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RChat/VRC 보고서

잃어가는 친구 [VRChat 보고서 37편]

by 심해잠수부 2023. 10. 25.

VRChat을 오래 하면 성격은 확실히 변한다. 나는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뉴비 때 알던 친구들도 성격 꽤 많이 변했다. 남자애가 여자애처럼 바뀌었다는 장난 같은 말이 아니라, 정말로 성격이 바뀐다. 같이 오래 지내던 사람은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이 게임에 진심이었다면 그리고 많은 사람과 어울렸다면 성격은 정말로 바뀐다.

글을 오독할 사람이 있을 거 같아 조금 더 덧붙이자면, 사람의 본질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본질, 예를 들어 욕심이 많다거나 성격이 어둡다거나 다른 사람에 관심이 없거나 '본질'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성격이 바뀐다'라는 표현은, 이러한 본질을 타인에게 드러낼 때 타인이 볼 수 있는 '껍데기' 타인이 나를 관찰할 때 보이는 '나'의 모습이 바뀐다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언어'가 그렇다.

어휘 선택, 말하는 방식 등이 바뀐다.

"나는 BTS가 좋아"라고 친구가 말했을 때 (록밴드를 좋아하고 아이돌을 싫어해서) "아이돌을 왜 듣냐?"라고 말할 사람이었다면, 어느 순간 "BTS 좋아하시는구나? 저도 이 곡은 들어봤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아이돌 얘기 못 하겠으면 "BTS 좋아하시는구나? 저는 이 곡 말곤 잘 몰라요. 아이돌 잘 몰라서. 저는 90년대 록 듣거든요."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리거나.

그는 여전히 아이돌을 싫어하지만 그가 친구에게 생각을 말하는 방법이 바뀌었을 뿐이다.

친구가 많고 대인 관계가 원만한 사람이야 "당연한 거잖아."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한 게 맞긴 하다. 학교에서 충분히 훈련할 수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많은 친구와 잘 어울려 지내며 꾸준히 삶의 경험을 쌓아왔으면 말 똑바로 하고 다녔을 테니까.

그런데 겜돌이 남자 중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화는 하면 할수록 느는데, 학교에서 친구 몇 명이랑 어울려 지낸 게 전부인 경우가 많아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게 30대 40대 되어 나이 먹고 애 낳는 사람도 넘쳐난다. 그러니까 자식도 부모에게 똑같이 배우고 부모와 서로 상처 주는 말하며 싸우는 관계가 많은 거고.

어쨌든, 그러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는 일이 많다.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느라' 고민도 많이 하고, 여러 사건·사고를 겪으며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면서 자꾸 노력하니까.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딴사람이 될 정도로 크게 바뀐다는 건 아니다. 겉이 살짝 바뀌는 거다)

"그럼 이 게임 3년하고 아직도 저 지랄하는 저 새끼는 뭐임?" 이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그건 시발 나도 몰라. 그 사람 원래 그거보다 훨씬 더 심했을 수 있잖아. 그리고 세상 모든 일이 생각 없이 하기만 한다고 느나? 우리 부대에서 전투에 60번을 참가하고 살아남은 노새가 2마리 있다. 그 노새는 지금도 여전히 노새다. 자기는 문제없다 생각하면서 자기 잘난 맛에 살면 안 바뀌겠지.

어쨌든, 웬만하면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

 

그래서 친구를 잃는다.

내가 성격이 조금 바뀌어서.

 

내가 예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서 말할 수 있다는 건,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나는 내 언어가 바뀌고 내 언어가 바뀌어 내 성격도 바뀌고 내 성격이 바뀌어 내 환경도 바뀌었는데, 내 친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말한다.

'너 왜 그렇게 말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불만은 속에 쌓여간다. 얘네랑 놀면 왜 이렇게 힘이 들지? 얘는 왜 이렇게 말하지? 점점 내가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내 성격이 바뀌고 이전의 친구와는 멀어진다.

그런데 VRC를 하면 VRC를 하면서 VR 친구 조금 만들어진 채로 성격이 바뀐다. VR 친구 조금 늘어난 거 빼곤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데. 고작 1년 지났을 뿐인데. 기존의 관계도 나름 소중했던 관계인데 타의도 아니고 자의로 점점 밀어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어울릴 때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나름 소중했던 무언가를 내 의지로 잃는 느낌은 이상하다. 나는 여전히 저 친구를 좋아하고 계속 좋아하고 싶은데 마주할 때마다 내 마음도 깎여나가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느낌은. 버리고 싶지 않은데 버릴 것만 같은 이 느낌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