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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디스코드 [VRChat 보고서 16편]

by 심해잠수부 2023. 4. 18.

VRC에서 친구를 사귀면, 디스코드 교환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VRC 뿐만 아니라, 어떤 게임을 하든 그렇다. 어떤 동호회에 가든, 어느 공간에서든 친해진 사람과 연락처를 교환한다. VRC라고 다르지 않다. VRC에서도 연락처 개념으로 디스코드를 교환한다. 그리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친한 그룹이 형성되면 단톡도 자연스레 만들어지듯이, VRC에서도 디스코드 서버로 이어진다. 

시기의 차이일 뿐, 어느 그룹이든 언젠가는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친한 사람과 더 찐하게 놀고 싶으니까.

 


 

디스코드 서버를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

나는, "VR과 디스코드의 차이를 느끼지 못 할 때" 디스코드 서버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VR과 디스코드의 차이를 느끼지 못 할 때가 언제일까? 

"하나의 그룹에 오랫동안 박혀있어서" 더 이상 VR을 쓰고 보는 아바타의 매력을 느끼지 못 할 때. 누군가가 우간다를 쓰든, 퍼리를 쓰든, 이상한 개그용 아바타를 사용하든, 친구가 어떤 아바타를 사용하든 친구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지 않을 때.

그 때, 굳이 힘들게 VR을 쓰면서 볼 필요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니라, 누가 됐든 나랑 놀아주기만 하면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천체 관측 동호회에서 별을 관측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길까? '춤은 구실일 뿐 이성을 찾는 사람'도 댄스 동호회에서 춤을 추는 일을 중요하게 여길까? 

친하니까 더 자주 보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겠지만, 'VR을 사용하며 보는 일이 디스코드에서 텍스트나 음성으로 보는 일보다 훨씬 행복하다면' 굳이 디스코드에서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다. VRC를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하지만 들어와서 하는 일이 매일 보던 사람과 거울 앞에서 잡담하는 일이 전부라면, 그리고 매일 만나는 사람만 만나며 '예쁜 아바타'의 장점에 둔감해진다면, 그 때는 디스코드 보이스로 하든 디스코드 텍스트로 하든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디스코드가 더 재밌을 수도 있다. VR에서는 디스코드 켜고 에펙이나 롤을 할 수 없지만, 디스코드에선 할 수 있으니까. 디스코드는 바깥에서도 할 수 있고, 사진을 통한 일상 공유도 쉬우니까.

그렇기 때문에, 디스코드는 자주 노는 그룹에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을 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아바타가 주는 매력에서 게임의 재미를 느끼는 사람에겐 '아바타가 보이지 않는 디스코드'는 메신저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아니니까. 디스코드가 있다고 해도 VRC의 장점을 디스코드가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디스코드의 문제점

디스코드를 사용할 시기가 됐다는 건 VRC에서 굳이 볼 필요가 없어진 상태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따질 수 있겠지만, 어떤 과정이었든 간에 'VRC에서 안 봐도 되는' 상태다. VRC를 더 재밌기 즐기기 위해, 친구와 더 끈끈하게 놀기 위해 디스코드 서버를 만들었어도, 서버가 생기는 순간 VRC에서만 볼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마음이 강해진다.

다른 게임을 해도 괜찮지 않나? 

'같이' 재밌게 놀기만 하면 괜찮은데, VRC가 중요한가?

다른 게임을 즐기는 일이 늘어나고, 디스코드 음성 채널에 박혀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디스코드 서버는,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사람이 VRC에 접속하지 않을 구실을 제공하게 된다. 


같이 게임하고 같은 음성 채널에 있는 사람끼리는 더욱 더 친해지겠지만, 속하지 않는 사람이나 같이 게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멀어진다.

친밀도 인플레이션 속에 살아가는 일과 같다.

코인으로 부자 되는 시절에 코인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듯이, 같이 하는 롤 5인팟에 낀 사람과 끼지 않은 사람의 사이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은 한정적이니까.

내가 아무리 친한 사람이었어도, 친구에게 새로운 더 친한 사람이 생긴다면 나를 이전보다는 소홀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나랑 더 친했던 사람이어도, 다른 친구와 같이 게임을 하며 어울리다 보면 점점 게임 같이 하는 다른 친구에게 친근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도 같이 에펙하는 사람과 할 얘기가 많아서, 같이 게임하는 사이인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이 간다. 


