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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그룹 권력과 생태 [VRChat 보고서 27편]

by 심해잠수부 2023. 7. 11.

나는 군 생활을 할 때 부조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개선이겠지만, 나는 누군가가 내게 행하는 부조리에도 내가 타인에게 행하는 부조리에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어떤 사회든 다 사람 사는 사회일 텐데 싶어 적당히 지내기만 하면 되겠지 싶어 대충 지냈다. 어릴 때 겪은 일 때문에.

특별히 짜증 나는 누군가를 욕한 적이야 있어도 시스템을 탓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시스템 안에서 적응하지 못 하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기 바빴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모습처럼. 왤케 땍땍거려 하라면 해. 까라면 까는 거지 뭔 말이 이렇게 많아. 군대에 '원래'가 어딨어?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은 보상 심리가 강했다.

나는 일이등병 때 힘들었는데, 요새 애들은 어쩌고저쩌고 그게 말이 되냐. 나는 이등병 때 이러이러하게 했는데 쟤네는 왜 안 하냐. 내가 이러이러한 행동하는 건 내가 받아야 할 보상이지!

아니 내가 당한 거랑 내가 하는 거랑 대체 뭔 상관인지 싶어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은, 분명히 내가 일이등병 때 터치 전혀 안 하고 편하게 보내게 해줬는데 자기가 선임이 되더니 부조리를 만드는 후임이었다.

아니 얘는 자기 당한 적 한 번도 없으면서 다른 애들에게 왜 이러냐?

 

갑자기 군대 얘기를 한 이유는, '그룹'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군대에서 내 앞가림 하기 바빴다.

분대장 달고도 분대장 휴가만 받아 처먹었지 후임 관리는 해본 적 없다. 맞후임(후임B) 들어왔을 때 군가도 똑바로 가르쳐 본 적 없고, 알아서 해라 내버려 뒀다. 걔는 상병이 되어서도 군가를 제대로 못 불렀다. 그 정도로 방치했다. 사고 쳐도 딱히 지랄한 적도 없다.

그래서 후임B는 누군가에게 명령할 정도의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없었고(대우를 받을 만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를 비롯한 모든 선임이 괴롭힌 적 없으니 누군가를 갈구는 선임이 될 일도 없었어야만 했다. 당한 적이 없으니 보상심리를 펼칠 일도 없어야지.

하지만 걔는 자기보다 밑의 후임을 갈구는 이상한 후임이 되고 말았다.

그 때의 나는 "뭐지." 싶었다. 군대의 부조리는 대물림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안 하면 후임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현실의 부조리는 그렇지 않았다. 왜 당하지도 않은 애가 자꾸 부조리를 만들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호랑이가 백수百獸를 찾아 잡아먹으려는데 여우를 만났습니다. 여우가 말하길 「그대는 감히 나를 잡아먹을 수 없다. 천제天帝께서 나를 백수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지금 그대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이는 천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그대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그대 앞에 서서 걸을 테니, 그대는 내 뒤를 따라오면서 백수들이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 놈이 있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호랑이는 그렇다고 여기고는 드디어 함께 가는데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났습니다.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무서워해서 달아나는 줄을 모르고, 여우를 무서워해서 그런 줄로 여긴 것입니다. 지금 왕의 국토가 5천 리, 군사가 1백만 명이나 되면서 이를 전적으로 소해휼에게 맡겨 놓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북방 여러 나라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인데, 실은 왕의 갑병甲兵을 두려워하는 것으로서 백수가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국책》〈초책〉

이는 호랑이가 호랑이의 권력을 등에 업은 여우를 무서워한다는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해휼이 행사하는 권력은 본시 왕의 것이니 이를 분명히 할 필요성이 있다"가 포인트다. 이를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우가 자기가 왕이라도 된 양 미쳐 날뛰는 거니까.

 

나는 후임에게 부조리를 행하지 않았으니 내가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정말로 깨끗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깨끗하고 싶었다면, 후임B가 다른 후임을 갈굴 때 그러지 말라는 듯 참견을 해야 했었다. 내가 바라는 방향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하고, 이러한 일이 또 일어난다면 네게 책임을 묻겠다고 확실히 해야 했었다. 하지만 나는 관리하기 귀찮아서, 니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알아서 살아라 내버려 두었고, 그 결과 다른 후임들은 후임B에게 시달리며 힘든 군 생활을 보내고 말았다.

나는 다른 후임이 내게 힘들다고 토로할 때 "후임B가 좀 그렇지. 나도 걔 좀 그래."하는 식으로 멘탈 케어를 해주는 척만 했다. 착한 사람인 척만 했다. 후임B가 내게 다른 후임 누군가를 짜증 난다고 비하할 때 "그래, 걔가 좀 그렇지. 나도 걔 때문에 피곤해."하는 식으로 넘어갔다.

