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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사람을 낚는 인스턴스 [VRChat 보고서 26편]

by 심해잠수부 2023. 7. 2.

파란색 Private = 들어가면 못 나오는 방.

파란불 프빗에 관한 농담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인데, 자기가 어떤 사람을 위주로 사귀었느냐에 따라 볼 수 있고 못 볼 수도 있다. 프빗 인스턴스를 파고 파란불(Join me)로 설정한 채 누군가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들어가면 재미가 없기도 하고 나가기도 미안하니 방에 갇혀 고통 속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미.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프플로 인스턴스를 파고 무한히 기다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임을 해봤으면 알겠지만, 뉴비가 아닌 이상 굳이 인스턴스를 파고 누군가를 기다리듯 게임할 필요가 없다. 친구와 놀기 위해 접속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퍼블릭에서 누군가와 놀든 프플에서 친구와 놀든 '놀 사람이 있는 방'으로 가는 게 당연히 효율적인 행동이다.

굳이 자기가 판 인스턴스에서 혼자 멍때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친구가 접속할 때까지 게임을 안 켜는' 유저도 많다.

웹사이트에서 누가 접속했는지 확인하고 접속하는 유저가 많다.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는 일은 피곤하기 때문에, 평소 놀던 친구가 없으면 아예 접속하지 않는 유저. 정말 많은 유저가 알게 모르게 누가 먼저 접속하냐 언제 접속하냐 눈치 게임을 하고 있다.

혼자 외롭게 지내는 일을 모두가 기피하기 때문에, 자기가 판 인스턴스에서 무한히 멍때리는 유저는 보기 드물다.

혼자서 누군가를 몇 시간씩 기다리는 사람에겐 결함이 있다. 브수면 하느라 혼자 남게 된 사람 제외하고, 혼자서 월드 탐험 중인 사람을 제외하고, 아무 이유 없이 프플에서 프온에서 몇 시간씩 혼자 있는 사람에겐 결함이 있다.

누군가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자기가 차마 갈 용기가 없거나, 많은 사람 사이에서 경쟁하듯이 어울리고 싶지 않거나, 만나고 싶지 않은 유저가 존재하거나, 아니면 조용하게 이야기만 하고 싶거나 등등.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그들을 관통하는 포인트는 (자기 기준에서) 갈 수 있는 방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친구에게 가고 싶어도 친구의 친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 갈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그룹에서 자기를 밀어내는 거 같아 갈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자기 말만 이상하게 자주 씹히는 거 같아 가기 싫어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기가 환생을 했는데 전생을 아는 친구가 있어 도망가고 있을 수도 있고, 이유는 다양하고 많다.

JHP의 거울 앞 유저와 같다.

JHP에 가는 유저는 대개 다 그렇고 그런 유저지만, JHP에서 거울 앞에서 가만히 무한히 혼자 누군가를 기다리는 유저도 있다. 거절당할까 무서워서, 자기가 당하는 게 좋아서 등등 여러 이유로 다른 사람 앞에 먼저 다가갈 자신이 없으니 가만히 기다리는 유저도 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릴 생각이 없나? 하고 건드려 보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반응하는 그런 유저처럼.

인스턴스에 혼자 있는 유저도 대개 그런 유저다.

다른 누군가보다 그 누군가를 강렬히 원하고 있는 유저. 자기가 만나러 가지 않기 때문에 배를 채울 수 없고, 배를 채울 수 없는 만큼 배가 고파 더욱 더 강렬히 다른 누군가를 원하고 있는 유저.

다만 정도에 따라 차이는 존재한다.

'내가 먼저 나서고 싶지 않아 하는' 수동적인 타입은 만성화된 질병처럼 골치 아프다. 어떻게 해결해 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누군가에게 실망하기 쉬워하며, 자존심 때문에 자기 자신이 먼저 움직이는 일을 극도로 피하는 타입이라 해결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자기가 가던 그룹이 터져서 갈 곳이 없는 유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갈 곳이 있는데 가지 않는 게 아니라) 갈 공간이 공백 상태일 뿐이라 그룹을 찾으면 상태 이상 효과는 사라진다.

하지만 조금 더 복잡한 상황도 있다.

예를 들어, 그룹이 5개가 있어도 그룹 모두가 특정 그룹 친구와 엮여있는 경우다.

A 그룹에서 무언가 일이 있었고 기피하는 상대가 생겼을 때, B, C, D, E에 가도 A 그룹의 그 사람과 겹칠 수 있어 가기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그룹에서 마주치면 마주치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 서로 기 싸움을 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의도적으로 대화에서 배제, 의도적으로 무시, 대화 중 겐세이 등), 굳이 피곤한 일을 겪고 싶지 않아 피하다 보면 선택지가 확 줄어들 수 있다.

과몰입을 만들었는데 과몰입과 깨져서 내가 갈 수 있는 인스턴스 전부가 불편해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각자 나름의 성향과 문제가 있다.

 

근데, 혼자서 인간을 낚는 어부가 된 인스턴스는 행복해지기 매우 어렵다.

