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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보고서

과몰입 사이에서 멀어지는 친구 관계 [VRChat 보고서 84편]

by 심해잠수부 2024. 10. 18.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이상한 부분에서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가끔씩 마음이 아프다.

나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몰입을 시작한 뒤 점점 친구가 줄어든다는 푸념을 들어본 적도 있고, 과몰입끼리 있는 인스턴스엔 오래 있기 부담스럽다는 내 말에 공감하는 친구도 적지 않았으니까.

 

친했던 친구에게 과몰입이 생길 때, 그를 대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

현실에서는 친구가 자기 애인을 소개시켜 줄 때나 친구의 애인과 대화를 나눈다. 무턱대고 내가 찾아가서 애인의 앞에서 친구와 얘기를 나누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며, 어디선가 마주친다 해도 애초에 서로 합석해서 놀지 않으니 크게 문제 될 일이 없다.

하지만 VRC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인스턴스에서 논다.

그런데, 내가 찾아가면 과몰입을 시작한 이들은 껌딱지처럼 붙어있다.

친구끼리 놀 때는 구성원도 자주 바뀌고 구성원이 바뀜에 따라 분위기도 바뀌는데, 과몰입을 시작한 이들은 진짜 단 하나의 꽁냥꽁냥대는 분위기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친구들 사이에 있더라도 둘은 항상 꼭 붙어있다. 과몰입이니까.

둘 다 친한 친구라면 괜찮다. 같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한 사람만 편한 친구라면, 내가 대화하는 동안 친구의 과몰입은 대화에 끼기 어렵다.

사교성 좋아서 나와 친구의 대화에 잘 스며드는 친구도 분명 있겠지만, 모두가 사교성이 좋은 건 아니다. 그런데 둘은 껌딱지다 보니 대화에 참여하지 못 해도 옆에서 계속 기다린다. 옆에서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유저마다 다를 테고, 그런 과정을 이해해 주는 유저도 있겠지만, 옆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나는 친구의 과몰입에게 정말로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괜히 미안해지고, 대화가 길어질수록 옆에서 쳐다보는 듯한 눈길이 신경 쓰인다.

아, 내가 와서 괜히 방해를.

 

실제로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있으면 방해처럼 느끼고 나와 그의 관계를 가로막으려는 유저는 실존한다. 모든 유저가 좋은 유저는 아니니까. 세상엔 좋은 유저도 있지만 개차반인 유저도 있다. 과몰입조차 아니면서 관계를 막는 녀석도 있다.

예전에 나 정말 힘들 때 찾아와준 친구가 있었는데, 걔를 짝사랑하는 어떤 놈이 따라와서 걔에게 자꾸만 자라고 압박하며 게임을 끄게 만든 적이 있었다. 나는 찾아와준 걔가 고맙고, 얘기할 친구도 그 땐 없어서 걔가 정말 필요했는데, 따라와서 그렇게 블로킹 하는 놈도 존재하거든. (너무 어이없어서 그 때 친삭했음. 나한테 사과 한 마디 없길래 지금도 아는 척 안 함. 실수는 할 수 있는데 사과는 해야 하지 않나?)

과몰입조차 아니면서 관계를 막는 유저도 실존하는데, 과몰입 하는 유저들 중에도 그런 유저가 없을까?

그저 티를 안 낼 뿐이지 나를 방해라고 생각하는 유저는 얼마든 있을 수 있다.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보니 과몰입과 놀고 있는 유저에게 접근하기 쉽지 않다. 학교 일진이 나를 때린 적도 없는데, 일진이라는 이유만으로 괜히 말 걸기 부담스럽다.

2/14 같은 인스턴스 찾아가는 건 절대 싫고, 사람 10명 넘게 있어도 둘이 대화하고 있으면 끼기 그렇다. 내게 말을 걸어주어도 옆에서 자리 지키고 있는 거 보면 자리 뜨고 싶다.

학교에서 일진 바로 옆 소변기에서 오줌 싸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 부담스럽다. 과몰입 사이에 껴있는 게 왜 부담스럽냐니. 엘리베이터에 장인어른이랑 탄 느낌이다. 장인어른이 아니라 옆집 사람이랑 엘베를 같이 타도 겁나 부담스럽다. 딱 그 느낌이다. 엘리베이터가 빨리 1층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간단한 인사만 하고 빨리 다른 곳 가야지.

 

그럼 친구가 나를 신경 안 쓰고 과몰입이랑 계속 놀고 있으면 괜찮나? 그거도 아니다.

나를 아예 신경 안 쓰고 둘이 꽁냥대고 있으면 그 또한 싫다.

질투 따위가 아니라, 내가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그 곳에 있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

둘이 재밌게 잘 노는 공간에, 내가 끼지도 못 하는데, 내가 거기 있어 뭐 하겠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겉돌면 다른 공간으로 떠나고 싶은데, 둘이서 꽁냥대느라 바쁘면 거기 있고 싶겠냐고.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거랑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

 

나를 신경 써주면 눈치가 보여서 부담스럽고, 나를 신경 안 쓰면 그 또한 싫다.

과몰입 하는 유저들은 친구와 연인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서 친구를 대해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과몰입을 하면 과몰입이 최우선 순위가 될 수밖에 없고, 친구를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내가 이럴라고 과몰입 한 거 아닌데' 소리 들으며 까일 수도 있으니까. 친구와 과몰입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으며 줄타기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본 과몰입들 중에서 이러한 밸런스를 잘 잡는 경우를 나는 지금까지 그리 많이 보지 못 했다.

결국엔 과몰입이 생긴 친구를 위의 이유들로 자주 찾아가지 않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더라.

 

물론, 이 주제에 대해 유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나는 과몰입 있는 사람들이랑도 잘 지낸다"고 말하는 유저도 분명 꽤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친구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가지는 나 같은 사람은, 그들 앞에서 평소처럼 지내는 게 그리 쉽진 않더라. 찐이어도 일진에게 말 잘 거는 친구도 세상엔 있겠지. 근데 난 아니다.

그리고 과몰입 시작하기 전까진 여러 사람을 끌어당기며 지내다가도, 과몰입 시작한 후부터 2인 인스턴스에서만 박혀 지내는 경우를 나는 분명히 많이 보았다. 그들은 분명히 다른 친구가 와도 괜찮다는 듯 초록불 프플방을 파두었지만 둘만 있는 경우를 나는 분명히 많이 보았다 2년 동안.

과몰입 하는 녀석들이 친구를 안 껴주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니니 제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인어른이랑 엘베를 같이 탈 때 장인어른이 잘못한 게 아니어도, 일진이랑 소변기 옆에서 같이 쓸 때 일진이 나를 괴롭힌 게 아니어도, 그 자체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얘기니까.

 

과몰입 시작하고 나서 친구가 자주 찾아오지 않는 거 같다면 그건 착각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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