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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모두가 스트레스 받는 세계의 완성 [VRChat 보고서 45편]

by 심해잠수부 2024. 2. 1.

사람에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룹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당사자에게 문제를 말하고 이러한 요소를 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원만한 합의를 끌어내거나, 해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거기서 관계를 끝내는 일(혹은 새로운 장소로 옮기는 일). 간단하다.

대부분은 친구니까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조금만 고쳐줬으면 좋겠다고 최대한 좋게 말하려 하고, 상대방도 말하는 이를 싫어하지 않으니까 최대한 고치려고 하는 방향성에서 서로 노력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해야만"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할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나는 원래 할 말은 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조금 불편하거나 짜증 나는 요소가 있으면 당사자에게 바로 말하는 스타일. 아니 자꾸 친구들 다 있는 방에서 혼자 노래 크게 흥얼거리지 마세요. 아니 동영상 플레이어 순서 있는데 왜 자꾸 주소를 직접 넣으시나요(왜 자기 영상 먼저 트나요). 아니 자꾸 그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 안 하면 안 되나요. 거울 그만 가리세요 다들 안 좋아하는데. 여목 기분 나쁘기만 한데 여목 안 내면 안 되나요.

그리고 친구들은 항상 나중에 내게 말하곤 했다.

"아 저러는 거 진짜 싫어. 저도 그래서 그 분 마이크 5%로 줄여놨었어요."
"아니, 근데 왜 님은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었나요?"
"말해서 뭐 해요 그냥 5%로 줄여두면 돼죠."
"......."

나는 그 때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몰랐다. 나랑 똑같은 불만 있으면서 왜 말을 안 하지? 왜 항상 나만 말하고 있는 걸까. 내가 테이크원인가? 왜 불편한 역 맡는 건 나만? 다들 그런 얘기 하는 걸 '피곤'하게 여기는구나 그래서 말을 안 하는 거구나 그렇게 '착각'했다.

한참 지나서 나중에 깨달았다.

피곤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다른 사람에게 불만 얘기하면 나도 이상한 사람 되는구나.

다들 속으로 병신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멀리할 뿐이지, 상대가 문제를 인지하고 바뀔 수 있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타인을 지적하는 행위에 악의가 없다고 해도, 상대방과 상대방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지적한 사람을 불편하게 바라본다. '좋게 좋게 지내는 거지 뭘 그렇게까지 말을 해' 자기도 스트레스 받고 있으면서 그렇게 말을 하는 유저가 많다.

총대를 멘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누군가를 지적하는 행위를 많은 유저가 '무덤 파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누군가를 지적하려면 무덤 두 개를 파라. 두 개의 무덤 중 하나는 내 무덤이다. 누군가를 맥이려고 하는 지적이 아니어도, 정말로 상대를 위해 하는 지적이어도 상관없다. 많은 유저의 인식이 그렇기 때문에.

 

어떤 그룹은 좋은 말만 하고 절대 다른 사람의 욕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자기들끼리 뒤에서 험담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자주 하면서도 정작 당사자 앞에선 자기네가 가진 불만을 얘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정말 웬만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항상 좋은 얘기 좋은 말. 가식이라고 오해할 정도의 얘기들.

처음엔 진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게 미래의 내 모습이었다.

 

무언가를 지적하는 일로 누군가가 상처를 입는다면 굳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를 지적하는 일로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면 굳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 굳이 그 사람이 듣지도 않을 말을 피드백이랍시고 할 이유도 없고, 말해준다고 알 사람이었으면 내가 지적해 주기 전에 그런 행동 안 했겠지.

다른 유저에게 싫은 모습이 보인다면 상대의 싫은 모습을 고쳐주려고 하기보다 멀리하면 그만이다.

나는 모른 채로 헤매는 모습을 너무 비참하다 생각해서 웬만하면 당사자가 알 수 있게 잘 설명해 주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도 친구가 내 문제를 알려주길 바랐고. 내가 게임에서 쓰는 닉네임의 어원도 '결함'에서 비롯된 거니까. 결함은 넬의 Separation Anxiety 곡 가사에서 생각한 거고. 엄청 어릴 때부터 생각해 왔다.

고장나 버렸단 걸 알아요. 그래도 날 포기해 버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고쳐질 수만 있다면, 사실 난 아주 아름다울 테니.

그래서 항상 문제가 있으면 그게 나쁜 의도든 좋은 의도든 표현을 하려고 하면서 살아왔다.

NELL - Separation Anxiety

그래서 게임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면 최대한 잘 설명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내게 독이었다.

