친구는 나와 대화하던 친구가 떠나자마자 떠나고 만다. 왜냐면 내 친구만 그의 친구이고, 나는 그의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아이디만 노란 색인 필요 없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같이 있으면 어색하고 할 말도 없어 굳이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친삭을 쉽게 할 수 있는 문화였다면 오히려 좋았을 텐데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정말로 친구일까?

아무리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해도 우리가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친구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관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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