혼자서 인간을 낚는 어부가 된 인스턴스의 주인은 매력이 떨어지니까. 매력이 있었으면 자기가 인스턴스를 팠어도 항상 사람이 있을 테니 문제가 없지만, 매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인스턴스를 파도 (누군가 찾아오지 않아) 혼자 남아 낚시하는 거니까 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매력이 떨어지면 다른 그룹에 찾아가서, 다른 매력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즐겁게 놀려고 시도해야 한다. 세상이 불공평하지만 약간은 보험처럼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매력이 없는 사람은 매력이 있는 사람의 옆에서 그룹의 재미를 적당히 빨아먹으며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매력도 없으면서 그런 행동을 '거부'하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를 낚아본다고 한들, 재미없는 나의 한계는 명확하다.

'둘이서' 재밌게 놀기는 정말 어렵다. 서로 성격이 잘 맞아야 하고, 성격이 잘 맞더라도 오랜 시간 같이 봤다면 둘이 있을 때 딱히 재밌게 놀 만한 무언가가 없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정말 호감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서로 쓰잘머리 없는 얘기만 해도 즐겁게 놀 수 있는 관계가 아닌 이상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 힘들다.

그런데 둘밖에 없어서 재밌기가 힘든데, 나까지 매력이 없으니 1명을 고정적으로 내 인스턴스로 유입시키기도 힘들고, 온다고 해도 재미가 없으니 좋은 기억을 남기기 어렵고, 좋은 기억을 남기기 어려우니 계속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걔네가 나랑 친하다고 인스턴스로 굳이 올까?

처음에야 호기심에 잠깐 올 수 있지. 만약 예전에 알던 친구가 없으면 그마저도 안 오겠지. 어쩌다 알게 된 사람도 호기심에 왔다가 에휴 존나 재미없네 하고 다시는 안 올 텐데. 깨가 쏟아지는 사이가 아닌 이상 둘이서 재밌기가 얼마나 힘든데. 같이 3시간만 있어도 질린다. 

하다 못 해 술 먹자고 디코로 사람 꼬시고 판이라도 깔아야 뭐가 된다. 술을 미끼로 사람을 꼬시는 게 그리 좋지는 않지만, 술만큼 사람 꼬시기 쉬운 요소가 없다. 정정당당하게 플레이하지 않고 술 먹자며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는 행동도 재미없는 이가 다른 이를 끌어들일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다.

혼자서 물고기 하나 없는 욕조에서 낚시해 봐야 오리 인형조차 안 걸린다.

무언가 일이 있어서 혼자 있길 자처하는 거라면 '잠시' 그러는 거니까 괜찮겠지만, 다른 친한 친구와 잘 놀면서 가끔 그러는 거야 괜찮겠지만, 정말로 밥 먹듯이 항상 그렇게 지낸다면 특히 PC로 접속해서 그런 낚시를 즐기고 있다면 게임을 재밌게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혼자 있는 걸 원한다면 괜찮다. 자기가 상황을 이해하고 그렇게 행동했을 때 친구가 거의 생길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괜찮다. 자기가 지는 리스크를 이해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행동이 잘못된 행동은 아니니까. 자기가 알고 있기만 하다면.

하지만 "친구가 왜 내게 안 오지?", "왜 나를 찾지 않지?" 고민하는 유저가 많다.

혼자 있다 보면 자기에게 유리한 편협하고 나쁜 생각을 하기 쉬워지니까. 게임을 하면서 재밌어지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워지니까.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고 친구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상상하는 유저가 은근히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 상태로 다른 사람을 만나며 상대를 붙잡기 위해 고마운 티를 내며 행동해 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존나 재미없고 360도로 뱅글뱅글 돌려서 재밌을 만한 구석을 찾아봐도 재미있기가 힘들어서 안 가는 거뿐이니까. '얘는 맨날 여기 박혀서 다른 사람 만날 생각도 없나 보네.'라고 생각할 뿐이다.

사람을 낚고 싶다고 마음대로 낚을 수 있다면, 애초에 혼자서 몇 시간씩 사람을 낚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리가 없다.

포기하고 퍼블릭과 친구에게 가자.

그런 곳에서 얕게 어울린다고 마음이 채워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주변에서 내게 찾아와 나에게 관심을 표하는 게 아니면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VRC를 할 때가 아니라 정신과를 찾아가 봐야 할 때다.

 

그런 행동을 꾸준히 행한다면 정신이 버틸 수 없다.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 놀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같이 놀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듯 사람을 기대하며 가만히 있을 거라면 VRC를 끄고 에펙 등 여러 게임을 하는 게 낫다.

기동전사 V건담, "이런 현실이... 이런 현실이 있단 말이냐?"
기동전사 V건담, "이런 짓을 하고 있으면 모두 미쳐버린다."

최근, 내가 사람을 낚아보려고 애쓰다 정리한 생각이다. 뉴비 때 '쟤는 왜 저러지'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한 번 낚아보려고 애 써본 입장으로 다시 한 번 고민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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