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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필요한 사람이 되는 방법 [VRChat 보고서 34편]

by 심해잠수부 2023. 9. 12.

"그의 친구들은 왜 항상 그를 필요로 할까?"

왜 다들 그와 같이 있고 싶어 할까?
왜 그에게 못 달라붙어 안달일까?

'인기'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목소리가 좋아서', '성격이 좋아서'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어휘 선택이 천박하지 않으니까, 말투가 상냥하니까, 목소리가 좋으니까 다들 좋아하는 거겠지. 그래서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거겠지. 나처럼 TOXIC 하게(인성씹창난 사람처럼) 얘기하지도 않으니까 다들 좋아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완벽하게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쉽다.

나도 할 수 있고, 너도 할 수 있고, 모두가 조금만 바뀌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상대에게 특정한 스택을 어느 수준까지 쌓으면 상대는 나를 찾는다.

게임과 같다. 게임에서 몇 중첩 이상 스택을 쌓으면 계속 보너스 데미지가 들어가는 일처럼, 상대에게 어느 수준까지 스택을 쌓으면 상대는 나를 필요로 한다. 다만, 상대가 필요로 할 때 내가 옆에 있어 주지 않으면 천천히 스택이 떨어지기도 하고, 롤의 럼블처럼 과열 상태가 임계점을 넘어가면 (상대가 필요로 하는데 내가 어울려 주지 않으면) 초기화되기도 한다.

근데, '특정한 스택'은 어떻게 쌓을 수 있는 걸까?

 

듣기 좋은 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굳이 하고 싶은 말 생각나는 대로 다 하고,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하는데 재미없다는 이유로 살짝 옆으로 치워두고 모른 체하고, 상대가 나를 찾아왔는데도 좋아하는 친구랑 대화하는 일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하고픈 말 많다고 자기 말만 미친 듯이 늘어놓고, 자기 기분 안 좋다고 기분 안 좋은 티 내고, 자기 오늘 피곤하다고 내버려 두라는 식으로 말하고, 상대는 하고 싶은 맘도 없는데 자기 발정 났다고 해달라는 듯이 매달리고, 상대는 희롱 싫어하는데 자기가 가슴 만지고 싶다고 자기가 야한 거 좋아한다고 이걸 꼭 해야겠다며 집착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스택은 절대 쌓이지 않는다.

방금 한 말의 반대로만 하면 된다.

솔직하게 하고픈 말이 있어도 상대가 싫어할 거 같은 말이면 참고, 작은 일에도 좋아해 주고, 관심 쓰기 싫을 때도 무시하지 말고 상냥하게 대해주면 된다. 가끔 내가 피곤해 도망가고 싶을 때도 계속 옆에 있어 주고, 혼자 있고 싶을 때도 누군가가 나를 원한다면 옆에 있어 주고, 딱히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어도 나를 보고 싶어 한다면 만나서 얘기해주고, 그저 심심해서 나를 찾아왔을 뿐이어도 신경 많이 써주는 등의 행동을 하면 자연스레 스택은 쌓인다.

목소리가 좋을 필요도 없고, 어휘 선택이 예뻐야 할 필요도, 말투가 과할 정도로 상냥해야 할 필요도 없다. 목소리가 보편적으로 듣기 싫은 목소리여도 괜찮다. 아바타가 안 예뻐도 괜찮다. 우간다여도 괜찮다. 아베 신조 아바타는 조금 무리겠지만.

상대가 필요로 하는 걸 내어주기만 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에게 관심 써주고 내가 편하게 말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일"을 원한다. 다들 현실에서 지칠 만큼 지쳐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필요할 때마다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충분하다.

쉬운 행동은 아니겠지만.

행동하다 보면 가끔씩 내게 매달리듯이 행동하는 사람까지도 생긴다.

내가 상대에게 마음 쓴 만큼 돌려받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평소 (내가 아무리 상대를 좋아하더라도, 내가 아무리 상대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정작 내가 상대와 만났을 때) 내가 하고픈 대로 다 행동하면 내가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전해주지 못 했으니 상대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반대로 (내가 아무리 상대를 싫어하더라도, 내가 아무리 상대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작 내가 상대와 만났을 때) 내가 상대에게 열심히 마음을 쓰며 좋은 감정을 전해주려고 노력했으면 상대는 나를 필요로 한다.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 몸은 하나인데 오늘은 얘랑 놀고 싶은데 주변에서 자꾸만 나를 필요로 하니까 힘들 때가 있다. 억지로 가서 만나면 내가 즐겁지 않아 힘들고, 그렇다고 외면하자니 얘가 나와 멀어질까 봐 괜히 신경 쓰인다.

장단점이 있다.

