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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묵언은 묵언끼리 [VRChat 보고서 24편]

by 심해잠수부 2023. 7. 1.

VR Chat인데 VR도 아니고 Chat(Voice)도 아닌 유저를 우린 만날 수 있다.

VR은 중대 사항이라 차별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VR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반응을 제대로 알 수 없고, VR로 기대하는 모든 요소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VR을 사용하는 유저는) 상대방에게 재미를 느끼기 힘들어 차별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음성 채팅은?

보이스를 하지 않아도 VR을 통해 행동을 보여 반응할 수 있다.

펜 등의 문자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데, 말을 하지 않는다고 차별할 만한 사항일까? 차별을 문제라고 주장하는 질문은 아니니까, 그저 질문을 하나 던져본 거니까 '아니 이걸 질문이라고 하나? 보이스 안 하면 당연히 싫지!'라고 반발심 가지듯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고민의 답이 어찌 됐든, 묵언 유저를 기피하는 유저는 생각보다 많다.

대놓고 차별하진 않아도 은근히 차별한다.

같이 술이라도 마신다 치면 그에겐 권유하지 않는다던가, 그룹에서 같이 놀지만 뒤에서 욕을 먹는다던가. VR로 바디랭귀지를 열심히 하든, 음성을 글자로 바꿔주는 기능을 사용하든, 문자로 채팅을 하든 '얘는 묵언이다'라고 인지되는 순간 그의 행동을 좋게 해석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유저에게도 묵언 유저와 100%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외국인과 친해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외국인과 언어가 달라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서로 영어를 못 하면 오히려 가벼운 영어만 사용해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고,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번역기를 사용하면서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 이젠 챗박스까지 있어 번역 돌린 문장을 굳이 펜 잡고 힘들게 쓰지 않아도 된다. 번역기 돌리기 아주 좋은 환경이다.

그리고, 번역기가 없어도 서로 호감만 있다면 서로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바디랭귀지로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서로에게 관심만 조금 있으면 충분히 같이 어울려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일어를 잘 모른다.', '영어를 잘 모른다.', '한국어를 잘 모른다.' 같은 얘길 하면 큰 일이라는 듯 받아들이는 유저도 있다. 서로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대화를 시도한 건데도, 언어가 다르다고 문제가 있는 양 반응하며 부담스럽다는 듯이 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행동이 잘못됐다고 말하고픈 건 아니다.

다만,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보면 조금 씁쓸할 때가 있다.

서로에게 관심만 있으면 상대의 행동이나 상대의 노력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고,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호감을 보이고 친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VRC에서 원하는 교류는 최소한의 기본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의사소통이다. '나'가 불편을 느끼지 않고 대화를 원만하게 이어갈 수 있는 형태.

딱히 자기가 같은 언어로 대화한다고 말을 엄청 잘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다지 재밌는 사람도 아니지만 언어가 완벽한 대화를 원한다. 자신의 능력과 결과물이 어떠하든 대화에 장애가 생긴다면 싫어한다.

그들은 언어 장벽이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일을 '나랑 너가 대화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너에게 대화해 준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펜으로 쓰는 사람 챗박스 쓰는 사람을 자기가 봐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매우 많은 불만을 가진다.

때문에, 언어가 맞지 않는 유저가 자기에게 대화를 자꾸 시도하면 달가워하지 않는다.

얘랑 대화해 봐야 자기 속에 있는 생각도 전할 수 없고, 초등학생이랑 대화하는 일과 다르지 않으니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우리 말을 잘 하지 못 하면 일적으로 같은 성인이어도 어린애 취급을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모국어인 입장에서는 상대가 내게 말을 할 때마다 과속방지턱마냥 턱턱 걸리고 말도 잘 안 통하고 배려도 해줘야 하니까.

딱히 별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답답해한다.

오디오가 비는 상황이나 자기 말이 (번역기 등을 써보지도 않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 조용한 게 아니라, 같은 언어를 썼어도 서로 할 말이 없어 조용해졌을 만한 상황이어도.

그들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무언가를 전했을 때 이해하려 노력하는 타입은 아니다. '대화'를 말로 해야 한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대화를 말로 하지 않을 때 생기는 불편에 대해 잠자리에 들기 전 귓가에 울리는 모기를 대하듯 반응한다.

내가 가끔 외국인을 친삭하는 이유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서로 대화하려고 충분히 노력할 수 있는데, 자신이 그러한 불편을 가지고 대화하는 일을 매우 피곤하게 여기는 유저가, 자기 친구에게 '에엥 말 안 통해서 싫어.'라던가 말 안 통한다는 이유로 별 말 하지도 않고 거르면 솔직히 기분 그닥 좋지 않으니 지우는 거지.

특정 유저가 싫다는 이유로 특정 유저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매달릴 필요 없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외국인과 어울리려고 하는 사람끼린 편견 가지지 않고 소통할 수 있듯이, 묵언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저는 결국 같은 묵언인 경우가 많다.

원사운드, <펠하우스> 중에서

추신.
<펠하우스> 만화 링크:
https://www.thisisgame.com/webzine/series/nboard/213/?n=46583

추신2.
이 글을 읽고 'VR도 차별받을 이유는 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는데, VR과 음성은 많이 다르다. VR에서 음성만 사용한다면 아바타에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사실 디스코드와 똑같다. 디스코드에서 음성 채팅해도 충분히 만족할 사람이다. 하지만 VR은 실제로 만나는 게 아닌 이상 디스코드 등 다른 도구로 대체할 수 없다. (다만, 차별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서 차별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추신3.
저는 묵언 유저가 아님.
저도 차별 안 하려고 하는데 안 할 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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