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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더 이상 친삭을 하지 않는 이유 [VRChat 보고서 46편]

by 심해잠수부 2024. 2. 2.

SNS 팔로를 휴대전화 주소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 하겠지만, 나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관계가 된 사람이어도 더 이상 재밌는 게시물을 업로드 하지 않는다면/스트레스 받는 게시물을 업로드 하면 팔로잉을 끊는 타입이었다. 내가 항상 '팔로잉/팔로워에 의미 부여 안 합니다'라고 말해도, 내 행동을 보고 섭섭해하며 나를 미워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항상 있었다.

게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VRC가 아니라 원래 하던 게임에서부터 그랬다.

자주 보지 않는 유저라면 친구목록에 남겨두지 않았다. 서로 잘 만나지 않게 되거나, 서로 불편한 일이 생겨 껄끄러워 만나지 않는다면 친구목록도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까. 자주 만나기 위해 친구목록에 두는 건데, 만나지도 않는 친구가 친구창에 있으면 괜히 이상한 기분만 드는데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내 가치관이 그랬기 때문에, VRC에서도 그랬다.

뉴비 때 알게 된 친구를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어 친삭했고, 삭제했는데 다시 친추를 보내길래 거절했다. 관심 있던 사람이었어도 친해지기 힘들다 판단하면 언제든 친삭했다.

나중엔 친삭하는 일이 은근히 눈치가 보이길래 애초에 처음부터 친추를 잘 받지 않았다. 나중에 서로 성향이 달라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친삭하면 괜히 껄끄러워지니까. 처음부터 친구의 친구를 프플방에서 여러 번 몇 주간 통해 검증하고 검증한 뒤에만 친추 받아야지. 그래야 친삭할 일이 없을 테니까.

 

내가 친삭을 하는 이유는 딱히 그가 필요 없어져서도 아니었고, 그가 싫어서도 아니었다.

'만나지도 않을 사람을 굳이 친구창에 두고 남겨둘 필요가 있나?' 이거 뿐이었다. 거슬리니까. 만나지도 않는 유저인데 내 친구창에 있을 필요가 있나? 서로 편하게 만나려고 편의성 때문에 친추하는 건데 남겨둘 필요가 있나?

당연히 싫어하게 되어 만나지 않을 사람이면 친삭하는 건 당연한 거고, 자꾸만 게임 상태 메시지에 똥글 우울글 쓰는 유저도 트위터에 우울글 싸는 사람이랑 유사하니까 언팔(친삭)하는 건 당연한 거고.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나는 현실에서도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게 된 친구도 주소록에서 지우곤 했으니까 게임이라고 다를까.

나는 연락도 하지 않는 사람을 내 주소록이나 내 친구창에 남겨두는 일을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들이 버릴 만한 물건 절대 안 버리고 구석에 처박아 두고 쓰지도 않으면서 계속 보관만 하면서 자리 낭비하는 일처럼. 구질구질한 행동.

어차피 다시 쓸 일 없을 텐데 버리면 되지.

엮일 일 없을 텐데, 몇 년에 연락 한 번 하는 일 때매 굳이 남겨둘 필요가 있나.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SNS는 '한 번 재미없는 사람은 웬만해서 끝까지 재미없기 때문에' 언팔 후 다시 팔로우 할 일이 별로 없다. 게임은 오래 만나지 않기 시작하는 사람은 다시 만날 일도 없고 아쉬울 일도 없다. 휴대전화 주소록은 내가 삭제해도 상대방이 내게 연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 영향도 없다.

그래서 그 때까진 괜찮았는데.

그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때까진 '삭제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반면, 그 때부터 '삭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내가 먼저 친삭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내게 나쁜 행동을 한다면 친삭을 하겠지만).

 

계기는 단순했다.

VRC에서는 생각보다 친삭한 사람을 마주칠 일이 많았다.

나는 그 사람이 싫어서 친삭한 건 아니기 때문에 친삭을 했어도 방굽다 빵굽다 하면서 인사를 건네지만, 상대방 입장에선 '이 새끼 뭐지? 싸이코패슨가?' 싶을 수도 있다. 어차피 어디선가 자주 마주치며 얘기하면서 지낼 텐데 괜히 친삭해서 불편해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친삭 당하면 아예 블락으로 보답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기가 띠껍게 말하고 자기가 비아냥대듯이 말해놓고 자기가 연락 쌩까길래 '얘 나랑 만날 생각이 없나보네' 싶어 친삭을 했는데도 블락으로 보답하는 경우. 그런 비뚤어진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그렇게 뒤틀린 유저를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생각하고.

그리고 괜히 아쉬운 경우도 많았다.

미소녀 아바타 때문인지 어떠한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시 친구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내가 만든 월드엔 다시 친구하고 싶은 사람 한 명의 사진이 있다. 그 땐 이 사람과 도저히 친해질 방법이 없는 거 같아 친삭했지만, 친삭을 하면 '재도전'의 기회가 없다는 걸 그 때는 몰랐다. 친삭을 하고 나면 '다시' 친추를 거는 일이 정말로 모양새가 이상하다. 그래서 다시 친추를 걸고 싶어도 쉽게 친추를 걸 수가 없다. 안 받을 확률도 매우 높고. 누가 한 번 친삭한 사람과 다시 친구를 할까?

친구창에 1년 동안 남겨두다가 갑자기 기회가 생겨 친해질 수도 있는데. 1년 동안 서로 관심 가지지 않던 사이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문득 어떠한 계기로 친해지는 경우도 많은데 굳이 만나지 않는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삭제할 이유가 없다.

만약 정말로 사이가 나빠졌다고 해도, 굳이 내 손으로 쳐낼 필요는 없다.

친구창에 남겨두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도 정말 많고, 자주 마주치다 보면 다시 괜찮아지는 경우도 정말 많다. 그런데 조금 사이가 틀어지고 있다고 바로 친삭을 해버리면 자기가 쐐기를 박는 꼴이 되어버린다. 애초에 서로가 서로를 시선 바깥으로 치우게 되기 때문에 재도전의 기회가 영영 생기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적당히 서로 관심 안 쓰듯이 된다고 해도 친구창 자리 한 칸 낭비하는 일이 딱히 돈이 드는 일도 아닌데. 서로 무관심할 땐 무관심하게 지내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관심이 가면 감정이 살아나면 다시 잘 놀면 그만인데. 굳이 내 손으로 선을 긋고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을까.

 

내 예전 성향에 공감하는 사람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그 때의 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겠지만, 그래도 많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다른 공간에선 그렇게 하더라도 크게 티가 나는 경우가 드문데, 이 게임은 사람과 어울리려고 하는 게임이다 보니 '내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아마 현실에서도 큰 차이가 없을 거다. 단지 내 현실 인간관계가 좁다 보니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 드물어 현실에서 느끼지 못 했던 거지, 아마 현실에서도 사람과 많이 어울린다면 어떠한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석한다면 유사한 일은 충분히 많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중딩 때 인싸였던 반장 친구는 아직도 내 폰번호를 지우지 않고 있더라. 걔는 어릴 때부터 생각하는 게 똑똑했는데 걔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내가 작년 여름이 되어서야 깨달은 걸 중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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