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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오늘부터 1일 [VRChat 보고서 9편]

by 심해잠수부 2023. 4. 14.

과몰입을 명시하지 않고, 과몰입에 가까운 감정을 즐기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과몰입이라고 말하고 헤어지면 다시 볼 수 없게 되니까, 혹은 상대는 과몰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고백해도 차일 테니까' 친구로 지내면서 감정적으로 뽑아먹을 수 있는 무언가를 다 뽑아먹는 행태.

이런 행동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옳다.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내용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원금을 보장해주기로 했다"고 아무리 주장해봐야 계약서에 없으면 끝이다. 최소한 계약 내용에 관한 음성이라도 따놨어야 문제 삼을 수 있다. 돈을 받아야 할 때도 그렇다. 이체 기록은 내가 돈을 빌려줬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어떠한 권리나 물건을 판매해서 받은 대금인지 정말로 빌려준 돈인지 확인할 수 있는 추가 증거가 필요하다. 

과몰입을 한다고 말을 하지 않고 즐기는 행태는 위험하다. 

'나는 좋아했다'고 백날 주장해봐야 상대방에겐 과몰입이 아니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내게 잘 해주니까 좋았을 수도 있고, 선물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척하는 걸 수도 있고, 몸만 원하는 관계였을 수도 있다. 찍먹(?)을 많이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탐색전(?)이 긴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나 혼자만 좋아했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어떤 이유건,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었는데?"라고 말하면 그만인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런 거 였지만 명시하지 않아서 구라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명시하지 않았으니' 아무리 그런 거 같아 보였어도 그런 거였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자기 눈엔 그런 거 같아 보였다 한들 대부분 아쉬운 자신의 착각이나 오해였을 뿐이며, 착각이 아니었다고 증명할 방법도 없다. 몇 달 가까이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가 새 사람 생기니 아쉬워서 "왜 나한테 관심 안 줘? 우리 그런 사이였잖아." 주장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초등학생 때 연애했을 뿐이고 성인이 될 때까지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살지 않다가 로또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사귀는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건지, 사실혼 관계였는데 로또 맞은 뒤에 모른 척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명시하지 않은 관계는 없었던 관계와 같다. 

그저 탐색전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까 말했다시피 애초에 그런 관계까지 생각 안 한 관계일 수도 있는데, 마음 다 떠난 뒤에 '우리 사귀는 거였잖아' 말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명시하지 않으면 언제든 새 사람을 사귀어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엔조이였잖아' 한 마디면 끝난다. 다른 사람이랑 자고 왔다고 해도 '아니 우리 사귀는 거 아닌데 왜 그렇게 속박하려고 들어?' 한 마디면 끝난다. 

 

탐색전을 벌이고 있을 때에도 과몰입이라고 명시해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과몰입을 시작하기 전 얼마든지 탐색전을 벌일 수 있고, 그 기간이 1년 넘게 이어질 수도 있다. 다만 '명시하지 않았으니' 1년 넘게 이어졌어도 과몰입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현실처럼 사실혼 관계가 있는 거도 아니고. 

'사실혼 관계다' 주장할 수도 있지만, 현실의 사실혼 관계도 "동거 기간"이나 "상견례", "가족과의 교류", "이웃에게 부부로 취급받은 점", "부부 동반 여행", "부부 자격으로 참가" 등 여러 정황으로 따진다.

과몰입에서 사실과몰입(?) 관계를 따진다면, '친구 그룹에서 과몰입으로 취급받은 점' '연인 자격으로 참가' '둘이 인스턴스에 따로 돌아다녔던 시간' 등으로 밖에 따지게 될 텐데, 애초에 '친구 그룹에서 과몰입으로 취급받은 점'부터 걸린다. 명시하지 않은 관계 대부분은 '우리 과몰입 아니다'라고 변명하기 때문이다. 

과몰입 아니랬는데, 어케 과몰입으로 인정받아. 

그러니까 과몰입 선언을 하진 않더라도, 상호 간 과몰입이라고 명시해야만 한다.

 

명시하지 않고 감정을 즐기는 유저가 왜 그러는지는 이해하고 있다. 

처음 말했다시피 '상대가 안 한다고 해서' 고백해봐야 차일 테니까, 혹은 깨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깨지면 너무 노답이라 하고 싶지 않은데 좋아하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혹은 주변에서 보는 눈이 이상해질까 봐 등 여러 이유에서 그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거 했으니 말 안 해도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그렇게 애매하게 유지하면,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손절할 여지를 주게 된다. 

과몰입 아니니까 더 매력적인 걔랑 과몰입해도 괜찮은 거지. 

외로울 때 다른 사람에게 조금 안기거나 아무하고 야스 해도 뭐라고 말할 명분이 단 하나도 없고, 걔에게 마음 있는 사람이 존나게 꼬리 쳐도 너는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고, 옆에서 지켜만 보다가 '왜 쟤랑 찐하게 붙어있어?'라고 단 한 마디도 따질 수 없다. 

그 말을 못 하니까, 히토미 망가 히로인들 기싸움하듯 걔에게 더 달라붙어서 기싸움하듯이 '나도 해죠 나도' 이러면서 기 싸움을 하겠지. 한숨만 나오는 모습들.

 

명시하지 않으면 결국엔 개족보가 된다.

A는 B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명시하지 않았다. B도 A와 잘 어울려주었지만, 과몰입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B의 마음에 드는 C가 나타났다. C가 나타나고 B는 C와 어울리며 지냈다. B는 C를 과몰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C는 얘가 이렇게 달라붙을 정도면 이건 과몰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A가 'B랑 나는 과몰입인데 왜 C랑 놀지?' 생각만 하고 말은 하지 않고 끙끙 앓고 있었다. 

C가 원하던 D가 나타났다. C는 D가 정말 좋았지만 '과몰입 하고 있으니까' 배반할 수 없다며 노력하고 있었는데, B가 D에게 고백을 박아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B에게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A가 고백을 한 적도 없고, C가 확인한 적도 없으니까. 

명시하지 않았으면 말할 수 없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명시하지 않은 사람, 명시하지 않았을 때 확인하지 않은 사람의 잘못이다. 

"쟤가 나랑 사귀는 중에 다른 애랑 섹스했어요 개쓰레기에요 저랑 사귀는 사이였는데 바람피웠어요"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려면 연인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만 한다. 적어도 주변 사람이 인정해주고 있는 관계거나. 

그렇지 않다면 '쟤는 야스 파트너였는데 자기가 몇 년 가까이 연락 안 해놓고 그 사이에 내가 배우로 성공하니 아쉬워서 SNS에 저런 소리 쓰고 다닌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끝이니까.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사항은 없는 조건과 같다. 

'걔가 나를 속였다'고 주장하려면 상대가 과몰입 할 생각이 없는데도 과몰입이라고 할 때 가능한 거지, 속일 의도가 전혀 없었고 친하게 지내며 몸 섞은 게 전부인데 자기 혼자 '사귀고 있었다'고 착각한 내용으로 '나를 속였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거절이 무서워도 아무리 주변의 눈이 무서워도 과몰입은 꼭 명시해야만 한다. 과몰입이라고 말하지 않고 감정만 뽑아먹어선 안 되며, 뽑아먹고 있다면 그 때라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책임이 무서워도, 헤어진 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서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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