아무 일 안 한 척, 나쁜 사람 아닌 척, 모르는 척만 하고 지냈다. 이센스의 'True Story' 가사처럼, "너네는 그런 인간. 다 알아놓고 물어보면 난 몰랐다 미안." 썩어빠진 가식의 껍데기, 그게 아니면 누나 폭 두려운 겁쟁이였다.

그 때 내가 했던 행동은 옳은 행동이었을까? 내 방관 속에서 후임B가 다른 후임들에게 미쳐 날뛰었는데, 내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VRC에서 많은 친구 그룹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그룹이든, 모든 그룹엔 '중심'이라고 할 만한 리더 격 인물과, 리더 격 인물 주변에서 그룹을 끈끈하게 구성하는 참모 격 인물'들'이 있다. 모든 그룹은 거의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형태를 띠지 못 하는 그룹은 대개 힘이 없고 비실대어 그룹이라고 보긴 어렵다.

리더 격 인물은 '많은 사람을 품을 만한 그릇'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리더 격 인물은 '많은 사람을 품을 만한 그릇'을 가지고 있는 만큼, 문제 되는 사람도 주변에 많이 꼬인다. 많은 사람과 잘 지내니 문제 있는 사람의 수도 많다. 하지만 리더가 많은 사람을 품을 만한 성격이어도 그룹은 나름의 필터를 거치며 최소한의 수만 받아들인다.

분명히 리더가 끌어당기고 있는데 왜 필터가 생길까?

이는 그룹의 참모가 합격하지 못 한 자를 비언어적 표현으로 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룹에서 걸러진 이는 그룹의 '참모' 격인 인물을 탓한다. 직접적으로 나를 거른 사람은 참모 격인 인물이기 때문에, 리더는 나에게 잘 해줬는데 주변의 측근이 나를 멀리하여 내가 그룹에 끼어들기 힘들다고 착각한다.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리더 격 인물이 참모의 행동을 모르고 있을까? 옆에서 다 듣고 보고 있을 텐데,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허허허 하면서 지내고 있을까? 다 알면서도 모른 척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회사에서도 똑같다)

'자기네끼리 트러블이 있는 건데 굳이 내가 관여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일을 크고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내 뜻대로 안 되어도 적당히 지내면 되겠지.' 생각하며 좋게 좋게 넘어가는 성격이라 대충 지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리더 격 인물은 사람을 끌어모으기 때문에 그룹을 크게 만드는 인물이고, 참모 격 인물은 그룹을 끈끈하게 유지하는 만큼 끈끈하기 힘든 다른 사람을 배척하며 작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룹의 '권력'은 항상 '사람을 끌어모으는 사람'에게 있다. 하지만 실제로 권력을 휘두르며 그룹의 정체성에 관여하는 사람은 그룹의 참모들이다.

그룹의 리더는 한 번 즈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룹의 리더 위치에 있을 만한 사람이라면, 분명히 다른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니고 있을 텐데.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항상 원하고 갈구하는 사람일 텐데, '사람을 끌어당기는 나', '사람을 원하는 나'가 바라고 있는 그룹의 모습이 맞는지.

그룹이 커지는 과정은 리더 격 인물이 모든 이를 다 받아들이려고 할 때 시작되며, 그룹이 커지는 과정에서 참모 격 인물에게 불만이 쌓이는 일이 많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으니까. 내가 받고 싶은 사람만 받아야 하는데, 내가 받기 싫은 사람도 받아야 하니까. (같은 이유로, 참모 격 인물은 리더가 될 수 없다)

많은 인원이 그룹에 들어오면, 인원이 늘어난 만큼,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이 늘어난 만큼 '나'(참모)를 중심으로 엮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그룹 내 권력이 점점 분산된다.

참모가 지니고 있던 그룹 내 권력은 '자기 힘으로 만든' 권력이 아니라 '리더'의 권력이라, 참모가 아무리 자기 말을 들어달라는 듯 말해도 모든 인덕은 리더에게 있고, 결국 권력은 리더에게 있어 참모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리더를 설득하지 못 하면 절이 싫은 중이 떠나야 한다.

자기가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친한 관계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내 말을 들어달라 호소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참모'에게 권력이 있는 게 아니라, 참모에게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아니라, '리더'에게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권력은 리더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여우가 자기가 그룹에서 무언가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권력은 리더와 등지는 순간 사라지며, 리더가 무언가를 행하려고 할 때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정책이라 아무리 반발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참모가 아니라 리더에게만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참모끼리 끈끈했어도 말이다.

착각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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