어떤 게임을 같이 하듯이, VRC도 '같이' 하게 된다. 

예전에 알게 됐던 사람 중,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파란 메이드복을 입고 다니는 분이었는데, 이 분은 접속을 자주 하지 않았다. 게임을 많이 하지 않는 분인가보다 생각했는데, 게임에 접속할 때는 '항상' 친구 무리와 같이 계셨다.

VRC에 접속하지도 않는데, 접속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어떻게 같은 날 같이 취해서 같은 월드에서 취중 대화하고 있는 거지? 뭔가가 있구나?

친해지고 싶어도 친구 무리랑 같은 시간에 같이 접속하고, 그 외 시간엔 과몰입이랑 지내는지 프라이빗에만 박혀 있어 도저히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친해지기 힘들겠다 자주 마주칠 일 없겠다 싶어서 얼마 안 가 언프(친삭)를 했었다. 

'디스코드가 없어도' VRC 홈페이지에서 누가 로그인했는지 보면서 접속하는 유저도 많기 때문에 디스코드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디스코드 서버가 생기기 전엔 '눈치 게임'이었다면, 디스코드 서버가 생긴 후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그룹 디스코드 서버의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룹'의 형태는 같은 모양을 유지하지 않는다.

그룹 디스코드 서버를 만들 때는 이랬던 사람도 점점 변하고, 서로를 향한 마음도 변하고, 서로의 관계도 변하고, 그룹의 형태도 변한다.

미소녀 아바타 쓰던 친구가 퍼리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미소녀 아바타 쓰던 친구가 이케맨이 되기도 하고, 풀트로 들어오던 유저가 PC 유저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반트가 풀트가 되어 저댄 매니아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브야스의 ㅂ도 말 못 하던 친구가 걸레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과몰입 절대 안 한다면서 과몰입했다가 깨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과몰입이랑 노느라 바빠져 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마음이 사그라드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다양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은 변하고, 사람의 관계도 변한다.

반 년 가까이 지난 풍경이 같은 형태를 유지할 리가 없다. 

만들 때는 '그 때의 그룹'이 영원하리라 기대하며 만든 건데, 그 때의 그룹은 반 년도 채 가지 못 한다. 일부분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처음의 모습과 비교하면 너무나 달라져 버렸다.

그럼 '그룹' 디스코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그룹에 오지도 않는 사람을 그룹 서버에 남겨두면 이 디스코드 서버는 그 그룹의 서버인가? 만약 이 그룹에 오지도 않는 사람을 그룹 서버에 남겨둔다면, 누구나 다 받아도 괜찮은 거 아닌가? 

서버를 처음 만들 때부터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디스코드 서버를 만들 때, 누구를 데려오고 누구를 데려오지 않는가?

나는 처음부터 '기준'을 명확하게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들어오고 싶은 사람이면 우리 그룹 사람이 아니어도 들어와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그룹 디스코드인데 왜 아무나 다 받아야 해? '저런 사람'도 들어온다고 할 텐데 그럴 거면 할 필요가 있어? 나 저런 사람 들어오면 안 할 건데." 같은 의견도 있었다.

그럼 '저런 사람'이라서 데려오지 않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너는 못 받아줘'라고 거절할 수 있나? 자주 방에서 같이 노는 사람인데, 어떻게 거절하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들어오려고 할 때 방어할 수 있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내보낼 때 방패로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을 어떻게 정하지?

'누구를 데려오고 누구를 데려오지 않을 건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만들었던 서버는 이상해졌다.

누구는 누가 안 왔으면 좋겠다 그러고, 추후 문제 생기면 회의할 수 있게 대장 같은 사람 몇 명에게 권한 줬더니 누구는 불편하다고 지랄하고, 누구는 이런 디코 없었으면 좋겠다고 시작부터 불만 가지더니 정작 마작하려고 만든 서버에선 자기 좋아하는 사람 있으니까 (마작 서버에서 VRC 얘기를) 그 누구보다 디코 열심히 하고 에잇씨팔.

안 한다 안 해 씨팔.

아 그래 그러면 그냥 우리끼리 단톡처럼 몇 명만 대충 쓰고 넘어가자 하고 치웠다.

 

그 후,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서버를 다시 만들었다.

