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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과몰입이 석 달을 못 가는 이유 [VRChat 보고서 50편]

by 심해잠수부 2024. 3. 8.

과몰입 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일주일 만에 끝나는 커플도 많다. 한 달을 버티면 많이 버텼다. 두 달을 버티기 쉽지 않다. 그런데, 과몰입이 끝나면 무엇이 시작되는 줄 아는가? 새 과몰입이 시작된다. 과몰입이 끝났으면 상처도 받고 더 하지 말아야지 생각할 법도 한데 자꾸만 과몰입이 다시 시작된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과몰입 조금 그렇지 않나?' 최근에 생각한 적이 있다.

아무리 랜선 연애에 불과한 과몰입이라고 해도, 그래도 진심으로 좋아한 관계일 텐데 과몰입이 깨지고 바로 새로운 과몰입이 생겼다며 진심으로 사랑하는 듯 말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몰입이 생기는 거 까진 OK인데, 이전에도 진심이었던 듯 말하고 이번에도 진심이었던 듯 말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 때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는지 사람이 싫었던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때 과몰입 문화에 회의감을 한 번 가졌다.

 

'과몰입 3개월의 법칙'이라고 친구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과몰입 3개월 이상 가면 대부분은 롱런이라고.

실제로 그랬다. 내 주변에 과몰입하는 유저 대부분은 석 달을 못 가거나 1년 이상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신기하지 않나? 애매하게 4개월 5개월 즈음에서 끝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무슨 과몰입을 1년이나 하지 싶은데, 1년은 지나야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정리하는 케이스가 많다.

 

과몰입이 3개월을 넘기기 힘든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예전에 '브생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친구가 많이 늘어나는 시기엔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많아 게임에서 좋은 감정을 많이 얻어갈 수 있다고. 관계의 초기엔 상대방을 알아가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 여기기 때문에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대해주는 유저가 많다고. 시간이 흐르며 감정이 조금만 식어도 그 때의 관심을 다시 받기는 어렵다.

과몰입도 똑같다.

과몰입 초기엔 그렇게들 서로 좋아한다. 신혼부부 같다. 환상이 부서지지 않았고, 아직도 설렘이 남아있으니 엄청 잘 대해준다. 상대방을 '연인 관계에서는' 아직 잘 모르니까 같이 있는 시간도 즐겁다. 상대방의 말도 잘 들어주고 서로에게 잘 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둘이 붙어있는 시간 2주일이면 컨텐츠가 동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둘 다 백수라서 매일 붙어있으면 일주일이면 소모되고, 직장인이라 저녁에만 조금씩 보는 정도면 두 달까진 갈 수 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이 정도면 100시간은 넘게 같이 있었다는 의미니까.

애정의 모습이 영원히 처음 모습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변한 애정의 모습에 둘 중 한 명이라도 실망하면 과몰입은 끝난다.

과몰입을 하는 유저는 과몰입 초기의 달콤한 감정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관계가 지속될수록 그 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한 달 두 달만 지나도 '평범한 친구'처럼 대해진다. 예전에는 일어나면 일어났냐 물어주고 게임도 같이 하고 항상 나랑 붙어있으려 했는데, 이젠 자기 친구와 노는 일을 더 재밌어한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 좋아하고 관심을 보이고 잘 해주려고 노력하던 달콤한 시기를 잊을 수 없다.

그는 그 시기가 계속 필요하다.

그 시기가 끝난다면 언제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이러려고 과몰입하는 거 아닌데."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결혼 생활을 '의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비리비리할 때 거둬주고, 먹여준 부인에게 의리 지키고 살 뿐이다. 결혼 일찍 해서 후회는 하지만, 후회는 잠깐이다. 전 아무리 술에 취해도 본능적으로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한다."

분명히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연애 초기처럼 깨가 쏟아지는 사랑은 아닐 거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에게 왜 나를 그렇게 대하냐 불만을 가지지 않고 서로 친구처럼 지낸다. 가끔 띠껍게 행동하거나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도 손절하지 않고 서로 조율해 가며 관계를 지켜간다.

 

과몰입 롱런하는 유저들도 그렇다.

상대가 초기의 모습을 잃어버려도 과몰입을 그만할 정도로 크게 실망하진 않는다.

서로 현생이 바빠 자주 접속하지 못 해도, 적당히 만나 가끔씩 대화를 나누는 일 정도로 충분히 만족하며 지낸다. 가끔은 옆에서 보면, '우리 과몰입이다' 하는 타이틀만 가져가는 느낌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부부 생활이 '사랑'에서 '의리'로 넘어간 모습과 같다.

그들은 그 때의 달콤함이 없다고 상대에게 답답해하지 않는다.

 

과몰입을 자꾸 바꾸는 친구가 어리숙하다고 욕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애초에 '게임이니까' '기분 좋아지려고 하는 거니까' 달콤함을 바라지 않는 롱런 유저가 이상하다고 볼 수도 있다. 달콤함이 없는, 밍밍한 과몰입을 굳이 유지해야 할까?

그들의 생각이 그렇다.

달콤한 무언가를 계속 먹고 싶기 때문에.
밍밍한 과몰입을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달콤한 초기 관계가 끝나면 금방 헤어지고 다시 사귀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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