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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미분류

VRChat 2년 하면서 느낀 점

by 심해잠수부 2024. 11. 5.

2022년 7월 말에 VRChat 시작했으니 이젠 2년 하고도 3달이 넘게 지났다. 2023년 8월에 <VRChat 1년 하면서 느낀 점>이라는 글을 쓰고도 1년이 한참 지났고, <게임이니까>라는 글을 쓴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친구들 눈치 보면서 게임해도 걔네가 영원히 내 친구 해줄 거도 아니고 걔네가 나 대하는 감정도 애초에 그리 진중한 감정이 아니니 사소한 거까지 일일이 눈치 보면서 게임 하지 말라는 내용의 글을 쓴 지도, 친구들이 너무 인간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거 같아 답답하다는 내용의 글을 쓴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그 때 내가 게임을 바라보는 요소란 그랬다.

사람 사이의 관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관점의 차이, 게임이라는 틀 속에서 우리가 쌓아갈 수 있는 감정의 레벨 따위의. 그러한 무언가를 많이 신경 쓰고 생각해왔고, 그런 얘기를 중점적으로 해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사도 조금씩 옮겨갔다.

이제 내가 떠올리는 건,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깊이의 차이가 아니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생각할 만큼 생각했다. 친구들이 무얼 보고 무얼 생각하고 나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다 알 거 같다. 그 때 했던 얘기가 그 때까지 게임을 해왔던 내 결론이었으니까.

 

이제 내가 생각하는 건, 결국 다시 돌고 돌아 '나'라는 사람이다.

왜 내가 그 때 관계에 관한 생각을 했을까. 결국엔 나라는 사람이 이러한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왜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게임 속 관계에서조차 다른 친구들에게 눈치를 주며 나를 통제하려고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내게 요구하는 수준에 비해 나를 향한 감정이 그리 깊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했던 말은, 애초에 그들이 타인을 그리 깊은 관계로 대하지 않으니 눈치 보지 말고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얻으라는 말. 그리고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고, 그러니 고작 게임 속 친구 관계에 너무 큰 기대를 할 필요는 없다는 말.

그런데 그들의 가치관을 다 알고 나면 모든 고민이 속시원하게 해결될까.

그들의 가치관을 알고 나서도 딱히 바뀐 건 없다.

글을 쓰던 초기에 인기 따위의 단어를 자주 쓰던 나로 돌아올 뿐이다.

그들의 마음이 내게 가볍고, 내 근처에 오래 머물지 않는 이유가 게임이라고 해도, 그러한 요소를 모두 감안해도 그들이 머물다가는 시간은 너무 짧았으니까. 결국 돌고돌아 '나'라는 사람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 때와 다른 점은, 이제는 '인기'라는 막연한 생각이 아닐 뿐이지만. 아무나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아이돌스러운 인기가 아니라, 조금 더 깊은 의미의.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건 알게 모르게 재밌는 이점을 얻는다. 내 속마음을 거부감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생각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나를 조금 더 신경 써준다는 점,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가 드러내왔던 생각 때문에 내게 호감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점. (반대로 친구였던 이가 내 글을 보고 나를 혐오하는 미워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관계에 있어 '계기'를 쉽게 가져간다는 건 정말로 큰 이점이다.

누군가에게 호감으로 보이기 위해 엄청난 어필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호감의 계기를 얻는다. 하지만 계기를 얻을 뿐, 그 계기를 키워나가는 건 본인의 몫이다. 인맥으로 서류 통과하고 면접 통과했다고 해도 회사 내에서 입지를 좋은 방향으로 키워나가는 건 (낙하산이라 욕 먹고 지내느냐 그래도 잘 한다고 인정받느냐) 본인의 몫이듯, 내가 이러한 이점으로 계기를 얻어도 내가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다.

여러분들 중엔 나와 친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가끔 있단 사실을 알고 있다. 예전에 종종 친구 추가가 오고 그랬거든. 말 한 마디 섞어본 적 없는 자가 나에게 호기심을 어필하고 관계를 쌓고 싶다는 듯 행동한다. 내가 그런 친추를 받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네 상상 속에 있는 내가 네 상상 속 인물일 리가 없거든.

나는 좋은 이점을 가지고도 좋은 감정을 유지시키지 못 한다.

그들은 딱히 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했다가 실제로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와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다던 친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내가 쓰는 글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유저인데, 그 가치관으로 만들어지는 내 언행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진지하게 구구절절 써내려가는 생각이 대화할 때는 지루한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고, 관계를 가볍게 대하고 싶지 않아서 주황불 속에 박혀 있을 수도 있고, 게임에서 원하는 걸 얻고 싶어 성적인 무언가를 어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러분이 글에서 본 어떠한 장점의 특성이 게임 내에선 단점일 확률이 매우 높다.