이번엔 잘 해보자. '그룹' 서버라고 하지 말고, '내 서버'라고 하자. 이름만 그룹 서버고 공지에서부터 내 서버라고 명시해 놓았으니까 내 마음대로 하면 되겠지. 공지도 시작부터 내가 알아서 결정한다고 써놨으니 괜찮겠지.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기준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애매한 기준'이라면 내가 총대 메고 밀어붙이면 되겠지.

아니었다.

애매한 기준일 때 내 단독 결정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 그룹 멤버는 나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 나를 '공격'한다. 저 사람이 나름대로 이런 기준이 있으니까 결정한 거니까 그러한 부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고, 정부에서 정책 하나 내면 온갖 불만 다 쏟아내는 시민처럼 나를 대한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거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는 건데, 우리나라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판결하다보니 나쁜 사람에게 유리하게 판결할 때도 있다는 부분을 많은 시민은 이해하지 못 한다.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애매하게 내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행동은 '내 이미지' 깎이는 일 감수하고 총대 메고 결정한 건데, "자기 이미지 깎이는 일인데 저렇게까지 행동했으면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주지 않는다. "저 새끼는 사람 마음대로 내쫓는 개새끼 나랑 친한 새끼 내쫓는 개새끼 불쌍한 애 내쫓는 개새끼" 그 이상 그 이하도 안 된다.

누구든 "조금이라도 친한 사람"을 내보내면 반발한다.
누구든 "조금이라도 친한 사람"을 받아주지 않으면 반발한다.
누구든 "조금이라도 짜증 나는 사람"을 내보내고 싶어 한다.

"쟤는 내보냈는데 얘는 왜 안 내보내?" 
"얘는 되는데 왜 쟤는 못 데려와?"
"쟤는 되는데 제 친구 얘는 안 돼요? 기준이 대체 뭔데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기준이 있든 없든 어떻게든 문제를 제기한다. 기준이 있을 땐 "이건 되는데 저건 왜 안 되죠?" 하면서 어떻게든 비스무리한 부분 트집 잡아서 비난하려고 하고, 기준이 없으면 없는 대로 불만을 토로한다. 

그래서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다수의 생각이 하나로 통일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친하면 데려오고 싶어 하고, 조금이라도 짜증나면 내보내고 싶어 한다. 어떠한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거지 대충 지내면 안 되냐? 유도리 몰라 유도리? 그렇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알아서 쳐내" 같은 상황을 바란다.

기준을 세울 수도 없을 뿐더러, 다수가 원하는 방향이 통일되지도 않는다.

어떠한 행동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여기도 봐주고 저기도 봐주다 보면, 결국 아무도 거절하지 못 하는 오픈된 그룹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원했던 서버의 모습이, 이게 맞나?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군가는 불만을 가진다.

때문에, 그룹 서버를 만드는 사람은 리더의 품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멤버 간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고, 불만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어차피 어떠한 결정을 하든 불만은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정받는 리더가 하는 결정엔' 웬만하면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인재가 어느 그룹에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유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서버가 잘 유지될 수 있게 노력하는 구성원도 많지 않다.

결혼도 서로가 노력하면서 유지해야만 하는데, "무능한" 사람이 서버 하나 만든다고 잘 굴러갈 리도 없고, 서로가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데 서버가 즐거운 공간으로 유지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룹 디스코드를 그만두었다.

더 이상 VRC 관련 디스코드 서버에 들어갈 마음도 없다. 특정한 다른 게임 같이 하고 싶을 때야 보이스 하려고 임시로 파서 사용하겠지만, 이제 더 이상 어떠한 '소속'을 가진 그룹 디스코드 서버엔 관심 없다. 

나는, 웬만하면 디스코드 서버를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VRC를 좋아하고 재밌게 즐기고 싶다면 말이다. VRC에 미련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말이다. 

디스코드 서버에서 단톡처럼 연락하면서 '관계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이해한다. 인스턴스에 조인 한 번도 안 하면서 친한 척 하기에 디스코드 서버만 한 게 없다.

하지만 '게임에서조차 애틋하지 않은데' 디스코드 서버를 단톡처럼 사용하며 갤기장 쓰듯이 일기 쓰면서 연락 유지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어차피 친한 멤버끼리는 서버 없이도 개인 연락 잘 하며 지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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