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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창작물

그의 주황불 이야기

by 심해잠수부 2024. 6. 2.

* 제 이야기 아닙니다. 상상 속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항상 주황불이다.

내가 주황불을 하는 이유는 정말 많지만, 나름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룹끼리 섞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룹끼리 섞이면 서로 다른 그룹이 융화되며 에드 오빠를 찾는 키메라처럼 변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통해 A 그룹과 B그룹이 만나면 내가 갈 공간을 둘이나 잃는다. 나는 A 그룹을 A의 맛으로 B 그룹을 B의 맛으로 즐기고 싶다.

내 주변 친구는 내게 말한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쓸데없는 고민이 너무 많아. 네가 그런 행동을 하니 너를 좋아하지 않는 거다. 왜 본인에게 손해인 행동을 하냐." 가끔씩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내게 바라는 건 내가 초록불을 켜두고 고통 받는 건가?

 

나는 친구 눈치를 많이 본다. 남들은 내게 눈치를 안 본다 말하지만 나는 눈치를 많이 본다. 센스가 부족해 남들이 원하는 포인트에서 눈치가 구릴 뿐이지, 나는 쓸데없는 눈치를 많이 본다. 뉴비 때는 정말로 눈치를 많이 봤다. 남이랑 뽀뽀 한 번 하는 일조차 눈치 보면서 했으니까. 아끼는 친구랑 다른 인스턴스 잠시 다녀오는 일조차 눈치보면서 했으니까. 그룹에서 싫어할까봐. 그룹에서 멤버 빼간다는 소리 할까봐. 

내 친구들도 똑같이 눈치를 봤다. 그룹 멤버들에게 그런 이미지로 보이고 싶지 않다느니, 실제로 봐야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이미지를 가져갈 순 없다느니, 멤버들을 외면하고 따로 노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느니.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속박하며 기존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 때 이후로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눈치를 본다. 내 언행이 브얄과 상관없는 디코 그룹에 전해질까봐. 혹은 내 예전 뉴비 때 그룹에 내 다른 이미지가 전해질까봐 등등의 이유로 눈치를 본다. 내가 이미지 따위 신경쓰지 않는 듯 무심한 듯 말하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신경쓰는 요소가 너무나 많아 미칠 지경이다. 아직도 쓸데없는 눈치 속에 파묻혀 산다.

 

주황불 싫다는 사람들 때문에 억지로 초록불도 해봤다. 뭔가 싫다거나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 나는 주변 친구들 눈치를 보니까. 하지만 내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관계에 좋은 영향도 주지 못 했고, 나만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아직도 커뮤니티나 친구들 사이에선 말이 나온다. 맨날 프빗인 사람들 싫다. 사람 가려받는 거 같아서 싫다. 내가 왜 걔네한테 굳이 리퀘까지 보내야 하냐. 나도 주황불을 하면서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요새 다 근몰입하느라 죄다 프빗이네 아우 갈 곳 없어.

나는 아직도 눈치를 본다. 주황불을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초록불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한다. 

 

오래된 친구들과 있다 보면 이상하게 눈치를 많이 본다. '친구'니까 해야 하는 행동을 강요받는 느낌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런 기분을 많이 느끼지 않는다. 왜냐면 이제는 한 그룹에 오래 속해서 지내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룹의 분위기를 즐기려는 마음은 일절 없다. 내 관심사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

친구들은 내게 말한다. 왜 자꾸만 도망가냐고. 여기에서 재밌게 놀면 되는데 왜 자꾸만 (다른 인스턴스로) 도망가냐고.

내가 도망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관심있는 사람은 많은 사람과 노느라 내게 시간을 내어줄 수 없고, 나는 더 이상 그룹의 분위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끼리 모여있어서 재밌는 일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가는 거지. 여기서 뽑아먹을 수 있는 재미는 다 뽑아먹은 거 같아. 여기서 기대할 만한 재미가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아. 

혹여나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아쉽겠지 내가 네게 시간을 더 이상 내어주지 않는 거니까. 그럼 붙잡아서 말을 걸어줘. 그룹의 시간 속에 파묻혀 그룹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라며 내게 손짓하는 게 아니라, 그룹의 시간 바깥으로 나와서 네 시간으로 나를 붙잡아줘.

더 이상 그룹에 연연하지 않는 이유는 그룹 만큼 힘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친구의 눈치를 보며 친구 사이에서의 평판을 신경 쓰며 아등바등 해야 하는 공간이 싫어서. 지금도 내가 발 걸치고 있는 그룹들을 보면 앞에선 인사 하고 대화 잘 해놓고 뒤에선 씹는 일이 꽤나 자주 있지. 뭐가 싫네 저게 싫네 어쩌네 가끔씩은 대놓고 욕설까지 하지. 나도 감정 바닥나면 저렇게 욕 먹을까 걱정 되는 관계가 가득이야.

친구끼리 있다는 이유로 멍하니 동영상 틀어놓고 떠드는 일도 나는 원치 않고, 일자로 거울 앞에 서서 술 마시는 일도 끝도 없이 이야기 하는 일도 나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까. 시끄럽게 왁자지껄 서로 분위기 맞춰가며 애쓰는 일도 너무나 지쳐. 너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둔 분위기 속에 얽매이는 관계 같은 건.

나는 각기 다르게 흐르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내가 잠시 어울릴 만한 공간을 찾고 있어. 팍팍한 현실과 달리 나를 반겨줄 만한 시간을 찾고 있어. 그룹 속에서 유사 사회생활을 하며 밉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욕 먹지 않기 위해 애 쓰는 공간이 아니라, 혹여나 그룹에서 미운 털 박혀 내가 떠나는 순간 뒷담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이 아니라,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찾고 있어.

