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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그들에게 친구의 의미란 [VRChat 보고서 64편]

by 심해잠수부 2024. 5. 15.

친구가 소중한 듯 말하지만 사실은 친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줄 알지만 정작 친구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내 친구도 짝사랑하던 여자애라면서 자기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다며 술자리에서 썅년이라고 욕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그 상황을 보며 내가 했던 생각은, '좋아하는 여자애라고? 좋아하는 여자앤데 그딴 일로 썅년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욕하는 거야?'였다.

친구의 모순은 당장 깨달으면서도 정작 내 모순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찾지 못 하고 살아왔지만.

 

나는 친구와 친구로만 지내기보다 음지적 교류가 있길 바란다. 내가 이상한 걸까 가끔 고민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현실에서도 외로울 때 다른 사람에게 안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듯이, 내가 외롭기 때문에 음지적인 무언가에 기대는 건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특별한 감정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채워지는 듯한 느낌, 누군가를 부릴 수 있을 때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라서.

내가 VRC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에서 못 채우는 특별한 감정을 채우고 싶은 거니까.

문제가 있다 생각하지 않았다. 쟤네도 좋아하니까 받은 거잖아. 내가 선을 밟는 거 같거나 상대가 싫은 티를 내면 조심하려고 하잖아 나도 친구를 잃고 싶은 건 아니니까. 관계 손절 안 당할 정도로만 가끔씩 선 조금은 넘어도 괜찮잖아. 내가 꼬리치면 쟤네가 넘어오는 거잖아. 무슨 문제가 있어? 불법도 아니고 나는 이거 없으면 안 되는데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내 블로그 글을 전체적으로 읽어본 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관계에 진심인 양 말해왔다는 사실을. 친구를 가벼이 여기는 듯한 사람에게 실망스럽다는 듯 말하는 일이 적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작 내가 친구에게 바란 건 내 감정 욕구의 도구 역할.

내가 그들과 달리 더 나은 모습으로 지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노골적으로 드러내느냐,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진심이라고 혼자 착각하며 자기 원하는 대로 행동하느냐의 차이였을 뿐인데. 대놓고 나쁜 놈이나 앞에선 위선 떨며 뒤에선 구린 행동하는 나쁜 놈이나 나쁜 놈이라는 점엔 아무 차이가 없는데.

 

관계를 유지하는 타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관계를 위해 나를 소모하는 타입, 나를 위해 관계를 소모하는 타입.

내 주변 사람을 떠올려봤을 때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많다.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재밌기 위해 지금의 관계를 소모한다. 특히 '게임이니까'라는 이유로 상대를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취급하는 일을 당연시 하는 유저도 많으니 그런 경향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울싸개'를 싫어하는 이유는, 친구를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며 관계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상대에게 잘 해주려고 하고 맞춰주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정작 우울싸개는 반대로 한다. 극단적인 수준으로.

하지만 우울싸개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친구를 잠재적 연인 혹은 게임 친구 혹은 외로울 때의 대화 상대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경중의 차이일 뿐 같은 타입인 사람도 많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얘길 하고 있는데도 '나는 친구에게 잘 해주려고 하니까' 라고 하며 정작 반대로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과 받지 못 하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가 이거 아닐까.

자기를 위해 관계를 소모하는 사람은 타인의 애정이 자기 안에 오래 머물지 못 한다. 타인을 자기 욕구의 도구로 쓰는 행위가 세균처럼 관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관계를 망치는 역할을 하니까. 상대와 잘 지내려는 노력을 일절 하지 않고 관계를 소모만 시키고 있는데 어떻게 관계가 사랑스럽게 유지될 수 있겠어.

친구로 잘 지내기 위해 신경 쓰고 애쓰는 사람과는 다르지. 친구가 틈만 보이면, 조금만 방심하면 관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내 요구를 드러내는 나 따위랑은 다르지. 조금만 방심하면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 주변 사람 뒷담이나 주변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일 드러내는 우울싸개와 그들은 확실히 다르지.

내가 우울싸개가 아니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친구가 틈만 보이면 가끔씩 내가 피곤했던 일을 말하려 했던 내가 우울싸개와 달라도 뭐가 그리 다를까. 생각이 어려서 막무가내로 우울을 싼 유저나 아닌 척 하면서 틈만 생기면 파고들려 했던 나나 달라 봐야 뭐가 그리 다를까.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나를 위해 관계를 이용하는 똑같은 타입일 뿐인데.

 

내가 VRC를 하는 방향이 너무나 잘못 진행되고 말았다.

내가 게임을 하며 원하는 게 친구보다는 다른 무언가였는데 평범한 친구를 너무나 많이 사귀었고, 친구에게 잘 하자니 내가 원한 건 그런 걸까 의문스럽다. 뿐만 아니라 나를 이용하려는 친구들이 내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도 이제는 알아버려서 더 이상 좋은 눈으로 바라보기가 힘들고.

이런 생각을 하니 내가 긴 시간 동안 쌓아온 무언가가 전부 잘못된 무언가인 거 같아 도망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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