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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모든 음식은 결국 다 상한다 [VRChat 보고서 67편]

by 심해잠수부 2024. 6. 20.

나는 뉴비 때부터 썩어있었다.

VRC 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에서 항상 그래왔다. 야한 냄새 나는 뉴비라고 좋아하는 사람도 며칠 바짝 재밌어할 뿐, 몇 주만 지나도 썩은 냄새 난다고 맛이 없다고 그런다. 쓸데없이 (게임에 관한) 이해력이 좋다느니, 플레이가 너무 얌체처럼 변했다느니 하여튼 뉴비 같지 않아서 재미가 없다고. VRC라고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은 다들 풋풋했다.

VRC는 이상하게도, (뉴비 때는) 시작 시기가 유사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형성하는 일이 많다. 기존 유저는 이미 자기 나름의 플레이스타일이 있고 박혀있는 그룹도 있는 반면,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뉴비는 아직 정착하지 못 한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똑같은 뉴비인) 내 주변 사람은 썩어있는 듯 보여도 다들 풋풋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은?

모두가 끝났지.

아이돌처럼 똥도 안 쌀 거 같이 고고하게 굴던 친구도, 절대 과몰입하지 않을 거 같던 친구도, 그렇게 정신없는 친구들 옆에서도 정신을 제대로 붙잡고 있던 친구도, 브야스 따위 역겹다고 절대 하지 않을 거 같던 친구도 다들 흔한 브붕이가 되어버렸지. 브붕이 같아서 불편하다고 말하던 친구들 모두 판에 박은 듯 똑같은 브붕이가 되어버렸지.

2020년의 버튜버 유행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코로나가 터지고 버튜버가 유행하면서 많은 오타쿠가 버튜버를 보기 시작했다. 그 때 버튜버 역겹다며 안 보던 친구들이 있었다. 걔네들 결국에 버튜버 빠졌다. 시기의 차이였을 뿐, 일본 본토 버튜버 역겹다던 애들 한국 로컬라이징 버튜버에 빠지고, 한국 로컬라이징도 별로라던 애들 이세돌에 빠지고, 이세돌 별로라며 피하던 애들 칸나니 유니니 빠지고, 본토 봤던 애들 중 반 이상은 이제 버튜버 안 보는데 늦게 빠진 걔네는 아직도 트위터에서 주접을 떨고 있더라.

자기 취향에 맞는 버튜버가 없었을 뿐이지 결국에는 다 빠지더라고.

모두가 페이셜 유저가 되듯이 점진적으로 전염된다.

처음에 한 명만 페이셜 하고 있을 때는 굳이 할 필요 없지 않나? 라는 생각. 페이셜을 몇 번 보더니 궁금해서 써보는 애들이 더 생기면 페이셜 유저가 늘어나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고, 나중에는 페이셜 없는 애들은 당연한 듯 움직이는 표정을 보면서 무조건 해야한다 생각하며 기기를 구매한다.

다만, 페이셜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다들 내숭을 떨고 앞에서 티를 잘 내지 않는다는 점.

페이셜은 바꾼 순간부터 표정이 드러나고 주변에 자랑도 많이 하니까 빠르게 전염된다. 돈 때문에 구매를 못 하거나 미루는 경우가 있을 뿐, '나도 사야겠다'라는 생각은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만연해 있다. 주변에서 다들 쓰고 있는 게 눈에 보이니까.

하지만 브붕이스러운 건 그룹의 분위기에 따라 감추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으로 과몰입은 감추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지만) 친구 그룹 사이에서 문제 생길까 봐 혹은 친구들끼리의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과몰입 역겹다' 같은 얘기를 나누기도 하니까. 나도 그런 얘기를 뉴비 때 나눈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수면 위로 '누군가가 하고 있다', '누군가가 해봤다' 등이 알려지며 드러나기 시작하다 보면, '쟤도 하는데 내가 눈치 볼 필요 있나?'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눈치를 점점 안 봐도 되는 듯 분위기가 변한다. 거부감이 점점 옅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대놓고 하기 시작하고, 나중엔 모두가 거부감 없이 표현하고 거부감 없이 드러내며 행동한다.

감출 필요가 없어지니까 억제기가 없어지고, 자기들끼리 오히려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욱 발전한다.

글로벌하게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과학의 속도가 빨라졌듯이, 친구들끼리 드러내며 교류하니까 점점 더 심해진다. 나중에는 일반 유저(?)와 확실히 다른 브붕이 같은 모습에 거부감도 없고 위화감도 없고 전부 드러내며 행동하니 처음의 풋풋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나중엔, 그 때 그 마음으로 되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

나 다시 돌아갈래 <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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