천성이 받쳐주지 못 한다면 유지하기 힘들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아니 저렇게까지 노력하고 싶진 않다."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하고픈 말을 하고 살아야지, 듣기도 싫은 대화를 들으면서 억지로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할 수 있다. 공감한다. 나도 굳이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과하게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나도 인기를 얻고 싶다'거나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왜 없지?' 말하는 건 잘못됐다.

자기가 평소 찾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떠올려 보면 답은 확실하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내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하고픈 말만 다 하고, 내 기분 신경 안 쓰고 지 하고픈 말 다 하고, 나는 딱히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자기 혼자 신나서 시답잖은 주제로 얘기하고, 자꾸만 내게 뭘 해달라느니 저걸 해달라느니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무언가 말을 꺼내면 내가 말할 수 있게 배려도 해주고, 무언가 말할 때 내 기분도 신경 많이 써주고, 우울할 때 내 기분 캐치해서 우울한지 물어도 봐주고, 무언가 나를 신경 써주고 있다 이 사람과 대화하면 뭔가 마음이 편하다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만 가까이한다.

내가 오늘 회사에서 힘들었다고 말했는데 "퇴사해. 그게 답인 거 알잖아." 이런 말로 답하는 사람을 원하진 않는다.

퇴사가 답인 걸 누가 모르나? 내가 오늘 회사에서 힘들었다고 말하면, "무슨 일 있었냐? 왜 힘들었냐? 와 그런 일이 있었어? 상사가 너무했네. 어휴 힘들었겠다. 와 걔는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가 있냐? 진짜 심하네 글마 내가 혼내주까? 확마팍씨 ㅋㅋ 존만한 게! 어휴 회사 때려쳐 때려쳐 내가 한 달은 먹여살려주께." 이런 얘기해주는 사람을 원하지.

"ㅋㅋㅋㅋ 개웃겨. 말하는 거 바. 어케 때려줄 건데ㅋㅋ 멀 그만둬 상사 조깥긴 한데 그래두 가야지 으으 회사가기 싫다." 하고 기분 좋아지는 거지.

운동 안 해도 되고, 못 생겨도 된다. 냄새나도 되고, 부지런할 필요도 없다. 노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나는 하고 싶지 않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는 차마 말 못 하겠지만, 그래도 웬만한 수준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팔다리가 없어도 괜찮고, 살이 뒤룩뒤룩 쪄서 혐오감이 드는 외모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내가 상대를 좋아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 내가 상대를 싫어하는데도 상대는 나를 좋아할 수도 있다.

진짜 중요한 건, 상대 기분을 위해 내 (감정, 시간 등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느냐.

 

거기다 VRC는 현실과 다르다.

내가 동성이어도, 내가 못 생겨도, 내 목소리가 구려도, 내 성격이 조금 찐따 같아도 다들 개의치 않는다. 가상 공간이고, 예쁜 아바타가 판타지를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현실처럼 그렇게까지 삭막하진 않다. 이성이 나를 외모로 판단하듯이 내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는 듯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공간인 VRC에서조차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건 내 성격에 바뀔 점이 확실히 존재한단 얘기다.

억지로 바꿀 필요까진 없다.
자기가 자기 성격에 만족하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게임을 하면서 다른 인기 있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는 사람은 은근히 많다.

"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지? 왜 나에겐 조인을 해주지 않는 거지?"

그거야 술 마시고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거나, 1인 인스턴스에 방 파서 브수면만 하고 있거나, 사람 여럿이서 대화한다 해도 뭔가 떠들썩하고 정신없는 알 수 없는 대화만 하니까. 상대가 원하는 그런 유형의 관심이나 배려를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그저 조인해 주는 사람에게 "나를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말만 할 뿐인, 들어온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겉만 핥는 뻔한 대화만 하거나 우울한 얘기나 뱉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에게 누가 찾아갈까.

 

내가 이런 내용을 굳이 말하는 이유는 "한 번 해보면" 판타지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기까진 아니어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타인에게 이상한(?) 호감을 받아보면, 많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서. 막연하게 인기를 얻고 싶다고 바라기만 할 뿐인 삶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오히려 한 번 경험해보면 '그리 좋은 건 아니네' 생각하며 판타지를 욕망하는 마음을 날려 보낼 수 있다 믿는다.

'아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만두는 유저도 있을 거고.
그렇게 다른 사람이 나를 찾는 게 좋아 상냥하게 변하는 유저도 있을 거고.

한 번 해보면 인기를 얻고 싶다는 막연한 판타지, 혹은 미련은 확실히 사라진다.

인기인으로 사는 게 마냥 행복한 기분은 아니구나. 내가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의 떡을 바라보며 슬퍼할 필요까진 없겠구나. 하고. 왕자와 거지처럼 말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혹여나 마음속에 그런 마음이 있다면 한 번 신경 써서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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