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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VRC 고민상담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쉽지 않아요 [VRChat 고민상담 2편]

by 심해잠수부 2024. 3. 10.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친해지는 일이 쉽지 않아요. 제가 조인해도 저에게 관심도 잘 보이지 않고, 저에게 조인도 안 하고 리퀘나 인바를 보내는 일도 거의 없어요. 대화를 하면 항상 어색해요. 저는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정말 어렵네요."


VRC에서 누구나 한 번은 해봤을 법한 고민이다.

나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딱히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을 해결했기 때문이 아니라,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을 문제로 고민하는 일만큼 괴롭고 피곤한 일이 없다. 그런데 많은 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착각하고, 자신이 노력하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인 줄 착각한다. 그래서 자꾸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나의 문제가 뭘까 고민에 빠진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은, 내 노력보다 상대의 기분이 훨씬 중요하다.

노력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만, 정말 노력해서 잘 뽑은 유튜브 영상이어도 외면당할 수 있다. 반면 대충 만든 영상이어도 정말 이상한 영상이어도 드립치려고 밈이라서 보러 가기도 한다.

드라마 중에 '라이프'라는 의사를 다룬 드라마가 있다. 이러한 드라마를 짜집기한 유튜브 영상이, 지금 같은 시기엔 갑자기 알고리즘에 자주 뜬다. 사람들이 자꾸 찾아보니까. 그 드라마를 짜집기한 영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시기에 따라 많이 보기도 하고 안 보기도 한다.

영상을 아무리 열심히 만들었어도 업로드 한 오늘 당장 관심을 받을 수도 있고, 10년 후에 받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친해지고 싶을 때도 다르지 않다.

나와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지금처럼 '내가 관심 가지는 친구'가 늘어나고 있는 시기엔 친해지기 어렵다. 지금은 내 주변에 '초기 관계'(긍정적이기만 한 관계)가 많으니까 친해지기 어렵다. 경쟁자가 많다.

하지만 옆에서 가만히 있다 보면, 더 이상 친구를 사귀지 않는 시기도 찾아온다. 이전의 초기 관계는 끝나고 다들 친해질 만큼 친해졌다가 서서히 식기 시작하는 관계만 존재하는 시기. 새로운 친구를 그 뒤로 따로 많이 사귀지 않아 기존 관계가 전부 고여가는 그런 시기엔 나와 정말 빨리 친해질 수 있다.

그가 특별한 노력을 했을까?

그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고, 단지 내 상황과 내 기분이 바뀌었을 뿐이다.

 

라고 글을 좋게 좋게 끝내면 좋겠지만, 방금 이야기는 서로의 주파수가 유사할 때의 이야기다.

서로의 주파수가 너무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인간 상성은 존재한다.

(친해지기 쉬운 상황이어도) 같은 상황이어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친구가 있다.

예를 들어 VRC 접속해서 잔잔하게 노가리만 까는 텐션 낮은 30대 아저씨가 20대 초반에 매일 커뮤니티에서 번개 참여하는 유저와 친해지려고 한다면 포기하는 게 낫다. 조용한 20대 친구면 몰라도 텐션까지 높고 재밌게 게임하고 싶어서 모임에도 그렇게 잔뜩 참여하는 활달한 어린 친구를 베이식급 노잼 30대 아저씨가 친해지길 바란다니 진짜 염치도 없지.

어린 친구가 노친네들에게 고민 상담도 하고 싶어 하고 고민도 늘어놓고 싶어 하고 부둥부둥 받으며 귀여움받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아예 은근히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다면 주파수가 다르다고 보긴 어렵지만, 노친네랑 대화할 때마다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유저, 그러니까 주파수가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는 유저도 있다.

그런 유저는 아무리 친해지기 좋은 상황이어도 친해지기 어렵다.
빈자리가 있다고 해도 그 자리가 내 자리는 아닐 수 있다.

왜 못 올라갈 나무를 쳐다보면서 고민하지?

우리는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

 

못 올라갈 나무에 올라가고 싶다면 나무가 나에게 팔을 내려다 주고 내가 올라올 수 있게 도와줘야만 한다.

목소리에서 꿀이 줄줄 떨어진다거나, 아바타가 진짜 너무 예쁘다거나, 선물을 많이 준다거나 여러 강점이 있어야만 (강점으로 나를 한 번이라도 쳐다보게 만들어야만) '어 저 사람과 나도 친해지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자기 팔을 내게 내려준다. 그제야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같은 주파수로 맞춰볼 기회라도 생긴다.

만약 올라가고 싶은 나무가 내 목소리에도 내 아바타에도 내 선물에도 내 어떤 무언가에도 관심이 없다면?

친해질 수 없다.

도움 없이는 못 올라갈 나무인데 나무가 팔을 안 내려다 주니까.

