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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타인의 삶을 탐하지 말지어다 [VRChat 보고서 49편]

by 심해잠수부 2024. 3. 3.

나도 빈지노처럼 되고 싶다 진짜 빈지노처럼 되면은 랩 할 맛 나겠다 진짜 씨발 개작살 난 뭐지?

Beenzino (빈지노)

내 것이었으면, 빈지노의 돈 빈지노의 차, 빈지노의 옷, 빈지노의 팬, 빈지노의 랩, 빈지노가 사는 24 7 everyday, 빈지노가 받는 공연 1회당 페이와 빈지노의 스케줄, 빈지노의 계좌, 줄이 길게 선 빈지노 공연장 정문, 대기실에 가득 쌓인 빈지노의 선물, 빈지노의 인기, 빈지노의 위치, Bitch들이 핥고싶은 빈지노의 찌찌, 빈지노의 톤, 빈지노의 플로우, 빈지노의 스마일, 빈지노의 스타일, 빈지노의 얼굴, 빈지노의 몸매, 빈지노의 아이큐, 빈지노의 서울대, 여대 앞을 지나갈 때 빈지노의 기분.

빈지노로 살아봤으면.
딱 10분만이라도 10분만이라도.

하지만 거울 앞에 나는 나인 걸 그래 그냥 나는 나인 걸.
어떻게 입고 꾸며봐도 나인 걸 아무리 랩을 해도 나인 걸.


많은 이가 타인의 삶을 갈망한다.

인기가 많은 친구를 보며 부러워한다.

아바타가 예쁘면 되지 않을까 싶어 유니티도 하고, 삶이 힘든 친구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말도 예쁘게 해보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렇게 약간의 보상을 얻었다고 좋아하다 얼마 후 요요 온 사람처럼 모든 상황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나는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을 정말 싫어하지만, 사람은 정말로 잘 바뀌지 않는다.

소중한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다 죽어 오토바이를 멀리할 수 있고, 소중한 친구와의 다툼으로 인해 친구 이야기를 다른 사람 앞에서 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 어떠한 사건으로 어떠한 선택적 행동을 하지 않을 수는 있다. 살 쪄서 싫다는 말을 듣고 살을 뺄 수도 있고 이러저러한 방향에서 사람이 바뀔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결'은 정말로 웬만해서 잘 바뀌지 않는다.

나무가 바뀌어도 겉의 껍데기나 잔가지가 바뀌는 거지, 나무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나이테와 나무 몸통의 굵기 몸통이 자란 방향 등이 바뀌진 않는다. 오히려 삶을 살아갈수록 나이테가 더욱 많아지고 뚜렷해진다. 사람의 성격도 그렇다. 어릴 때 봤던 성격이나 나이 들고 본 성격이나 '내면의 결'은 바뀌지 않고 유사한 경우가 정말 많다.

내면의 결을 바꾸기 어렵다.

때문에, 매력 없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 되기도 어렵다.

 

안타깝게도 인기 있는 사람의 '유형'은 솔직히 정해져 있다.

예전에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인데, "말 많이 안 하고, 차분하고, 말 잘 들어줄 거 같은 조용하고 귀여운 사람 다들 좋아하잖아. 누구 씨나 누구 같은 사람들? 과몰입 도킹 계속 받는 사람들은 뻔하다니까. 다들 그런 사람 좋아하는 거지."

그런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인기 있는 사람의 유형은 정해져 있다.

목소리 예쁘고 말 조신하게 하고 기분 나쁠 법한 말 절대 안 하고 행동거지 조심스러운 사람.

거기서 내게 관심까지 잘 가져주면 100% 과몰입 후보 1순위 등극.

 

인기를 얻고 싶다면 타인에게 드러내는 성격을 방금 말한 틀에 맞추어 조각하면 된다.

답이 이미 있지만 할 수 없다.

"넌 말하곤 하지 '돈이 많음 얼마나 좋을까?' 돈이 다가 아냐 사람들은 자꾸 속아. 그게 짜식들이 계약서에 사인하는 이유, 그깟 종이 한 장이 다 타고 남은 미움. 절대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 지금도 많은 녀석들이 샅샅이 뒤지고 있지 뒷문. 나도 알아 많은 래퍼들이 원했던 건 그저 효도였을 뿐 그다지 큰 성공도 돈도 아녔어.

나도 알아 많은 브붕이들이 원했던 건 그저 좋아하는 친구의 작은 관심이었을 뿐, 그다지 큰 인기도 과몰입도 아녔어.

