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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미성년자는 하면 안 되는 게임 [VRChat 보고서 1편]

by 심해잠수부 2023. 4. 14.

VRC엔 외로움을 느끼는 유저가 많다. 타인에게 집착하는 일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VRC를 접하기 전엔 멀쩡하게 잘 지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친구끼리 하하호호 잘 놀았던 친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현실에선 멀쩡한 사람도 VRC만 하면 이상해질까?

VRC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VRC 자체가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구조다. 

 

우리가 외로움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언제일까? 

[Official Audio] 장기하와 얼굴들 (Kiha & The Faces) - 깊은 밤 전화번호부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데, 아무도 부를 수 없을 때다. 

VRC에선 일상처럼 겪는 상황이다. 

 

우리가 친구와 항상 붙어 지내는 건 아니다. 

삶은 '타인과 놀기 위해 접속한 상태'가 아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항상 온라인인 상태로 살아갈 뿐이다. 로그아웃할 수 없다. 그래서 같이 놀 수 없는 시간도 존재하고, 혼자 보내고 싶은 시간도 존재한다. 

학교 갈 시간도 필요하고, 회사 갈 시간도 필요하다. 게임할 시간도 필요하고, 버튜버 방송 볼 시간도 필요하고, 애니 볼 시간도 필요하다. 마트 갈 시간도 필요하다. 여행 다녀올 시간도 필요하다. 술 마실 시간도 필요하다. 

많은 시간 중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극히 일부다. 삶에서 친구를 찾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외로운 시간에만 타인과 있고 싶다고 느낀다. 

365일 항상 타인과 붙어 지내길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친구에게 매달리는 듯 행동하는 사람은 대부분 정신건강이 위험하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안다. 

 

하지만 VRC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도 이상하게 만든다. 

VRC를 즐기기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질병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마음이 아픈 친구는 누구일까? 

탑신병자로 불리는 탑솔러일까? 정글병자로 불리는 정글러일까? 매일 싸워대는 원딜과 서포터일까? 

게임하고 싶으면 게임할 친구를 모집하거나 혼자서 랭크를 하면 되는데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ㄴㅁㅊㄷ" 상태창에 써두고 친구에게 초대해달라고 말도 안 하며 먼저 초대해주기만 기다리는 유저다. 혹여나 친구가 자기에게 초대를 주지 않고 파티 다 채우고 게임 시작이라도 하면 단톡이나 SNS에 "나만 초대해주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그런데, VRC를 하면 멀쩡하던 사람도 저렇게 된다. 

VRC는 "게임 한 판"이 게임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과 노는 일"이 게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게임에 접속했어도 '게임을 즐기려면' 타인이 필요하다. 

롤에 접속했지만 '친구'를 필요로 하고 친구와의 시간을 갈구하는 마음 아픈 롤 유저처럼, VRC에 접속했어도 VRC를 즐기려면 나와 놀기를 원하는 친구가 있어야만 한다. 

혼자서도 즐길 수 있긴 하다. 댄스를 즐길 수도 있고, VR 월드를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 즐길 거라면 목적 명확한 다른 게임이 훨씬 편하고 즐겁다. 

춤을 춰도 저스트 댄스 게임이 더 좋고, 칼질을 해도 비트 세이버 게임이 더 좋다. 퀄리티 구린 VRC 짝퉁 월드에서 할 이유가 없다. 구체관절인형 오너가 인형 만들기 대신 유니티로 아바타 꾸미는 게 아닌 이상 혼자서 즐길 만한 재미는 없다시피 하다.

VRC는 '다른 유저와의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게임이라고 보는 게 옳다. 

이게 VRC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다. 

 

VRC 유저는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접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VRC에 접속해 온라인을 띄운 순간부터 '항상 남을 필요로 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게임을 10시간 한다면 10시간 동안 '친구'가 필요하고, 20시간 한다면 20시간 동안 친구가 필요하다. 만약 매일 저녁 4시간씩 10일 동안 게임 한다면 매일 저녁 4시간씩 10일 동안 친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친구가 항상 나와 놀아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친구가 야근하느라, 다른 게임하느라 접속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친구가 주황불일 수도 있다. 얘는 PC에 묵언이라 놀고 싶지 않고, 얘는 친해진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어색하고, 내가 원하는 친구는 쟤인데 바쁜지 들어오지 않고, 걔는 더 친한 사람과 노느라 바쁘고.

한 달 전부터 알고 지낸 그룹에선 누군가 유니티하고, 누군가 글 쓰고, 누군가 게임하고, 누군가 빨래하고, 누군가 청소하고 있다. 죄다 PC로 접속해서 잠수만 태우고 있다. 

새로이 사귄 그룹은 재밌지만 30분이 지나자 활기를 잃었다. 대화에도 흐름이 있는지 항상 시끌벅적하게 유지되진 않는다. 30분이 지나자 아무도 얘길 하지 않고, 떠날 사람은 떠나서 그룹에 같이 있는데도 심심하다. 

이런 상황이 10분이라도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가나다순으로 핸드폰 전화번호부 돌려봤더니 7번이나 되돌리고 있는 상황처럼 변한다. 

놀 사람이 없으면 아예 다른 게임을 해야 하는데, 얘와의 즐거운 추억을 잊지 못 해서, 상냥한 쟤와 놀고 싶어서, 걔랑 만나고 싶어서, VR 기기 가격이 아까워서 등 여러 이유로 게임을 그만두지 못 한다. 

그래서 아무 의미 없이 소셜창만 보면서 멍하니 있다가 접속 종료하거나, 새로운 친구라도 사귀어보려고 화본이나 한튜토를 괜히 돌아다니며 놀 사람 없다고 인스턴스 바꿔가다 결국 놀 친구를 만나지 못 하고 로그아웃. 

외로움에 내성이 있는 사람도 이런 상황을 일주일 넘게 반복하면 우울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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