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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우울싸개 [VRChat 보고서 3편]

by 심해잠수부 2023. 4. 14.

평소 외로움 수치가 100중에 30인 사람은, 게임을 하는 동안 외로움 수치가 30 늘어나도 우울해지지 않는다. 100중에 60밖에 되지 않았으니 40이나 여유를 가진다. 하지만 외로움 수치가 80인 사람은 20만 늘어나도 100을 달성하고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VRChat 보고서 1편 <미성년자는 하면 안 되는 게임>에서 말했다시피 VRC는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구조로 만들어졌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많은 유저가 게임을 하다가 알게 모르게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 수치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VRC 자체가 현생에 만족하는 사람이 오래 즐길 만한 게임은 아니다. 

(VRC 바깥의) 내 주변에서도 현실에서 놀 친구가 많은 사람은 VRC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현실에서 얼굴 보지도 못 하고 VR 기기 쓰고 노는 일이 뭐가 재밌냐고 반문하고, 친구 만날 시간도 술 마실 시간도 부족한데 VR할 시간이 어딨냐는 듯 말하는 일이 많았다. 

반면 주말밖에 서울을 못 가는 (지방 친구 없는) 지방 사람이나 해외에 거주해서 한국인과 대화할 일이 적은 사람은 VRC를 접하는 일이 많아 보였다. 상대적으로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적은 계층이 VRC를 많이 접하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 이상하게 높은 공익 비율을 보면 내 생각이 틀린 거 같진 않다. 

어쨌든, 평소 외로움 수치가 80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라도 100을 넘지 않기 때문에 우울로 발전하진 않는다. VRC만 안 하면 멀쩡할 수 있다. 

하지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VRC에 접속한다. 친구과 만족할 정도로 즐겁게 보내면 다행이지만, '만족하지 못 하는 상태'에 빠지면 상태가 악화된다. 20을 초과하는 외로움을 얻는 순간 우울로 발전하기 시작하며 게임을 종료할 때까지, 아니, 외로웠던 기억을 잊을 때까지 우울이 지속된다. 

외로운 환경이 우울한 정신을 만든다. 

우울한 정신은 다른 사람에게 집착하게 만들고, 친구 없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울해지는 현상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다. VRC 특성으로 인해 사람이 이상해지고 있을 뿐이니 이해해줄 수 있다. 다만, 우울해지는 현상이 당연하다고 해서 우울을 드러내는 일도 당연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울을 느껴도 타인에게 감추는 사람이 있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은 우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진 않는다. 오줌 마렵다고 아무 장소에 오줌을 싸진 않는다. 섹스하고 싶다고 많은 사람 앞에서 외치진 않는다. 섹스하고 싶다고 아무나 강간하진 않는다. 하고 싶다고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면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다. 

우울한 감정을 털어놓는 일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해야 한다. 

웬만한 사람은 '내가 우울한 얘기를 하면 듣는 이가 피곤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울하다는 감정을 드러냈을 때 잠시의 위로와 관심이야 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평가도 나빠진다.

좋아하는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 소모되는 감정이고 최대한 소모되지 않게 아껴야 하는 감정이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분을 잃고 싶지 않다면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나이가 어려 관계 경험이 부족해 모를 수도 있다. 나이가 있지만 고등학교도 자퇴하고, 군대도 가지 않고, 회사에서 5명 정도의 팀원과 섞여본 일이 전부라 관계 경험이 부족해 모를 수도 있다. 친구가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친구끼리는 이래도 된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따르고 있을 수도 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느라 친구 따위 관심조차 없을 수 있다. 욕심이 많아 타인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다. 

친구를 소중히 여길 줄 몰라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 

나 힘들다. 나 우울하다. 나 약 먹는다. 친구와 나쁜 일이 있었다. 날 좋아하는 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들 나를 기피한다. 자기 비하가 아니다. 자기실현적 예언이 아니다 너도 보지 않았느냐 내 친구가 나만 오면 말 줄어드는 거. 다들 나를 떠나간다. 네가 내 말을 무시한다고 내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답장 왜 안 해 주냐. 요즘 왜 나에게 찾아오지 않느냐. 요즘 왜 나와 대화하지 않느냐. 나는 돈이 없다. 나는 가난하다. 돈이 없어서 차별받는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내 아바타를 사는 일조차 돈이 없어 힘들었다 등등. 

자신의 마이너스한 감정을 친구에게 간편하게 고백하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보는 사람이 답장할 필요가 없고, 반응할 필요가 없고, 보기 싫으면 오지 마 라고 말하면 그만인 블로그에 쓰면 좋을 텐데(때와 장소를 가려가면서 하면 좋을 텐데), 굳이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친구에게 우울한 생각을 할 때마다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대답을 기다린다. 

친구는 나와 즐거워지려고 붙어있는 걸 텐데, 친구에게 우울한 감정을 꾸준히 배설하면서 친구가 나를 위로해주고 케어해주길 바란다. 내 우울한 감정을 공감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세상에 혼자 있다고 느끼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상대를 괴롭힌다. 백설과 만날 때마다 항상 찌질하게 굴던 오윤아처럼.

<어서오세요, 305호에!> 백설, 오윤아

친구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닐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상태 메시지나 바이오처럼 '나를 소중히 하는 친구만 관심 있게 보는 공간'에 굳이 마이너스한 감정으로 뻘소리를 쓰는 행동도 있다. 

 

타인에게 우울한 감정을 아무렇게나 배설하면 안 된다고 말을 해줘도 듣는 사람은 극소수다. 애초에 말을 해서 들을 사람이었으면 처음부터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린 사람에게 백날 말해봐야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소 귀에 경 읽기고, 나를 소중히 않는 사람에게 백날 말해봐야 나를 소중히 하지 않으니 내 말을 들어줄 리 없다. 

똥을 싸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고 끝까지 똥을 싼다. 짐승처럼. 어느 날 문득 혼자 깨닫기 전까지는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그 때까지는, "내 친구는 결국 나를 떠난다"는 말을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실현해낸다. 나에게 호감을 느꼈던 친구도 사람 질리게 하는 말만 듣다 보면 떠날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케어해달라는 듯이 우울하다고 티를 내면 떠날 수밖에 없다. 

"너도 그럴 줄 알았다"며 자기가 옳았다는 듯 말해봐야 자기만 손해인데도 멈추지 못 한다. 우울한 티를 팍팍 내며 주변 사람을 떠나가게 만든다. VRC에선 이러한 우울싸개를 자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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