똑같이 따라 하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얻고 싶은 인기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바란 게 아니니 적당히 관심 조금 받으면 그만일 뿐인 욕망이라 똑같이 따라 하다가도 금방 포기하고 만다. 잠시 따라 해도 오랫동안 유지하지는 못 한다. 자기 내면의 결과 정반대의 성격을 억지로 유지하는 건 정말로 힘들거든.

죽자사자 따라 한다 해도 의미가 있을까.

내가 가진 내면의 결이 그러한 모습을 유지하는 일을 너무나 힘들어하는데.

내 주변에서 그러한 성격을 유지 잘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 취급을 받는 걸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원래 그런 성격인 사람들뿐이었다. 나 같이 비뚤어진 사람은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어도 절대 인기 많은 성격을 유지할 수 없다. 너무 고통스럽거든.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으니 답답하고 미칠 거 같겠지.

아무리 유명인의 옷을 따라 입어도 아무리 나를 가꾸어봐도 나는 나일 뿐이다.

인기 많은 친구의 삶을 아무리 갈망해 봐야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굶지는 않나 도와주고 싶어 이웃의 그릇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면 남의 그릇을 확인하지 말지어다. 이웃의 그릇을 보며 나도 저만큼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자라면 남의 그릇을 확인하지 말지어다. 강백기의 시간과 장그래의 시간이 같지 않듯이, 호감고닉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같지 않다.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노력한 삶의 시간이 다르다.

내면의 결과 다른 성격을 억지로 죽자사자 따라 한다고 한들.
맞지도 않는 옷을 보며 입고 싶다고 자꾸만 욕심을 부린다고 한들.

여자가 되고 싶어 남자 몸에 여성의 옷을 아무리 입는다고 한들.
거울 앞에 있는 시커먼 남자는 바뀌지 않는데.

 

어릴 때 게임에서 알파메일인 척해본 적이 있다.

허언.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런 삶이라 구라를 치며 친구를 사귀었다. 인터넷에 있는 잘난 다른 사람 사진까지 도용하고.

어느 날 길드 정모가 열렸다. 나는 길드정모에 정말정말정말 가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이도 얼굴도 달랐으니까. 가면 내가 아닌 걸 모두가 알게 되니까.

그 때 "이딴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때 이후로 사이버 세계에서 뻥카를 치지 않게 됐다.

사이버 세계에서 적당히 적당히 구라쳐도 남들은 모른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베타메일이 알파메일이 되는 정도의 구라가 아니라, 소소하게 이름 나이 삶의 환경 등을 구라치면 남들은 모른다. 너무 심하게만 안 치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일 이후로 그러한 구라를 치는 게 너무 싫어졌다.

 

'내면의 결'에 어울리지 않는 '성격'을 억지로 꾸미는 일도 그와 같다.

나는 다른 사람의 우울한 이야기도 들어줄 수 없고, 엄청난 하이텐션으로 친구를 즐겁게 만들어주지도 못 한다. 마음에 안 드는 친구를 상냥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도 없고, 마음에 안 드는 친구에게 내 속마음을 감추지 못 한다. 좆 같은 새끼에겐 좆 같다는 생각을 하고 티도 내야만 한다.

정말로 노력하면,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면 약간은 제어할 수 있다.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어도, 나는 성격을 끝까지 유지할 수 없다.

예전에 똘똘똘이 라는 유튜버가 스트리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인기 있는 게임 할 수 있으면 좋지.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게임을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으면 그거도 재능이다.

인기 있는 롤로 스트리밍을 하면 좋겠지만 롤에 관심도 없는 사람이 롤을 붙잡고 있기는 어렵다. 인기없는 게임을 붙잡으면 경쟁자가 적으니 고정 수요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인기 없는 게임을 죽자사자 붙잡고 있기는 어렵다.

내 성격도 그렇다.

내가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인기는 금세 사라진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내 성격을 가꾸어 행동해도, 화가 날 때 짜증 날 때 컨디션 나쁜 날 술 먹고 정신없는 날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다. 어느 날은 도저히 힘들어 성격을 유지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기를 얻기 위해 억지로 만든 모습을 일상에서까지 유지할 수는 없다.

연예인처럼 공과 사를 분리할 수 있으면 몰라도.

숨겨왔던 모습을 일상 속 주변 사람에게까지 완벽하게 감출 수 없다.

결국 나는 내가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의 결과 유사한 성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일상 속에서 유지할 때 힘들지 않은 성격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 재미없는 게임으로 방송을 매일 8시간씩 할 수가 없다. 내가 8시간씩 매일 게임을 하려면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해야만 한다.

억지로 죽자사자 내 성격을 바꾸어보아도,
아무리 인기 있는 친구를 따라 해도,

거울 앞에 나는 나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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