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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풀트를 팔고 싶은 이유 [VRChat 보고서 8편]

by 심해잠수부 2023. 4. 14.

어느 순간부터 만나는 사람만 만난다.

새로운 사람 찾아다니는 일은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니까.

'그룹'에서 어울리는 사람은 친구 개인보다 그룹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친구 그룹에 있는 모두를 좋아할 수는 없다.멤버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만난다기보다, 그룹에 속하지 못 하게 됐을 때의 파급 효과가 무섭거나 귀찮아서 만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룹에 머물며 매일 만나는 사람만 만나면 결국 멤버 모두와 "친구"가 된다.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친구를 만들었든 간에, 친구가 되는 순간 친구와의 유대가 생긴다.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많다. 단편적인 예로, 친구가 되면 예의가 없어지는 일이나 상대의 특징을 알게 되었으니 상대의 나쁜 성격도 이해해주어야 하는 일 등. 

그래서 그룹엔, 특별한 친구도 있고 특별하지 않은 친구도 있고 싫은 친구도 있다. 멤버 모두를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딱히 원하지 않았던 덤 친구까지 사랑해줄 순 없으니까. 오히려 애매한 친구기 때문에 화나는 일도 많다. 

내가 좋아하고 잘 보이고 싶은 멤버 때문에 짜증 나는 친구에게 욕 한 마디 하지 않고 넘어간다. 기분 나쁜 얘길 해도 그런갑다 하고 넘어간다. 내 평판을 지키기 위해 나쁜 말도 참는다. 친했던 친구와 어느 순간 사이가 나빠져도 다른 친구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티도 안 낸다. 너무 기분 나쁘면 친한 친구에게 기분 나빴다며 징징거리고 다음 날엔 웃으며 대하며 알게 모르게 기 싸움하고.

친구 단톡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처럼 말이다. 

그래서, 과장 많이 보태서, 현생에서 타인과 엮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혼자서 지내기에 세상은 너무 외롭다. 혼자 있으면 외로운데, 같이 있으면 짜증 난다. 혼자 있을 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고, 같이 있을 땐 옆에 없었으면 좋겠다. 딜레마다. 

 

'내가' VRC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상냥한 감정 때문이다. 내가 타인에게, 타인이 나에게 상냥해질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더 끈끈하게 만들어주고 싫어하는 사람도 품을 수 있는 상냥한 세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귀여운 아바타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상냥한 감정. 

해볼 만큼 해보고 느꼈다.

상냥하지 않다. 처음 경험했던 VRC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여겼지만, 해볼 만큼 해보니 100% 나의 착각이었다. 현생의 관계처럼 질리고 지친다. 일반적인 관계와 다르지 않다. 

어느 순간 접속하지 않게 된 유저도 대부분 나와 유사한 기분을 느끼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친해질 만큼 친해지면 더 이상 예쁜 아바타를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다. VR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로가 서로를 아바타 등의 외부적인 요소로 평가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본다.
나도 '너'만 본다. 

친구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VR 장비를 사용할 이유'가 사라진다. 

굳이 힘들게 VR 장비 착용해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풀트가 있어도 PC로 접속하게 되고, PC로 접속이나 하다 어느 순간 끝. 

그렇게 우리는 디코에서 보는 친구와 똑같아진다. 

 

VR 장비까지 착용해서 얻는 감정은, 고작 디코에서도 얻을 수 있는 감정으로 바뀐다. VR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에서 너무나 흔하게 얻을 수 있는 감정으로 바뀐다. 더 이상 상냥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다. 평범할 뿐이다. 

현생 술자리의 사소한 짜증이, 디코 서버에서 겪는 사소한 짜증이, VR 기기를 착용하고도 똑같이 전해진다. 아니, 오히려 현생 관계보다 더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걔네는 나보고 어디 가자 저기 가자 요구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뭐라고 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데. 술만 퍼마시면 되는데. 

짜증만 나는 고교 동창이나 디코에서 자꾸만 나를 긁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야 만다. 

처음엔 특별하다 믿었지만, 친구 따라 들어간 디코 서버와 다를 바 없었다.

흔한 관계의 반복이었다. 

UMC/UW - 사랑은 재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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