그러한 말을 들은 이는 오히려 나에게 불만을 가지고 나를 싫어할 뿐이었다. 내 의도를 오해하는 일이 많았다. 내 말을 이해하지도 못 하고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 착각하곤 했다. 내가 너를 싫어해서 이런 말을 아니라고 말해봐야 자기를 싫어해서 그런다고 믿고 있는 이는 내가 아무리 설명해 봐야 듣지 않았다.

 

나는 현실에서 고민할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래 만난 친구는 소수고, 친구가 그리 많지도 않고, 친구가 있다해도 나와 성격 유사한 인터넷 친구가 더 많고, 일터에선 위계가 있으니 불만을 말하든 불만을 듣든 일방통행일 뿐이라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오래 본 친구에게 "제발 내가 그거 싫어하니까 제발 하지 마라" 말하면 그만이었고, 말을 듣지 않으면 지랄해서 어떻게든 안 하게 만들면 됐다. 내가 그렇게까지 싫다 말하는데 내가 싫다고 하는 행동을 하면 안 보면 그만이었다. 내가 이렇게 싫어하는데도 자꾸만 하는 건 나에 대한 존중이 없는 거지.

내가 여러 친구와 자꾸만 새로이 교류하면서 지내는 게 아니니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나와 친해지는 사람은 내 기준에서 '불편한 요소'가 많이 느껴지지 않으면 내가 얘기를 자주 시도하면서 친해지는 거였으니까. 프플방처럼 넘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싫은 사람은 롤 5인 파티 구성할 때도 제외하면 그만이고, 에펙할 때도 쟤랑은 안 하면 그만이고, 친구 있는 서버에서 마크 서버 열린 거 아닌 이상 마주칠 일이 없고 마주친다 해도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니까. 마크, 아크, 팰 월드 같은 류의 게임에서나 부딪치지 다른 게임에선 그리 자주 부딪칠 일이 없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마크에서 자주 싸우나 보다)

그래서인지 나도 마크 처음 할 때 재미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었다.

같은 이유로 SNS 한창 할 때도 많이 예민했던 거 같다. SNS에선 친구가 자기 친구의 친구가 쓰는 꼴 보기 싫은 이야기를 자주 가져왔으니까. 나는 '너'의 얘기가 좋은 거고 너의 친구는 존나 싫은데 너의 친구가 한 말에 반응하는 내용, 너의 친구가 말한 내용을 가져오면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그러한 요소가 VRC에서 친구의 친구까지 끌어들여 같이 게임하는 모습과 유사하지 않나 싶다.

원하는 사람 외의 사람까지 받아들이고, 원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지내야 하니까 발생하는 불만과 불만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성격 맞는 친구랑만 지낼 땐 고민도 하지도 않을 요소인데, (좋아하지 않고, 성격이 맞지도 않는) 친구의 친구를 자꾸만 만나고 보기 싫은 사람도 자꾸만 만나야 하는 공간이니까. 내가 꼴 보기 싫어하는 모습을 자꾸만 드러내는 사람도 자꾸만 봐야 하는 공간이니까.

VRC도 처음엔 좁은 인간관계에만 익숙해 타인에게 지적을 쉽게 잘 하다가도

다른 사람의 '이상한 모습'을 그러려니 하며 적응하는 방향으로 사람이 바뀌어 간다. 나중에는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한다 해도 지적하기보다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누구나 이상한 면이 있으니까. 굳이 내 무덤을 내가 팔 일을 만들 이유는 없으니까.

많은 유저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어떠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어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모두가 스트레스 받는, 모두가 불행한 세계가 완성된다.

 

말을 길게 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무도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가 표현하는 순간 내가 책임을 짊어지게 되니까 다들 책임을 기피할 뿐이다.

지적을 해주고 감사를 받는다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모두가 지적했겠지. 그런데 지적하는 일이 자기에게 독이 된다는 걸 아니까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서 자연스레 터지기 전까지, 큰 사건 하나 터지기 전까지, 명분이 생기기 전까지 어떤 누구도 행동하지 않는다.

어떠한 '문제' 혹은 '문제 해결'보다 내가 합리적으로 보일 명분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관계에, 어떠한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현에 명분이 있을 리가.

그저 개인 기호인 경우도 많으니까.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할 말을 한다 해도 '잘했다'는 소리보다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따위의 불편한 소리만 들을 테니까. '좋게 좋게 잘 지내면 되지' 소리나 들을 게 뻔하니까. 지적 당한 사람은 내게 악감정을 가질 거고. 그 일은 안 그런다고 해도 굳이 내가 뚜껑을 열어 그런 반응이 나오는지 나오지 않는지 확인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굳이 내가 시험해 볼 필요는 없으니까.

누군가 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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