갑자기 블로그 얘길 한 이유는, 이점을 살리지도 못 하는 처참한 매력을 말하기 위해서.

 

그들의 가치관을 알면 그들이 게임 속 관계를 가볍게 대한다며 그들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반대다. 그들이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진중하게 대하고 싶어하는 친구는 존재하고, 똑같이 가볍게 대하더라도 그들의 감정이 머물다 가는 순간의 시간이 다르기도 하다.

걔네가 다른 사람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내가 가벼운 취급을 받는 거면 참 좋을 텐데, 걔네가 다른 사람을 가볍게 여기든 무겁게 여기든 어느 가치관이 나를 대하든 나라는 사람은 가볍게 취급받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유저였어도 나를 진지하게 여겨주는 건 아니었을 거란 얘기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으니까.

내 피해의식일지도 모른다.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충분히 내게 잘 해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더 높은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가볍게 여긴다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나랑 얘랑 진짜 친한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 정도까진 아니었구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 얘가 날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는 걸 알게 될 때, 나를 정말 좋아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건 정말 순간이었고 감정이 생각보다 빠르게 식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다른 친구는 정말 쉽게 감정을 얻어간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사람의 감정을 모호하게 알고 있을 땐 행복했는데 디테일하게 알게 되면 항상 떠오르는 찝찝한 생각들.

그리고 정말 친했던 관계가 이젠 친구라고 부르기도 뭣한 아무 관계조차 아니게 되었을 때, 내 감정은 여전히 여기 있는데도.

그런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마다 고민한다.

걔네가 다른 사람을 인스턴트처럼 여겨서 마인크래프트 용암마냥 빠르게 식어버린 거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많고 많은 사람 중 나만 식은 거라면, 내게 많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어떠한 기회조차 잡지 못 한 거라면?

 

현실에서 매력없는 이가 게임에서 매력있는 이가 되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 매력없는 이는 게임에서도 매력이 없다. 아바타 껍데기 때문에 한 번의 기회를 부여받긴 하지만, 결국엔 인간 본연의 매력은 바뀌지 않는다.

현실에서 월요일 출근할 때마다 여자랑 떡친 얘기나 궁금해하는 회사 상사 따위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어, 시끄러운 얘기 자연스럽게 하는 그들과 어울릴 수가 없어, 현실에선 도저히 외로움을 달래기가 힘들어 게임으로 도망치듯 떠나와도 게임이나 현실이나 큰 차이는 없다 결함있는 인간들에겐.

내 운명의 상대가 결함있는 나를 고쳐주는 게 아니다.

결함있는 내가 여기선 결함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아바타 껍데기로 여러 기회를 부여받아 단순한 감정을 어떻게든 얻어낼 수 있을 뿐. 현실과 다를 바 없이 내 가치가 없어 상폐 직전의 주식 취급 당하듯 이리저리 구르면서도 어떻게든 그 사이에서 운 좋게 뽑아먹을 무언가를 기대하며 게임을 그만두지 못 하는 게, 마치 죽는 게 차라리 나을 수 있음에도 지옥 같은 현생에서 꿀 한 방울 떨어지는 걸 기대하며 입 벌리고 기다리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곤 한다.

코 꿰인 사람처럼 게임을 하고 있는 이가 많다는 사실을.

강원랜드 앞에서 도박으로 돈 따는 법의 전단을 보고 속는 바보들처럼.

어차피 매력도 없어 간택받지도 못 하면서, 인스턴트처럼 관계를 여겨주는 유저들 덕분에 겨우 가볍게나마 짧게나마 감정이라도 얻어갈 수 있는 건데, 그 유저들에게 그들의 감정이 가볍다 관계를 가볍게 대한다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긴 했을까? 나라서 가벼운 건 아니었을까.

 

새벽 3시에 쓰기 시작한 글이라 심도가 깊은데, 굳이 이렇게까지 말하면서까지 쓸 글이었나 굳이 2년 하면서 느낀다는 제목으로 쓸 만한 내용이었나 싶긴 한데, 지금까지의 생각은 그래요.

내 친구들은 나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 이런 말 하면 친구들에게 실례 같긴 한데 솔직한 내 심정은 그래. 근데 그들의 탓은 아닌 거 같아. 게임이나 현실이나 아닌 애는 아닌 거지.

그렇다고 뭐가 바뀌진 않겠지만.

현생이 내 적성에 맞지 않고 그만 살아도 될 거 같다고 생각해도 죽지 못 해 아등바등 살아가듯이, 게임도 똑같이 이제 그만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도 여기 아니면 이 조막만한 감정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등바등 끝까지 붙어있지 않을지. 온갖 사고 치고 맨날 우울해하면서도 게임 못 접는 등신이나 나나 다를 게 없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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