가끔은 나무가 팔을 안 내려준다고 나무에 도끼를 찍어 쓰러뜨리려고 하거나, 나무에 도끼로 팬 자국을 만들어 클라이밍 하듯이 올라가려고 하거나, 무거운 몸으로 나무에 억지로 매달려서 껍질 다 뜯으면서 올라가거나 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손절당한다. 짜증 나니까.

 

주파수가 다르다는 건 '재미'의 주파수다.

누군가는 잔잔하게 대화하는 일을 재밌게 여기고, 누군가는 텐션 높게 떠들고 활달하게 노는 걸 재밌다 여긴다. 누군가는 그룹에서 노는 일을, 누군가는 둘이서 노는 일을 재밌다 여긴다. 누군가는 음지적 플레이를 재밌다 여기고 누군가는 음지적 플레이를 혐오한다.

어떤 이는 누구나에게 재미를 선사해 주지만, 어떤 이는 특정한 부류에게만 재미를 선사해 주고, 어떤 이는 매일 우울한 얘기나 회사 얘기, 다른 사람 뒷담하는 재주밖에 없어 재미를 전혀 선사해 주지 못 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매일 우울한 얘기만 하지만 암캐 무브라도 너무 잘 쳐서 재미를 선사해 주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재미의 부분이 겹쳐야 친해질 수 있는 터널이나 다리가 생긴다.

상대가 바라는 재미를 내가 채워줄 수 있는 만큼 상대와 나 사이에 통로가 늘어나고, 통로가 늘어날수록 원활하게 교류할 수 있다. 통로가 없으면 친해지기 어렵고, 통로가 하나만 있으면 조금밖에 친해지지 못 한다. 통로가 많으면 많을수록 서로 원활하게 교류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누군가와 친해지지 못 할 때 나의 '성격'과 그의 '성격'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 가볍게 생각했다. 서로 성격이 달라 친해지지 못 한다. 그렇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잘 맞는 성격과 안 맞는 성격, 그러니까 활달한 성격 조용한 성격 그러한 차이나 단순히 가치관 차이 때문에 친해지지 못 한다 여기던 때가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성격이 아무리 맞지 않아도 재미를 충분히 채워줄 수 있다면 충분히 친해질 수 있다. 그저 같은 그룹의 구성원이라 재미를 채워줄 수도 있고, 성격이 그닥 맞지 않는 거 같아 보여도 어떠한 플레이를 좋아한다면 친해질 수 있다.

상대가 바라는 재미를 내가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인가.

저기 있는 천박하고 경박한 느낌 나는 애를, 자기를 나쁜 말로 조롱하는 듯한 말만 하는 애를 도대체 아이돌 같은 녀석은 왜 좋아하는 거지? 그런 거 싫어한다 그러지 않았나? 분명히 노골적으로 성희롱하면 싫어한다 그러지 않았나?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천박한 걸 경계하고 경박한 걸 싫어하지만 자기를 나쁜 말로 조롱해 주니 좋아하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천박하고 경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 나쁜 포인트를 전부 다 피해 가는 친구라 꼬카인 맡는 느낌으로 자꾸만 손이 가는 걸 수도 있고.

우리가 보기엔 성격 그리 안 맞아 보여도 당사자는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을 수 있다.

히토미에서 완전 착하고 조용한 그녀도 금태양을 좋아할 수 있다. 금태양이 그녀를 아무리 경박하고 천박하게 대하는 듯 보여도 그녀가 주도권 뺏기고 물건처럼 쓰이며 휘둘리는 걸 좋아할 수 있다. 아무리 경박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이 불쾌해도 자길 좋다 좋다 해주며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그가 좋으니까.

 

상대가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나와 같이 있을 때 재미없기 때문이다. 대화 한 마디만 해봐도 재밌을 만한 친구인지 아닌지 대충 눈에 보인다. 그걸로 모두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서류 면접조차 붙지 못 한 사람에게 대면 면접 시간을 길게 주는 면접관은 없다.

나도 친해지고 싶으면 꾸준히 조인을 탄다. 리퀘나 인바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10번 넘게 조인을 해도 내게 관심 없는 이는 꾸준히 관심 없다. 내가 대화를 시도 해도 내가 대화를 재밌게 이끌어가지 못 하니 내게 머무는 관심이 길지 않다.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 그렇게 꾸준히 관심을 보여봐야 그가 원하는 유형의 친구는 따로 있다.

그의 마음엔 자리가 없거나 빈자리가 있어도 이미 내정자가 있다.

 

'안 된다'는 얘길 이렇게 길게 할 필요가 있었나 의문을 가지는 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작성한 이유는, '성격이 안 맞아서 그래' '쟤가 내게 관심을 안 줘서 그래'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진지하게 한 번 고민해 봤으면 해서. 왜 내가 재미가 없는지 고민하고, 저 사람과 친해지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관찰하고, 그리고 내가 그가 원하는 친구가 될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보라는 얘기다.

우린 성격 문제라며 탓하며 가볍게 넘어가는 일이 너무 많다.

그렇게 고민해도 나를 바꾸기는 사실 어려워서,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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