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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음지와 양지의 경계 [VRChat 보고서 72편]

by 심해잠수부 2024. 8. 4.

<VRChat 보고서 52편: 음지, 양지>에서는 너무 모호하게 설명하기도 했고, 나만의 기준만 제시하고 넘어갔다. 이번 글은 그 때 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 글이라고 보면 좋겠다.


VRC에서 정의하기 힘든 요소 중 하나가 '음지'와 '양지'다.

유저마다 기준이 다르고, 기준조차 상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양지지' 막연하게 생각하는 유저도 많고, '나는 음지지' 막연하게 생각하는 유저도 많다. 아무리 봐도 양지인 유저가 자길 음지라고 믿고, 아무리 봐도 음지인 유저가 자길 양지라고 믿는다.

오타쿠 같은 느낌이다.

현실에서 오타쿠라고 하면 기준은 너무나 모호하다.

나는 일반인들에게 100% 오타쿠지만, 내 친구들 사이에선 가짜 또는 니와카로 취급받는다.

나는 내 친구들만큼 서브컬쳐를 좋아하지도 않고, 잘 모르면서 안다는 듯이 말하다 잘 아는 그들에게 욕 먹을 때도 많다. 그들에게 나는 오타쿠가 아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정반대다. 그들은 너 그런 거 좋아하냐며 나를 씹덕인 양 취급한다.

VRC의 음지도 똑같다.

누군가에겐 내가 너무나 양지이고, 누군가에겐 내가 너무나 음지이다.

왜 이러한 시각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이러한 문제는 항상, 정의하지 않고 말을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나는 브감각 이야기를 할 때 브감각이 무엇이냐는 정의부터 시작한다.

뷰 포인트에 무언가 닿거나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일 때 '강하게' 느껴지느냐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감각이 느껴지긴 하나 많지 않은데 MSG 쳐서 반응하는 행동도 브감각이라고 말하는 건지, 아니면 연기에 가까운 수준이어도 브감각이라고 말하는 건지.

정확하게 어떤 브감각을 말하는 건지 정의하지 않고 브감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서로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까, 누군가는 찐브감각만을 원하고, 누군가는 연기에 가까워도 브감각이라고 괜찮다고 그러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먼저 밝힌 뒤 내 생각을 말해야만 오해가 없다.

 

이걸 책상이라고 할 수 있나? 이걸 의자라고 할 수 있나? 트위지도 자동차라고 할 수 있나? 막연하게 '이게 자동차지' 같은 생각을 하고 살다 보면, 기준에 어긋나는 애매모호한 친구가 언제나 나타나서 내게 질문을 던진다. "나도 포함되는 거야?"

일반 사물조차 그럴지언데.

애니 보면 씹덕이지 근데 원나블이나 봤던 애나 귀칼 수준밖에 안 보는 애를 씹덕이라고 볼 수 있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어떤 요소를 씹덕이라고 할 건지 정의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정 무언가의 몬가몬가한 상황을 몬가몬가하다고 정의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의 '야한 그림' 따위의 문제와 같다.

우리는 야한 그림이 뭔지 보면 안다. 노출이 많아도 건전한 그림이 있고, 노출이 없는데도 야한 그림이 있다. 그림쟁이가 얼마나 의도하고 그렸는지에 따라 바뀐다.

그런데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사람이 '노출 이거 이거 이거 짜릅니다' 하면, 애매한 그림을 가지고 와서 "노출 없는데 왜 짜름?" 우기는 사람은 항상 있다. 정의하기 애매한 상황이 있으며, '관리자 재량으로 판단합니다 불만 가지지 마십쇼' 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다.

 

무얼 음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몰입을 하면 음지일까? 브야스를 하면 음지일까? 나는 52편에서 수치심이 없는 자를 음지라고 했지만, 이 글에 대해 공감 못 한 유저도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저렇게 생각하지만, 지금도 내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 자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브야스 하면 음지 아냐?" "과몰입 하면 이미 음지 아냐?" 왜 저런 기준을 제시한 거지?

음지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기준도 다르니 원만하게 합의를 할 수 없다.

 

일단, 음지를 바라보는 시각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두 가지 관점이 서로 항상 부딪치기 때문에 원만하게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음지를 "VRC 안에서" 바라보는 이가 있고, "VRC 바깥에서" 바라보는 이가 있다.

음지를 VRC 안에서 바라보고 말한다면, 과몰입은 현실의 연애와 같고 브야스도 좋아하는 사람과 얼마든 할 수 있는 행동이다. VRC를 하나의 세계로 인정하고 있으니, 현실에서 음지가 아닌 행동은 VRC에서도 모두 양지라고 볼 수 있다. 이미 VRC 내에서 '당연한' 문화이고, 정말 많은 유저가 스스럼없이 대하는 문화니까.

그렇게 바라본다면, 소XX 같은 곳에서 문란하게 놀 법한 사람이나 겨우 음지가 된다.

하지만 자기가 VRC 안에 속해있고 VRC 유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불구하고, 음지의 기준을 VRC 바깥의 일반인의 관점에서 말하는 이도 있다. 많은 유저가 이러한 관점에서 기준을 생각하고 말한다.

VRC에서 놀고 있는 사진이 커뮤니티 등에 념글로 가는 순간, 혹은 관련 만화가 념글로 가는 순간 (VRC를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은 욕을 한다. 역겹다고. 그들은 VRC의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 일반인이고, 어떤 맛인지 상상조차 못 한다. 그들의 기준에서 VRC의 음지를 바라본다면 과몰입부터가 이미 음지 그 자체다.

남자랑 남자가 연인처럼 지내고 있다고? 아무리 남녀 커플이라 해도 랜선 연애일 뿐인데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게임에서 여자 아바타 끼고 목소리 조금 높게 낸다는 이유로 남자랑 야스를 한다고?

발 한 번 내디디면 죄다 음지.

그런데 바깥의 관점으로 음지를 판단하는 유저들도, 정작 게임 내 흔한 요소에 대해서는 양지라고 믿고 싶어 한다. 너무 흔한 행위고 일반적인 행위인데, 게임을 오래 한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가벼워서 문제가 될 만한 요소가 없는데 왜 음지지? 싶으니까.

 

브야스하면 음지, 과몰입 하면 음지, 과몰입 아닌 사람과 하면 음지 등등.

정의하기 쉽지 않다.

내가 어떤 기준으로 음지와 양지를 판단할 지 스스로 정해야 하는데, 기준 없이 느낌적 느낌으로만 음지와 양지를 판단하고 있으니 서로 다른 두 기준이 충돌이 나 이게 음진지 저게 음진지 확실히 말하지 못 한다.

내 생각이 만들어진 관점을 자기가 알아야 하는데, 자기 생각만 알고 자기 생각이 어떤 기준을 두고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으니 서로 다른 출신의 생각이 자꾸만 충돌을 일으킨다.

내가 어떤 관점으로 생각하는 건지 자기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준 없이 마음 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구분할 수가 없다.

 

그리고 만약 타인과 대화할 일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관점과 기준을 먼저 말해주어야 한다. 나만의 기준을 나만 생각하는 채로 대화한다면 자꾸만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며 우기게 될 테니까.

VRC 외부에서 보는 관점으로 말하고 싶은 건지 내부에서 보는 관점으로 말하고 싶은 건지 이해하고, 음지와 양지를 이야기할 때 관점을 먼저 밝히고 설명한다면 생각보다 의견 차이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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