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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나만 혹은 너만 진심이었지 [VRChat 보고서 48편]

by 심해잠수부 2024. 3. 1.

배달 매장은 춥거나 비 올 때 잘 된다.
배달 매장의 성수기는 겨울과 여름이다.

홀 매장은 날씨가 좋을 때 잘 된다.
홀 매장의 성수기는 봄과 가을이다.

 

VRC를 열심히 하는 유저는 현실 친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가 많다. VRC 유저가 특이한 건 아니다. 디스코드나 트위터에서 친구와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현생에 친구가 적은 경우가 많다. 취미가 맞지 않아 그럴 수도 있고, '일반인'과 섞이기 어려운 성격일 수도 있다.

VRC 유저는 매장으로 따지자면 배달 매장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 해 어쩔 수 없이 배달을 시켜먹는 타입. 현생에서 VRC처럼 지낼 수 있다면 굳이 VRC를 했겠어? 정말 오래 전부터 해왔던 생각이다. 밖에 나갈 수 있으면 밖에 나가서 사 먹었지 굳이 배달을 시켜먹겠어?

현생 친구 관계에서 만족을 할 수 없으니 VRC를 하는 걸 텐데?

그렇다면 금요일 저녁에도 친구들과 놀아야 하니 일찍 들어오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불금 저녁엔 사람이 적다.

홀 매장에서 알바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홀 매장은 퇴근 시간 직후가 가장 바쁘다. 인기 있는 음식점이야 저녁부터 새벽까지 바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저녁 시간 장사하는 홀 매장은 퇴근 시간 직후가 가장 바쁘다. 약속을 퇴근 직후로 잡으니까.

18시부터 시작된 1차 러시가 21시 즈음엔 끝난다.

약속이 끝나고 얘기 조금 하다 집에 가면 (그리고 샤워하면) 22시 23시 즈음 된다.

(한국 기준) VRC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은 22시 이후다.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금요일에 잡히는 브음주 약속도 대부분 22시부터 잡히는 일이 많다. 금요일 22시 즈음에 시작되어 새벽 2시 3시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가장 사람 많다.

 

사이버 망령이라고 친구가 없는 건 아니다.

'친구'가 적어서 사이버 세계에 빠지는 거지만, 우리는 사이버 세계에서 '친구'를 사귄다. (VRC를 하지 않는) 친구 그룹도 SNS 인연이나 친구의 친구를 타고 디스코드에서 논다. 그런데 걔네가 사이버 망령이라고 해서 디스코드에서만 노는 건 아니다. 아예 현실에서 회비 거두고 건물까지 계약해서 논다. 주말에 정말 많이 만나고 이리저리 대회나 행사에도 놀러 다닌다.

VRC도 똑같다.

친구가 적어 VRC만 할 거 같지만, 정작 VRC 유저가 가장 많이 노는 공간은 디스코드다. 그리고 디스코드에서 모여서 놀기 좋아하는 사람은 주말에 현실에서 진짜 모임을 가지고 같이 노는 일도 정말 많다. 이미 VRC, 디스코드를 통해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기존 학교 친구나 다른 공간에서 만난 다른 친구도 많다.

걔네가 (일반인 기준의) 친구가 없어 보여도, 사이버 공간에서 사귄 친구와 학교 친구처럼 정말 친하게 잘 논다.

VRC든 디스코드든 친구와 노는 거 좋아하는 이가 현실에서의 만남을 기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오늘부로 3월이다.

봄이다.

계절 탄다고 주변에서 과몰입 잔뜩 하기 시작하는 봄이다.

날이 따듯해졌다.

현생에서 이리저리 만나고 같이 뛰어놀기 좋은 시기다. 주말에 만나서 술 마시는 일은 예사고, 나중엔 글램핑을 같이 가니마니 캠핑을 하니마니 놀이동산을 가니마니 꽃놀이를 가니마니 소풍을 가니마니 바다를 가니마니 펜션을 가니마니 하기 딱 좋은 시즌이다.

홀 매장의 성수기 시즌.
배달 매장의 비성수기 시즌.

 

어떤 유저는 VRC에 너무 진심이다.

말 띠껍게 하는 디스코드 친구밖에 없어서, 조금이라도 상냥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많은 VRC에 틀어박혀 있는 유저. 현생 술 약속은 개뿔, 퇴근하면 바로 VRC 켜는 유저. 나는 그러한 유저가 상처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금에 같이 놀고 싶어서 기대 잔뜩 하며 일찍 켰지만 휑한 친구창을 보며 상처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실망하면 얼마나 슬플까.

VRC는 어제나 오늘이나 그 다음 날이나 언제나 평이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가 문제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다. 혼자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은 정말 재밌겠지?' 기대하고,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을 자그마한 상대의 행동에 실망하고 괜히 기분 다운되어 우울한 하루를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갑자기 이딴 게임을 하는 자신을 보며 현타가 와 게임을 접을 고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가지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유저가 VRC를 '서브'로 사용한다.

홀 매장에 갈 수 없는 날 배달 매장에서 치킨을 시켜 먹지, 돼지처럼 매일매일 배달을 시켜 먹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의 식습관이 그렇다. 대부분은 무언가 먹고 싶을 때 홀 매장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가서 먹고 오지, 집에서 돼지 새끼마냥 배달을 자꾸 시켜 먹진 않는다.

배달을 계속 시켜 먹지는 않듯이 VRC에도 너무 매달리면 안 된다.

배달은 비 오는 날, 너무 추운 날, 나가기 정말 귀찮은 날에 시켜 먹어야 한다.

VRC도 그렇다.

현생에서 할 수 있는 건 현생에서 하다, 현생에서 못 할 때 서브로 할 뿐이다.

평일 약속을 잡고 놀긴 힘드니 평일 저녁에 적당히 즐기고, 주말엔 놀 약속 많으니 주말엔 놀 수 있는 거 다 놀고 하는 거고. 주말에 가끔 비 오면 일찍 하고. 디스코드는 우리의 적 하면서 욕할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임이 있다면 지금처럼 에펙 업데이트 됐다고 친구들 에펙할 땐 친구랑 에펙 하다가 에펙 연패해서 짜증 날 때 켜면 된다.

VRC는 배달 매장이다.

다들 홀 매장 못 갈 때 서브로 사용할 뿐이다.

VRC를 메인으로 생각하는 건 정말 VRC에 진심인 소수의 유저들 뿐이다.

쓸데없이 과할 정도로 너무 진심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도 안 알아준다.

너만 혹은 나만 진심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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