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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훼방꾼 [VRChat 보고서 25편]

by 심해잠수부 2023. 7. 2.

VRC엔 훼방꾼이 있다.

RPG 게임의 몬스터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며,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고,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강하지는 않지만 플레이어를 방해하는 기믹으로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존재.

만화에서 보이는 '동정의 대상'처럼 그들은 안타깝다.

과거엔 인간이었던 자가 모험을 도전하고 실패하고 어느 공간에서 망령처럼 떠도는 모습처럼 안타깝기 그지없다. 누군가가 특별해서 그러한 몬스터로 태어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실패가 저주가 되어 자기 자신을 기괴한 몬스터의 모습으로 바꿔버린 거 같아서.

누구나 저주에 걸릴 수 있고, 방해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훼방꾼은 사람의 등에 붙은 귀신 같다.

귀신이 붙은 사람은 제대로 된 원인을 모르며, 자기 등에 붙은 귀신 때문에 이상하게 피곤해한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자는 너의 등에 귀신이 붙었다고 일러주지만, 귀신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그는 처음엔 이해하지 못 한다. 컨디션이 나쁜 어느 날 밤 거울에 비친 등 뒤의 기괴한 귀신을 발견하고 놀랄 뿐이다.

그리고 귀신은 끝까지 자기가 귀신인지 모른다.

차라리 귀신이면 보이지도 않고 피곤하기만 하니 다행이지, 훼방꾼은 좋아하는 그를 따라다니며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일을 방해한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유지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화인데, 훼방꾼은 그를 따라다니며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방해한다.

그룹에서 놀고 있다면 그에게만 말을 걸고 그와만 대화를 하며 다른 사람이 끼어들 여지를 제거한다. 그가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가면 따라가고, 그가 다른 친구와 대화를 시작하면 그에게 말을 걸며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막는다. 같은 월드에서 그가 다른 사람과 말이라도 해보려고 하면 그를 또 불러대며 여기 와보라고 이거 보라고 불러대고, 프라이빗이라도 잠시 가면 그에게 자꾸 인바, 리퀘를 보내며 불안 가득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왜 나를 그렇게 대하느냐며 그를 질책한다.

디테일한 모습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누군가가 자신 외의 사람과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어 '방해'한다는 공통점.

좋아하는 감정이 만들어 내는 괴물.

질투와 집착.

훼방의 형태는 다양하다.

졸졸 따라다니며 다른 사람이 깊이 대화할 수 없게 방해하고,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면 대화에 끼어들어 자기와 대화하도록 만들고, 다른 인스턴스에 가서 누군가를 만나면 찾아가면 또 따라가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공간에서 빠져나오면 핑계 언급을 하며 왜 여기 있느냐며 뭐 하러 간다고 그러지 않았냐며 재촉하며 기어코 자기와 있지 않을 때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없게 기어코 내보내 버린다.

씨발럼이.

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모습.

그래서 둘이 과몰입인가? 싶으면 과몰입도 아니고, 그저 친구 관계.

친구 관계지만 상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모습에 질투하고, 자신이 질투하는 모습에 친구가 질려하면 점점 더 어긋난 방향으로 집착하면서 기괴하게 변해간다. 집착하면 할수록 당하는 이도 질려 밀어낼 수밖에 없고, 당하는 이가 밀어내기 시작하면 감정의 골은 잔뜩 파이고 암전하고 점점 더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으로 빠져들어 간다.

헌터X헌터의 팜 시베리아(의 초기 모습)처럼.

그들도 어떠한 변화의 단계를 거치면 변화한 팜 시베리아처럼 성장할 수 있을 텐데. 처음엔 곤에게 집착하는 듯한 모습만 보여주다 나중엔 곤의 마음도 존중하기 시작한 거처럼, 그렇게 무언가 깨닫고 바뀔 수만 있다면 분명히 아름다울 텐데.

내가 있는 동안 바뀌지는 않겠지.

VRC에서 온갖 종류의 나쁜 일이 있지만, 이게 가장 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서로 감정 상해 욕 박고 싸우는 일, 누군가에게 쌍욕을 박는 일, 누군가의 험담을 하는 일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정말 많은 나쁜 일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VRC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게임이 아닌) 게임이다.

그런 공간에서 누군가의 접근을 방해하고, 누군가의 대화를 방해하고, 누군가의 대화를 끊어 자기에게 가져가고, 누군가의 대화를 마음대로 종료시키려 압박을 넣는 등 누군가가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방해하는 일만큼 그지 같은 일이 어딨을까.

다른 행위는 양보 조금만 하면 그럴 수도 있지 싶고, 조금 참을 수도 있고, 정말 조금은 이해해 줄 수도 있고, 기분 나쁘더라도 잠깐의 시간 동안 기분 나쁘고 그만이다. 하지만 이건 '잠깐' 나쁘고 그만인 행동이 아니다. 

다른 나쁜 일은 '짧은 시간 안에' 끝나지만, 이 행위는 몇 달 길면 반 년 넘게 아니 평생 이어질 수 있는 행위다. 티도 잘 안 나서 문제를 발견하기 힘들고, 애정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비겁하게 작전을 펼친다. 시간을 먹으면 먹을수록 크게 자라는 악성 종양 같은 행위라 진짜 좋게 바라볼 수가 없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을 막고 내 대화를 끊고 누군가를 고립시키려고 보이는 행동만큼 화나는 일을 내가 느낀 적이 없다. 아무리 좋지 않은 사이여도 짜증 날 때 뒤에서 욕 한 번 하면 그만이라 악감정까지 생기는 일은 드문데, 이런 행동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꾸준히 방해하는 사람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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