 

내 구구절절한 주황불 이야기는 자기가 있을 시간을 찾기 위해 자기를 숨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발악하는 사람의 이야기. 누군가는 이해 못 할 내 행동들은 나름대로 치열하게 내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찾고 있는 과정. 그룹에서 가만히 앉아 떠먹여주는 재미나 먹는 사람은 하지 않을 행동.

내가 처음으로 그룹 바깥의 시간을 여행하게 된 이유는 그룹에서 밀려나왔기 때문. 그 때의 나는 새로운 공간이 이렇게나 많고 여기서는 문제될 만한 행동을 저기서는 전혀 문제삼지 않고, 저기서는 인기 없을 행동이 여기서는 엄청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그룹에서 밀려나온 일에 감사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친구들이 눈치 보느라 게임에 질려갈 때, 나는 안타깝다.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자기가 만든 눈치의 성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이. 굳이 자기 자신을 스트레스 받게 만드는 그들에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주황불이 아무리 욕 먹어도 양심없는 행동이라 욕을 먹어도 나에겐 내 살 길을 찾는 과정. 내가 눈치 보기 바빠 내 살길 마저 죽일 수는 없다. 혹여나 내 친구가 누군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내 살 길을 찾기 위해서. 


다시 말하지만, 제 이야기 아닙니다.

인간들 때문에 부얄이 지친 사람들에게 무언의 할 말이 있어서 쓴 글이었는데, 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저도 잘 모루겠네요. 친구가 조금만 즐겁게 게임을 했으면 좋겠어서 방향을 조금 바꿨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 눈치를 조금만 덜 봤으면 재밌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썼는데.

사람 모여있는 곳, 그러니까 자기가 활동하는 공간은 자기가 '선택'한 거잖아요? 내 선택이라는 거죠. 내 친구가 내 거울이듯이, 내 그룹도 거울까진 아니어도 내가 선택한 거란 말이에요. 별자리나 혈액형처럼 랜덤이 아니라, 적어도 MBTI처럼 '내가 선택한 문항의 결과'인 거처럼 내가 선택한 그룹이란 말이에요?

인간 사는 곳이 다 그렇지만, 묘해요. 저는 안 그랬다는 듯이 말하는 건 아니고.

누군가를 욕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정치질이 난무하는 그런 공간이죠. 아니 고작 브얄하는 건데 현실 돈 많은 걸 보고 도킹하는 사람들도 있다니까? 나처럼 묵언이나 데탑 유저 차별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미워하니까 뒷담하고 앞에서는 인사 잘 해놓고 방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씹고 그런 경우들도 많고, 누군가는 나한테 우울을 싸고 누군가는 나에게 피곤할 정도로 집착을 하기도 하고. 

근데 회사처럼 돈 벌려고 억지로 참아가면서 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도 아니고 안 보면 그만인데, 사람들은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자꾸만 봐요. 안 봐도 될 사람을 보죠. 저도 봐요. 저도 저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저를 딱히 싫어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원하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미움받기 싫어서 신경을 쓰기도 하고요. 근데 사실 그런 걸 받아주니까 더 요구하는 걸 거 아니에요? 결국 내 선택에 따른 결과인 거죠 다른 사람들의 나를 향한 행동은.

물론 '그런 거 안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가볍게는 말 못 해요.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나는 되게 쉽게 선택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매우 힘든 과정이겠죠. 그래서 내 선택을 남들이 쉽게 할 수 있다고는 못 해요. 그리고 그들의 그런 행동이 그런 여지를 남겨두는 행동이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누군가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선택인 거죠 그 친구가 내 친구인 이유는. 그 공간이 내 공간인 이유도 내 선택인 거고. 난 잘 모르겠어요. 어떠한 커뮤니티가 되게 짜증날 수 있어요. 친구 그룹 같은 커뮤니티나 디코 서버 같은 커뮤니티요. 거기서 무언가가 싫다면 얼른 거기서 나와서 다른 곳 찾아가는 게 옳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걸 버리지 못 해서 끙끙대는 내 모습도 내 선택인 거고. 

그러니까 네 선택이니 책임져라 라는 게 아니고

그 선택 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무언가가 많다는 게 제가 하고픈 얘기라는 거에요. 초록불을 켜지 않고 주황불만 해놓고 이리저리 인스턴스 옮겨 다니며 적당히 노는 사람이나, 과몰입 하느라 바빠 주황불 하는 사람이나 자기에게 좋을 무언가를 선택하고 재밌으려고 하는 거니까.

주황불하는 저 사람도 친구들이 주황불 좆같다고 욕을 안 했겠어요? 안 씹혔겠어요? 근데도 저러고 살아요 그게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아니까. 친구들도 온갖 이유로 뭐라뭐라 했을 텐데. 리퀘나 인바도 거절 많이 하고 존나 이기적으로 흔히 커뮤니티에서 존나 싫어하는 주황불 매니아인 걸 아는데도.

내가 재밌지 않고 괴롭다면 내가 선택을 잘못한 거죠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 수 있는데. 실제로 정말 많을 텐데 여러 선택지가. 다른 사람 눈치보느라 친구 눈치 보느라 주황불 못 하고 자기 괴롭히는 사람 외면 못 하고 일일이 다 받아주는 선택을 포기하고, 조금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을 텐데.

자기가 보는 눈치가 자기 목을 죄는 거죠.

지금까지 보고서를 통해 다 했던 얘기들 또 하는 거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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