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RChat/VRC 보고서

환생의 이유 [VRChat 보고서 23편]

by 심해잠수부 2023. 6. 24.

생각보다 많은 유저가,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어 새 시작을 하는 '환생'을 한다.

병적으로 환생하는 유저도 있고, 주기적으로 환생하는 유저도 있고, 환생을 안 할 거 같은 (산전수전 다 겪은) 유저도 핀치에 몰리면(?) 환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 사이에서 '이 게임에서 New User 등급은 전부 환생이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도대체 환생을 왜 할까?

예전에 내 주변에서 자꾸 아이디 만들던 친구를 볼 때도 의문이었다.

왜 이렇게 자꾸 아이디를 새로 만들지?

 

환생의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로 나뉜다.

정말 이전 관계를 완전히 끊고 환생을 하는 유저와, 아이디만 새로 만들고 친했던 친구는 계속 친추하는 유저가 있다. 두 환생이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 똑같다.

문제없던 상황으로 되돌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박하사탕 영화를 스무살 즈음에 처음 봤는데, 처음 봤을 땐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고평가받는 영화다. 그리고 영화는 몰라도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명장면도 있다.

기차 앞에서 두 팔 벌려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외치는 장면.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 <박화사탕> 중에서

박하사탕 주인공(설경구)도 VRC 했으면 100% 환생했을 듯.

 

이 게임에서 트러블이 생기는 등 관계가 '꼬일 때'가 있다.

트러블이 생겼을 때, 트러블을 해결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문제보다 긴 시간 동안 이어지고,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해결해야 하며, 여기 구멍 막았다 싶으면 저기서 구멍 터지고, 저기 구멍 터지면 여기서 터지는 일의 연속이다. 노력해도 해결이 안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해결하고도 누군가가 내 뒷담을 까고 다니거나 하는 등 어떤 그룹 내 어떤 사람의 주변인 사이에서 내가 나쁜 이미지를 가져서 내가 피곤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트러블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부담스러워서 이젠 친삭하고 싶은데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진 않거나, 어떤 그룹과 더 이상 놀고 싶지 않은데 마주치기 싫은데 자꾸 마주쳐야 해서 힘들거나 등등 여러 불편한 일도 많다. 이 때, 나쁜 사람이 될 각오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차마 결단을 내리지 못 하는 유저도 있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면,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차분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얽힌 실타래를 풀기엔 지치고 힘들고 겁나니까 도망가는 일도 많다. 배우자와 도저히 잘 지낼 자신이 없을 때 이혼으로 싹둑 잘라버리듯이, 관계에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도 실타래를 붙잡고 풀고 있을 게 아니라 싹둑 잘라버릴 수 있다. 새 실타래 가져와서 바느질하면 되니까 실타래를 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 현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박하사탕처럼 이세계 환생 트럭에 치여 새 시작 하고 싶을 수도 있다.

나쁜 사람이 되는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고,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한 노력도 힘들고 지치고, 지금 당장 내가 여러 사람에게 까이고 있어 정신적으로 힘드니까 새로운 계정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 한다.

괜히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친삭해서 뒷말 나오느니, 괜히 다음에 마주쳐서 서로 불편하게 있느니, 괜히 얘에게 불만 있다고 말하고 이러이러한 걸 같이 고쳐 나가보자고 말하느니, 얘네한테 까이고 있는 거 일일이 설명하고 붙잡고 이해시키고 주변 사람 하나하나 포섭(?)하며 내 이미지 개선하고 잘 해주면서 예전 일 잊게 하는 노력하느니, 편하게 새 아이디 만들고 새로 시작하자.

 

나도 게임을 시작한 초기에 환생을 고민한 적이 있다.

친추를 했는데, 이 사람을 친삭할까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친삭 했다가 나중에 마주치면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환생을 할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런 비겁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친삭할 일 생길 때마다 아이디 다시 만들 건가?' 생각하면서 환생을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1년 가까이 지나고, 또 한 번 고민했다.

"이번엔 진짜 망한 거 같은데..."

얽힌 실타래, 십창난 이미지 등을 복구할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고, 나쁘게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거기다 내 편도 없는 거 같고, 모든 사람이 적처럼 느껴졌다. 악플 잔뜩 받는 사람 빙의라도 한 듯 괜스레 불안하고 막막해서 '접을까? 내가 이걸 왜 이렇게 시간 투자를 하고 있지?' 하는 고민도 했었고.

설경구가 기차에 들이박듯이 나도 환생할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여기까지 와서 수습을 하려니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아무리 봐도 이 거대한 흐름을 내가 막아낼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저 커다란 파도를 맞은 뒤에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서 나 다시 돌아갈래! 이 대사가 진짜 뇌리에 파바박 박히더라.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친 거구나.
많은 사람이 박하사탕 영화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느꼈구나.

환생은 어떠한 문제를 마주할 자신이 없는, 이겨낼 자신이 없는 유저가 선택한다.

더 이상 해결할 힘도, 용기도, 의지도 없어서 '새로 시작하면 어떻게든 괜찮게 풀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사람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초기화 버튼이다. 어차피 똑같은 일이 또 반복될 걸 알면서도,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들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결국 구석으로 몰린 사람이 등 떠밀리듯이, 한 발짝씩 뒤로 빼다 보니 절벽에 내몰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일 뿐이니까. 얼마나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고 자신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그저 비겁하게 도망가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지만 환생하는 일로는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는다.

새 시작을 했더라도 똑같은 갈등과 똑같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